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엔 좁은 문’새 시대 향한 관문이 되다

입력 2026. 06. 25   17:09
업데이트 2026. 06. 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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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문학 - 두 도시 이야기 
스페인 세비야와 튀르키예 이즈미르 <上> 

이교도에겐 서리 같던 태양의 도시
중세 이베리아반도 점령했던
북아프리카 이슬람세력 몰아내고
개종 거부한 유대인도 내쫓아
신대륙 무역으로 전성기 누렸지만
항로 개척한 콜럼버스도 배신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 도시 곳곳에

 

스페인 세비야와 튀르키예 이즈미르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떠남과 도착으로 이어진 도시다.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이 된 스페인 세비야에서 유대인은 한순간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살기 위해 모든 걸 버린 그들은 오스만제국의 이즈미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방인을 밀어낸 도시와 받아들인 도시는 그렇게 하나의 서사로 묶였다.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세비야는 정수리를 태워 버릴 것 같은 태양과 피부를 말리는 건조한 땅이다.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세비야는 정수리를 태워 버릴 것 같은 태양과 피부를 말리는 건조한 땅이다.


이슬람의 시간을 품은 도시

스페인은 유럽 대륙의 남서쪽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다. 반도 안에서 가장 ‘스페인’스러운 곳을 꼽는다면 안달루시아 지방이고, 세비야는 그 중심도시다. 세비야의 공기는 피부를 찢을 것처럼 건조하지만 향긋한 오렌지향이 묻어 있었다. 흙빛 골목 사이를 걸을 때마다 유럽이라기보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비야가 지나온 시간 속에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흔적이 깊게 남아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역사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에서 한 달을 보냈다.

711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세력이 스페인 남부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다. 이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약 500년 동안 이슬람 치하에서 지식과 부의 중심지가 됐다. 이 시기 가장 눈에 띄는 세비야의 건축유산은 ‘황금의 탑’과 ‘대모스크’다. 황금의 탑은 이슬람 시기의 방어탑이다. 강 건너편까지 두꺼운 쇠사슬을 수면 아래로 연결해 적군의 배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지 못하도록 봉쇄했다. 이 탑은 훗날 감옥, 예배당, 화약창고 등으로 용도가 변경됐다가 오늘날에는 세비야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0년 넘게 지어 올린 대모스크는 당시 이슬람세계에서도 압도적 규모를 자랑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기독교 왕국의 국토 회복 전쟁, ‘레콩키스타’의 결말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세비야를 점령한 기독교 왕 페르난도 3세는 대모스크를 성당으로 바꾼다. 약 150년 뒤에는 모스크였던 건물마저 부수고 세상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을 세운다.


원래는 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탑 ‘미너렛’이었으나 기독교 왕국이 차지하면서 가톨릭 성당 종탑이 된 히랄다.
원래는 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탑 ‘미너렛’이었으나 기독교 왕국이 차지하면서 가톨릭 성당 종탑이 된 히랄다.

 

강 건너편까지 두꺼운 쇠사슬을 연결해 적선의 침입을 막았던 세비야의 12각형 석조 방어요새 황금의 탑.
강 건너편까지 두꺼운 쇠사슬을 연결해 적선의 침입을 막았던 세비야의 12각형 석조 방어요새 황금의 탑.


유대인 추방령

기독교 왕국이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한 레콩키스타는 이슬람세력만 몰아낸 게 아니었다. 불운의 주인공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이슬람세력보다 먼저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외부인으로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왔다. 유대인은 의사, 금융가, 학자, 상인으로 활약하며 안달루시아 지역의 경제와 문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통일 기독교 왕국의 탄생은 유대인을 향한 뜻밖의 폭력을 동반했다. 바로 ‘알람브라 칙령’이다. 역사상 손에 꼽히는 잔인한 칙령이었다.

“스페인 왕국 내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왕국을 떠나라.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

이는 사실상 유대인 추방령이었다. 칙령 반포 이후 스페인 왕실의 재정고문이기도 했던 유대교 랍비가 직접 왕실을 찾아가 칙령 철회를 요청하며 막대한 금액을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기독교 왕국의 또 다른 통치자 이사벨 여왕은 이를 거부한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의 유대인 인구는 약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했고, 나머지는 그 땅을 떠나기로 했다. ‘세파르디 유대인’으로 불리게 된 이들 추방자는 수백 년간 살아온 집과 땅, 사업과 조상의 흔적을 두고 최소한의 금붙이를 품은 채 배에 올랐다.

지중해를 건넌 이들은 당시 지중해 패권을 쥐고 있던 오스만제국의 주요 도시에 정착했다. 에게해를 바라보는 고대 항구도시 이즈미르가 국제무역항으로 부상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강력한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과거엔 스미르나, 현재는 이즈미르로 불리던 도시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새로운 식재료 덕분에 세비야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도시가 됐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새로운 식재료 덕분에 세비야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도시가 됐다.


대항해시대의 개막

‘세파르디 유대인’을 추방한 1492년 스페인은 인류 역사를 바꾸는 또 다른 결단을 내렸다. 이사벨 여왕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하기로 한 것.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를 함락하면서 동방으로 가는 향신료 무역로가 사실상 막혀 버렸다. 유럽 전체가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이사벨 여왕은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에 닿을 수 있다”는 콜럼버스의 말에 설득당한다. 1492년 8월 3일 세비야 근교 팔로스 항구를 떠난 콜럼버스 함대는 두 달 만에 카리브해에 닿았다.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한 순간이었고, 스페인 왕국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 놓은 장면이었다.

안달루시아 이슬람세력의 사원 대모스크를 부수고 만든 세비야 대성당 내부엔 유난히 눈길을 끄는 조형물이 있다. 4명의 거대한 갑옷을 입은 인물이 어깨에 멘 관. 바로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4명의 조각상은 네 왕국인 카스티야·레온·아라곤·나바라의 왕을 상징한다. 왕들이 콜럼버스의 관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형상에는 씁쓸한 역설이 담겨 있다.

콜럼버스는 1492년 항해에 앞서 이사벨 여왕과 계약을 맺었다. 신대륙에서 얻는 수익의 10%와 ‘대양 제독’ 작위, 발견한 땅의 총독직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깨닫자 약속을 파기했다. 콜럼버스는 1500년 카리브 총독 재임 중 체포돼 쇠사슬에 묶인 채 스페인으로 압송됐다. 작위와 재산도 빼앗겼다. 비록 얼마 뒤 석방됐지만, 그는 다시 예전의 위상을 되찾지 못했다. 1506년 카스티야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콜럼버스는 “스페인 땅에는 묻히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콜럼버스의 유해는 후손들의 손에 들려 카리브해의 도시를 전전하다가 스페인이 쿠바를 잃은 1898년에야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약속을 깬 왕국들을 상징하는 네 왕의 어깨 위에 올려진 채 그는 오늘도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다.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 있는 콜럼버스의 무덤.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 있는 콜럼버스의 무덤.

 

과거 유럽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이자 오페라 ‘카르멘’의 주무대인 세비야대 캠퍼스.
과거 유럽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이자 오페라 ‘카르멘’의 주무대인 세비야대 캠퍼스.


왕립담배공장과 카르멘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은 대서양과 스페인 내륙을 이어 주는 내륙 항로여서 해적의 급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다. 동시에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다는 장점이 세비야를 신대륙 무역의 독점 관문으로 만들었다.

1503년 이사벨 여왕은 세비야에 인디아스 무역관을 세운다. 이 기관은 신대륙과 스페인 사이의 모든 무역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세금을 거두는 왕실의 무역 통제소였다. 법적으로 신대륙을 오가는 모든 배는 세비야에서 출발해 세비야로 돌아와야 했다.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 향신료, 코치닐 염료, 노예까지 모든 것이 과달키비르강에 내려졌다. 세비야는 16세기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로 급부상했다. 돈을 좇아 밀려든 인구는 10만 명을 돌파했고, 유럽 전역의 상인과 은행가들이 세비야로 모여들었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수많은 식물 중 담배가 세비야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줬다. 16세기 스페인에서 빠르게 퍼진 흡연문화는 담배를 황금만큼 귀한 상품으로 만들었다. 세비야는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담배를 합법적으로 가공할 유일한 도시였다. 스페인 왕실은 폭발하는 담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시설인 왕립담배공장을 세운다. 가로 185m, 세로 147m의 거대한 직사각형 석조건물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산업건물이었다. 건물 안에서는 최대 1만200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했다. 그중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였다. 공장 내부에는 작업장과 감옥, 탁아소, 법원까지 갖춰져 자급자족 구조를 구축했다. 건물 주변에는 도랑을 파 외부 침입을 막을 만큼 산업시설이라고 하기엔 독특한 방어적 구조를 가졌다. 이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왕실 자산을 지키는 요새였음을 보여 준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담배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소설 『카르멘』을 썼다. 이 작품은 조르주 비제가 오페라로 옮겨 유럽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다. 극 중 카르멘이 추는 춤이 바로 플라멩코인데,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에서 유랑을 시작한 로마니 집시와 세파르디 유대인, 무어인의 문화가 안달루시아에서 합쳐져 탄생한 예술이다. 그렇게 세비야와 플라멩코는 카르멘을 통해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됐고, 플라멩코는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비야는 이슬람의 흔적, 유대인 추방의 역사가 담긴 도시다. 대성당 안에선 네 왕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관을 어깨에 메고 있다. 그리고 담배공장에서 일했던 카르멘의 이야기가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다. 황금의 탑은 여전히 과달키비르강가에 서서 세비야가 지나온 수천 년의 세월을 이야기한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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