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예술』
영화 속 미술 - 에드워드 번존스의 ‘용서의 나무’와 영화 ‘언 에듀케이션’
인생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하나의 고비를 넘고 이제야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고 안도하는 순간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다. 뜻밖의 행운과 좌절의 불안은 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1960년대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언 에듀케이션(An Education)’은 제니가 어른의 문 앞에서 혹독한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보수적인 가정과 여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제니는 예술을 사랑하고 지적인 호기심이 많다. 제니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어른’의 삶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중년 남성 데이비드를 만나게 된다. 그는 마치 제니의 삶을 완전히 바꿔 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데이비드는 어른 특유의 능숙한 매너와 세련된 취향, 그리고 경제적 여유까지 갖췄다. 제니는 데이비드와 그의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고급 차를 타고 재즈 클럽과 좋은 레스토랑을 드나든다. 학교를 오가며 공부하는 평범한 일상은 제니에게 점점 시시한 것으로 느껴진다.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데이비드의 친구들은 그림에 조예가 깊다. 어느 날 그들은 곧 열릴 미술 경매에서 라파엘전파의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의 작품을 낙찰받을 계획을 말한다. 이에 제니는 자신 역시 그의 작품을 매우 좋아한다고 답한다.
1960년대 영국 사교계에서 유행처럼 회자되던 라파엘전파 형제회(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9세기 중반 등장한 예술가 모임이다. 이들은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을 기준으로 삼는 미술의 전통에 반기를 들고 그 이전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백 년 동안 절대적인 권위를 누려 온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도전이었던 만큼 이들은 이름만큼 비밀스럽게 결사됐다. 라파엘전파는 완벽한 비례와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 미술 대신 중세 미학에 매료됐다. 중세 문학을 탐닉한 이들은 환상이 뒤섞인 듯한 몽환적인 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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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 에듀케이션’에서 제니와 데이비드 일행은 미술품 경매장을 찾는다. 그들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손에 넣은 작품은 라파엘전파 화가 번존스의 ‘용서의 나무’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작품은 사람 키만큼 큰 캔버스에 한 남녀의 전신상을 담고 있다. 작품의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라키아의 공주 필리스와 테세우스의 아들 데모폰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은 데모폰이 고향으로 돌아가 일을 마무리한 뒤 다시 오겠다고 나서면서 이별하게 된다. 필리스는 연인을 기다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자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가엾게 여긴 신들은 필리스를 아몬드나무로 변하게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데모폰이 나무를 끌어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자 메말랐던 가지에 꽃이 피어나고 필리스는 마침내 그를 용서한다.
‘용서의 나무’는 풍성한 꽃을 피운 아몬드나무를 배경으로 필리스가 데모폰을 용서하며 나무를 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다.
라파엘전파 특유의 치밀하고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른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여성을 표현했던 방식처럼 필리스는 창백한 피부와 풍성한 붉은 머리칼을 지닌 모습으로 그려졌다. 중세 문학과 전설에 깊이 매료된 번존스는 이 작품에서도 신비롭고 관능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데모폰의 표정이다. 그의 얼굴에서는 중세 고딕 회화에서나 볼 법한 다소 경직되고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데모폰의 시선은 분명 필리스를 향하고 있지만 그는 재회의 기쁨보다는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필리스를 다시 마주한 순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작품 이면에는 번존스의 개인사가 자리하고 있다. ‘용서의 나무’를 그릴 당시 유부남이었던 번존스는 모델이었던 마리아 잠바코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그는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여러 학자가 지적했듯이 ‘용서의 나무’ 속 필리스의 얼굴은 잠바코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되살아난 필리스에게 안기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모폰의 모습은 번존스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가정을 저버리고 불륜 관계에 빠졌다는 죄책감과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바코를 배신하면서 누구에게도 온전히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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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 에듀케이션’에서 제니는 데이비드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직업은 물론 유부남이라는 사실까지 숨기고 있었다. 그제야 제니는 데이비드와 함께 누렸던 화려한 삶이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번존스의 ‘용서의 나무’ 속 필리스처럼 제니 역시 데이비드를 용서했을까.
제니가 용서한 것은 데이비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볼 수 있다. 제니는 한 남자에게 속은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일군 삶과 가능성을 외면하고 과시의 세계에 빠져 있던 시간을 돌아본다. 그 사건 이후 제니는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떠나온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면서 진짜 ‘어른’이 된다.
누구나 수많은 실수와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용서하고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용서의 나무’가 말하는 용서 역시 타인을 향한 관용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시 삶을 이어갈 용기를 얻는 과정이다. 그리고 바로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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