『K팝 스타를 만나다』상반기 결산 ‘명불허전’ 익숙함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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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방일보에 기고한 첫 칼럼 “문화산업·예술 실은 쌍두마차 출발…‘고삐 꽉 잡아라’”에서 2026년의 K팝을 이렇게 전망한 바 있다. “K팝의 2026년은 이 같은 강력한 노스탤지어와 변화 가능성 가운데 미래를 끌어나갈 수 있는 신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해가 될 것이다.” 한 해의 반환점을 맞는 지금, 그 예측은 어디까지 왔을까.
제6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Golden)’이 K팝 역사상 최초로 트로피를 품에 안은 장면은 K팝이 세계 음악시장에서 주도적인 흐름을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했다.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본 시상식에서 ‘아파트(APT.)’를 열창하고, 미국 현지화 그룹 캣츠아이가 신인 부문에 이름을 올린 순간은 세계 속 K팝의 위치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흐름을 타고 고대하던 거대한 이름들이 속속 가요계로 돌아왔다. 1월 정규 8집 ‘리버스(REVERXE)’로 컴백한 엑소, 2월 27일 약 4년 만의 컴백을 알린 블랙핑크, 세계가 고대했던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전원 제대 후 복귀앨범 ‘아리랑(ARIRANG)’이 모든 기록을 갈아 치웠다. 숫자 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살짝 달라진다. SM엔터테인먼트의 3.0 시대를 여는 첫 작품으로 낙점된 엑소의 프로젝트는 멤버 6명만 참여한 가운데 과거 전성기와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앨범으로, 판매량은 전작 대비 40%나 감소했다.
그룹 단위로는 실로 오래간만의 컴백인 블랙핑크는 5곡짜리 미니앨범에 국내 활동 없이도 발매 첫 주 만에 170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는 저력을 보여 줬다. 지수, 제니, 리사, 로제 개인 활동이 고유의 방향성을 확보하며 순항하는 가운데 그룹 단위 결과물은 안정적인 프로덕션과 준수한 완성도에도 연속성을 발견하긴 힘들었다. 블랙핑크 이름으로 발표하는 활동보다 월드투어를 위한 세트리스트에 신곡을 추가하는 데 의의를 찾아야 했다.
발매 전부터 숱한 이야기를 낳은 BTS의 ‘아리랑’은 그룹에 통산 7번째 빌보드 200 차트 1위와 타이틀곡 ‘스윔(SWIM)’으로 7번째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안겨 줬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의 사상 초유 생중계 공연과 함께 현재는 전 세계를 돌며 투어에 전념 중인 그룹의 거침없는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음악에 관해선 이견이 갈린다. 팝이라는 음악시장의 붕괴와 예전만 못한 슈퍼스타들의 음악적 완성도에 고민 중인 해외 매체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대중음악의 정수를 탄탄한 참여진과 안정적인 프로덕션, 한국이란 이국적 소재를 적극적으로 가져온 앨범을 호평했다.
모국에서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대중은 ‘BTS 2.0’이라는 새로운 그룹의 시대 포부 대신 멤버 뷔의 ‘국뽕’ 반응에 공감했다. 컴백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에서 공개된 앨범 제작과정은 BTS 7인보다 하이브라는 회사의 거대한 수출 프로젝트처럼 비쳤다. 한국인의 정신과 정체성을 아리랑이라는 기표로 드러내고자 했던 이상은 거꾸로 어떻게든 만들고 빨리빨리 쳐내는 방향 설정 없이 일단 달리고 보는 한국 사회의 오늘날을 거울처럼 비췄다.
투박할지언정 진솔했던 표현과 이를 뒷받침하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범접할 수 없는 K팝 신화를 써 내려온 그룹이기에 더욱 당황한 작품이다. 충분한 상업적 성과를 거뒀으니 괜찮다는 반응과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는 호의는 아이러니하게도 K팝 위기설을 더욱 부채질했다.
2026년 K팝 상반기 현재를 지탱하는 요소는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산업에 대한 증명이 아니다. K팝 팬들로부터 호평받은 작품을 돌아보면 답이 보인다. 2000년대 중후반, 이른바 ‘숨어 듣는 명곡(숨듣명)’ 복고 흐름을 타고난 끼로 소화한 예나의 ‘캐치 캐치’는 컴백 아이돌의 필수 챌린지곡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가장 큰 감동을 안긴 순간은 데뷔 20주년을 맞아 3명만으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 빅뱅이었다.
‘404’의 키키가 Y2K 노스탤지어 자체를 그룹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스타일(Style)’ ‘루드(RUDE!)’로 인기를 구가 중인 하츠투하츠와 함께 만들고 있는 전자음악의 흐름조차 사실 2010년대 중후반을 돌아보는 복각의 일종이다. 현재 음원 스트리밍 차트 1위곡은 2017년 해체 후 9년 만에 재결합한 프로젝트그룹 아이오아이의 ‘갑자기’다. 씨야, 마마무, 시크릿 등 과거의 이름이 재결합 후 컴백을 외치고 있다. 유튜브 예능 콘텐츠로 대세로 등극한 걸그룹 리센느의 역주행곡은 2년 전 발표곡 ‘러브 어택(LOVE ATTACK)’이다. K팝 역사가 30년이 넘은 만큼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기획과 재해석이 등장할 시점이라고 해도 시장의 유행이 과거 IP에 크게 의존하는 작금의 유행은 과연 산업의 미래가 진보를 향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새로운 무언가도 있다. ‘영크크(영 크리에이티브 크루)’를 자처하며 확실한 세대 구분을 선언한 코르티스다. 보이그룹으론 정말 오랜만에 대중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이 그룹은 K팝에서 가장 거대한 자본력을 갖춘 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거리낌없이 음악을 만드는 모습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멤버 전원이 작사, 작곡, 안무, 영상에 관여하는 코르티스의 결과물은 매우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 보이나 그 현상 아래엔 치밀한 기획과 고도화된 방향 설정이 있다.
불안정한 국제정세, 기준이 없어진 인터넷 세계, 깊은 고찰 대신 알고리즘을 통해 들어온 각자의 가치관과 관점만을 신념으로 믿고 따르는 오늘날 세태에 ‘레드레드(REDRED)’의 이분법 선동은 매우 효과적이다. 이외에 한국에선 드물게 테일러 스위프트가 주도하는 10대 싱어송라이터의 문법을 급진적인 장르 융합으로 구현하는 엔믹스, 그룹의 정체성에 과몰입하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아일릿도 기억에 남는다. 기사나 숫자, 현상보다 음악과 퍼포먼스로 기억되는 2026년 K팝 하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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