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을 잊지 않기 위한 육군의 3가지 노력
육군본부가 있는 계룡대 본청 1층 복도에는 6·25전쟁을 비롯한 각종 전투에서
전사한 약 16만5000명의 선배 전우 이름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우리들의 오늘과 후손들의 내일을 있게 한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는 글귀와 함께.
기억과 기록은 닮아 있다. 둘 다 잊지 않으려는 행위지만, 기억이 사람 안에 머문다면 기록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는다. 육군은 선배 전우의 희생을 지우지 않기 위해 기록을 보존하고, 기록을 읽고, 기록으로 예우한다. 3가지 방식으로 이어지는 육군의 노력을 들여다봤다. 글=이원준/사진=이윤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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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지켜내다… 육군기록정보관리단, 기록물 보존 복원 핵심 업무 수행
빛바랜 종이 한 장에 70여 년 전 전장상황이 압축돼 있다. 작전 명령·전투상보·작전일지 속에는 부대의 이동경로, 전투경과뿐만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임무를 다한 장병들의 헌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록 한 줄 한 줄은 장병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켜 냈는지를 보여 주는 역사적 증언이다.
육군기록정보관리단은 우리 군의 역사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기관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87호로 지정된 6·25전쟁 군사기록물을 보존·복원하며 선배 전우의 희생과 헌신을 부대에 전하는 핵심 임무를 맡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기록에 상처를 남긴다. 종이가 바스러지고, 잉크가 번지고, 오염으로 판독이 어려운 자료가 적지 않다. 기록정보관리단은 2020년부터 6·25전쟁 군사기록물 8만1420점을 대상으로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오염물을 제거하고 결손 부분을 보강하며 종이 산성화를 방지하는 등 복원과정은 단순히 낡은 종이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헌신을 다시 일깨우는 작업이다. 현재까지 4만9040점의 기록물을 복원했다.
복원과정에서 기록정보관리단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원형을 지키는 일이다. 기록물에 남아 있는 필체와 표시, 지도 위의 기호와 메모, 당시 사용된 표현 하나하나가 전장상황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원된 기록은 이후 디지털화를 거쳐 전사 연구와 학술자료로 활용된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과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기초자료로 쓰이며 보훈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주용선(군무부이사관) 육군기록정보관리단장은 “6·25전쟁 군사기록물은 대한민국을 지켜 낸 선배 전우의 희생과 헌신이 담긴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이라며 “기록을 보존하는 일은 그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육군의 약속인 만큼 역사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호국의 역사가 후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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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연구하다… 육군군사연구소, 알기 쉽게 계승 사료 한글화 사업 추진
보존된 기록은 누군가 읽어야 살아난다. 6·25전쟁 기간 국군 전사자는 13만7899명이다. 이 가운데 육군 전사자는 약 98%인 13만5858명에 이른다. 유엔 참전국에서도 3만7000여 명이 이 땅에서 산화했다. 그러나 그 희생을 숫자로만 기억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선배 전우가 어떤 전장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심으로 임무를 완수했는지 오늘날 장병이 이해하고 계승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육군군사연구소는 6·25전쟁을 비롯한 국내외 전쟁사와 전투사를 연구한다. 문제는 6·25전쟁 군사기록의 대부분이 한자 손글씨, 국한문 혼용 표현, 지금은 쓰이지 않는 군사용어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기록이 있어도 읽히지 않으면 헌신은 서류 더미 속에 묻힌다.
이에 육군군사연구소는 2015년부터 ‘6·25전쟁 사료 한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대·시기별 분류·편철된 총 109권의 1차 사료를 대상으로 △한자 원문을 알기 쉬운 한글로 옮기고 △훼손·누락된 부분을 복원하고 △도표와 그림으로 재구성한다. 전장의 기록을 오늘날 언어로 되살리는 일이다.
육군군사연구소 서우진 연구원의 책상에는 전투상보와 전투상황도가 나란히 놓여 있다. 부대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지휘관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가 여기에 남아 있다. 연구원들은 여러 자료를 대조하며 짧은 문장 속에 압축된 전장의 시간을 펼쳐 낸다.
한 가지 예로 고지전 기록은 어느 부대가 어디를 점령했다는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지형과 보급여건, 적의 접근로와 아군의 방어선을 함께 살필 때 ‘왜 그 고지를 반드시 지켜야 했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나고, 그 답은 오늘날 장병들에게 임무 수행의 의미를 일깨우는 교훈이 된다.
춘천지구전투·다부동전투·영천전투·백마고지전투 같은 주요 전투도 같은 방식으로 되살아난다. 전투기록은 당시 장병들이 어떤 조건에서 싸웠고, 어떠한 판단과 희생으로 전선을 지켰는지를 보여 주며, 현재 장병들이 미래 전장을 대비하게 하는 나침반이 된다.
호국영령의 헌신을 이름 없는 희생으로 남겨 두지 않는 게 육군군사연구소의 역할이다. 서 연구원은 “전사 연구는 선배 전우들이 어떤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지켜 냈는지를 오늘의 장병들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며 “6·25전쟁 기록에 담긴 전투 교훈과 호국정신을 장병 교육과 미래 육군 발전으로 이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기록을 예우하다… 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호국영웅 추적 검증 구슬땀
기록은 보존되고 연구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침내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
육군인사사령부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전쟁 당시 공적을 세우고도 긴박한 상황과 전후 혼란 속에 무공훈장을 받지 못한 호국영웅과 유가족에게 국가의 예우를 전하는 임무다.
조사단원들은 때로는 고고학자처럼 70여 년 전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때로는 탐정처럼 보훈기관과 관공서를 찾아가거나 지역주민과 유가족을 만나 공로자의 흔적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기록은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다. 훈장 명령과 병적기록, 공적자료를 바탕으로 이름·생년월일·본적·군번·소속부대 등 제한된 단서를 하나씩 대조해 가며 수훈 대상자를 확인하고 검증절차를 거친다.
작업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자료가 흐릿한 한자 수기로 남아 있고, 행정구역과 주소는 달라졌으며, 유가족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경우도 많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이거나 당시 기록의 한자 표기와 현재 가족관계 자료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관계기관 협조에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유가족에게 연락하는 과정에서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를 받는 일도 다반사다. 한 명을 찾기 위해 수십 건의 자료를 확인하고 지방자치단체·보훈기관·주민센터를 거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조사단은 하루라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훈장의 주인을 찾아드리는 것이 임무이자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현장 확인과 탐문 활동을 계속한다.
2019년 출범 이후 조사단은 현재까지 3만6000여 명에게 무공훈장을 전달했다. 아직 훈장을 받지 못한 수훈 대상자는 2만2000여 명이다. 단서가 하나씩 맞춰지고 무공훈장의 주인공이 누군지 확인되는 순간 오래된 공적은 비로소 오늘의 감사와 예우로 이어진다. 참전용사와 유가족에게 훈장은 단순한 증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지킨 호국영웅을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우리 군의 책임이 담겨 있다.
육군은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지켜 낸 호국영웅의 공적을 끝까지 확인해 감사와 예우가 전해질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계속 펼쳐 나갈 계획이다.
김홍빈(대령) 조사단장은 “한 분의 호국영웅이라도 더 찾아 예우하는 게 조사단의 임무”라며 “선배 전우들의 헌신이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유가족과 국민의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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