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길 수 없었던 승리… 매너따윈 날려버려 비신사적 특수작전

입력 2026. 06. 26   16:25
업데이트 2026. 06. 2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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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2024)

감독: 가이 리치 
출연: 헨리 카빌(거스 마치필립스), 앨런 리치슨(앤더스 라센), 알렉스 페티퍼(제프리 애플야드), 에이사 곤잘레스(마조리 스튜어트), 헨리 골딩(프레디 아코), 프레디 폭스(이언 플레밍)

“특수작전집행부(SOE·Special Operations Executive)는 처음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사라져 갔다. 그것은 전쟁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임기응변이었다.”
『우리 아버지들의 마지막 나날』조엘 디케르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신사답지 않은 방법으로만 이길 수 있었다

1940년 6월 프랑스가 무너졌다. 굳게 믿었던 마지노선은 무용지물이었다. ‘마지노선의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곳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덩케르크에서 영국군 33만 명이 간신히 탈출했지만 유럽 대륙은 사실상 나치 독일의 손에 들어갔다. 히틀러의 U보트는 대서양을 장악하며 영국으로 향하는 보급선을 닥치는 대로 격침시켰다. 영국은 굶주리고 있었다. 섬나라 영국의 생명선은 대서양 항로였고, 그 항로를 독일 잠수함이 틀어쥐고 있었다. 1940년 한 해에만 연합국 선박 수백 척이 U보트의 공격을 받았다. 정규전으로는 답이 없었다.

그해 7월 22일, 윈스턴 처칠은 경제전쟁부 장관 휴 달튼을 불러 극비 조직 창설을 지시했다. 이른바 특수작전집행부(SOE). 정규군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조직이었다. 규칙도, 제복도, 공식적인 존재도 없는 조직. 적진 깊숙이 침투해 사보타주, 암살, 교란, 첩보 수집을 수행하는 그림자 부대였다. 처칠이 달튼에게 내린 명령은 단 한 문장이었다. “이제 가서 유럽에 불을 질러라.”

영국 육군 수뇌부는 이 조직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신사답지 않은 전쟁 방식”이라고 불렀다. 정식 군인이 아닌 전과자, 모험가, 외국인 용병, 여성 공작원까지 뒤섞인 이 조직은 기존 군사 문화와 충돌했다. 훈장도, 공식 기록도, 심지어 사망 시 국가 보상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처칠은 개의치 않았다. 신사답게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SOE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1만3000여 명의 요원을 운용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처음 생겨난 것처럼 조용히 해산했다. 공식 기록도, 공개 추모도 없었다.

SOE는 1942년 1월 서아프리카 페르난도포섬에서 작전을 펼쳤다. 작전명 ‘포스트마스터’. 목표는 스페인 중립 항구에 정박 중인 독일·이탈리아 선박들을 나포하는 것이었다. 이 배들은 중립국 감시를 피해 U보트에 연료와 식량을 대던 비밀 보급기지였다. 연합국 상선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던 U보트의 배후를 끊어버림으로써 대서양의 전세를 바꾸려는 작전이었다. 문제는 중립국인 스페인의 항구에서 작전을 벌이는 것은 국제법상 위반이었다. 스페인이 독일 편으로 참전할 빌미를 줄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러나 처칠은 허가했다. 단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조건으로. 작전이 실패하면 영국 정부는 관련 없다고 부인할 참이었다.

규칙 없는 전쟁, 규칙 없는 사나이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가이 리치 특유의 스타일로 이 작전을 재현한다. 빠른 편집, 능청스러운 유머, 압도적인 액션으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킹스맨’을 섞어놓은 듯한 쾌감이 있다. 전쟁 영화지만 무겁지 않다. 오히려 경쾌하다. 그러나 영화의 뼈대는 실화다.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중심에는 거스 마치필립스(헨리 카빌)가 있다. SOE 62특공대 창설자다. 전과자 출신에 위험을 즐기는 괴짜 지휘관이다. 평시라면 군대에 발도 못 붙일 인물이지만 SOE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의 옆에는 덴마크 출신 앤더스 라센(앨런 리치슨)이 있다. 두 손에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을 선호하는 말 그대로 ‘전사’다. 라센은 영국군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하나다.

마조리 스튜어트(에이사 곤잘레스)는 독일군 장교들을 술과 파티로 묶어두는 위장 공작원이다. 카메라가 좀처럼 잡지 않는 구석엔 정보장교 이언 플레밍(프레디 폭스)이 있다. 이 작전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그는 훗날 이 모든 경험을 한 권의 소설로 바꾼다.

영화는 작전의 두 축을 교차시키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마조리의 파티 공작이 흔들리면 마치필립스 팀의 작전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두 축이 맞물리는 자정 마치필립스 팀의 모터보트가 어둠 속 항구로 진입한다. 닻을 끊고, 배를 나포하고 항구를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총성 없이, 사상자 없이,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한다.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모른다. SOE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무부는 스페인 정부에 “해적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전달한다. 그러나 대서양의 전세는 바뀌기 시작한다. U보트의 비밀 보급 거점이 사라지고 연합국의 대서양 보급로가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승리다. 그것이 SOE의 방식이다.

가이 리치의 연출은 이 실화를 오락 영화의 문법으로 재해석한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다는 비판이 있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핵심은 사실이다. 정규전이 막혔을 때 역사는 종종 규칙 밖의 사람들이 바꾼다. 영화는 그 순간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꺼내 보인다.

이언 플레밍과 007의 탄생

영화 엔딩 크레딧에 한 문장이 뜬다. “거스 마치필립스는 훗날 이언 플레밍이 제임스 본드를 창조하는 데 영감을 줬다.” 이언 플레밍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정보국 중령이었다. 그는 전쟁 내내 SOE와 긴밀하게 협력했고, 실제 비밀 작전을 기획하거나 지원했다. 플레밍이 직접 만든 특수부대도 있었다. ‘30돌격부대’라는 첩보 수집 특공대다. 점령 지역에 최초로 침투해 독일군의 정보 문서와 암호 장비를 탈취하는 임무를 맡았다. 제임스 본드가 하는 일과 판박이였다. 플레밍은 직접 작전에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상관들은 그를 현장에 보내지 않았다. 그가 너무 많은 기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레밍은 대신 작전 기획서를 썼고, 첩보원들의 보고서를 읽었으며, 적의 심리를 분석했다. 그 모든 것이 나중에 소설이 됐다.

플레밍이 007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난 1952년이었다. 자메이카의 한 별장에서 타자기 앞에 앉아 단 두 달 만에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을 완성했다. 위장 신분으로 적국에 침투하는 요원, 파티와 유혹으로 적을 교란하는 공작, 아슬아슬한 탈출,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외로운 남자. 거스 마치필립스의 대담함, 앤더스 라센의 전투 본능, 마조리 스튜어트의 위장 공작. 이 모든 것이 제임스 본드 한 사람 안에 녹아들었다.

본드의 상사 ‘M’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 MI6 국장 스튜어트 멘지스가 가장 유력한 모델로 꼽힌다. ‘본드 걸’의 원형이 된 여성 요원들도 SOE에 실재했다. 비올레트 사보는 프랑스 점령지에 침투해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돼 처형됐다. 노르 이나야트 칸은 파리에서 무선통신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나치에 붙잡혀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총살됐다.

007 시리즈는 1962년 숀 코너리 주연의 ‘닥터 노’로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60년 넘게 25편이 제작된 세계 최장수 첩보 영화 시리즈가 됐다. 그러나 출발점은 1942년 서아프리카의 항구에서 배 한 척을 조용히 빼낸 몇 명의 신사답지 못한 요원들이었다. 이언 플레밍은 그들을 보았고, 기억했고, 소설로 남겼다. 사진=위키피디아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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