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은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던 풍전등화의 순간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오직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신념으로 유엔국의 수많은 젊은 용사가 들어본 적도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리며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희생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안타깝게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던 많은 용사 중 우리가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튀르키예군(軍)을 다시금 기억하고자 한다.
튀르키예는 6·25전쟁 기간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2만1000여 명의 병력을 순수 자원병력으로 선발해 파병했다. 그중 1000여 명이 전사했다. 파병 인원 대비 전사자가 약 5%에 달했는데, 다른 참전국 전사자가 2% 이내였던 것으로 미뤄 볼 때 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투에 임했는지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또한 1953년 정전 이후에도 유엔군의 일환으로 1971년까지 병력이 잔류하며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했던 진정한 우방국가다.
튀르키예는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6·25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우리를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형제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소식에 즉각 참전을 결정했으며, 100% 자원병력으로 파병해 죽음을 무릅쓰고 치열하게 싸운 것이다.
튀르키예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중공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가 금양장리전투다. 이 전투를 기념하고자 국방부가 1974년 경기 용인시 김량장동 주변에 튀르키예 참전기념비를 세웠지만, 현재 튀르키예 참전기념비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에야 튀르키예 참전기념비가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참배하려 했지만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도 않았다.
다행히 지난해 6월 25일 새벽에 어렵게 차량을 마성TG 고속도로 갓길에 주차하고 참배할 수 있었다.
입구에는 튀르키예군 참전기념비 입간판이 서 있었고, 참전 약사 표지석과 유엔·한국·튀르키예의 국기가 게양돼 있었다. 중앙에 참전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받침대 좌우에는 한국어와 튀르키예어로 “유엔군의 기치를 들고 튀르키예 포병여단은 한국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침략자와 싸웠다. 여기 그들의 전사상자 3063명의 고귀한 피값은 헛되지 않으리라”라고 적혀 있다. 그 글귀를 보면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반면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 중앙공원에도 튀르키예 6·25 참전기념비가 조성돼 있는데, 매년 6월 25일 추모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된다.
정작 도움을 받은 우리나라는 벌써 다 잊은 듯하다. 튀르키예 참전기념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참배나 방문은 더욱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형제의 나라’라고 주저 없이 참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그 추모공간조차 외면한 게 아닌가 하는 서글픔이 든다.
6·25전쟁 76주년이 되는 올해는 많은 이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결코 혼자 힘으로 지켜진 나라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는 반드시 갚아야 할 역사적 빚이 있음을 다시금 새기는 전환점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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