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6주년] 기억의 지도에 남은 발자취 찾다

입력 2026. 06. 24   17:22
업데이트 2026. 06. 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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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뽑은 참전용사의 생생한 목소리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6·25전쟁 참전유공자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국가보훈부가 지난달 공개한 생존 참전유공자는 2만4000여 명으로, 그중 90% 이상이 이미 90세를 넘긴 고령이다.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임채무 기자

 

 

이강성 옹진지구전투 참전용사
이강성 옹진지구전투 참전용사

 

백의걸 대구 공비토벌작전 참전용사
백의걸 대구 공비토벌작전 참전용사

 

류병추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류병추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명노섭 백마고지전투 참전용사
명노섭 백마고지전투 참전용사

 

이재국 참전용사
이재국 참전용사



기억을 지키다… 국방일보 인터뷰 데이터 핵심키워드 도출


이에 국방일보는 6·25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고 참전용사들의 위대한 유산을 후세에 전하고자 특별한 데이터 분석을 시도했다. 6·25참전유공자회가 엮은 참전용사 185명의 증언록과 본지가 직접 만난 참전유공자 48명의 인터뷰 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AI)으로 핵심 키워드 10개를 도출했다.

특히 AI의 환각 현상을 방지하고 분석의 과학적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계 프로그램 ‘R’을 활용한 텍스트 마이닝으로 단어의 빈도를 교차 검증했다. 그날의 포화 속에서 참전용사들이 가슴에 새기고,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단어들은 무엇일까. 데이터로 풀어낸 참전용사 233인의 기억을 전한다.


손양기 육군독립기갑연대 통신병 참전
손양기 육군독립기갑연대 통신병 참전

 

고순덕 도솔산전투 참전 해병대 4기
고순덕 도솔산전투 참전 해병대 4기

 

배수용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배수용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박규환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참전용사
박규환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참전용사

 

최연규 인천상륙작전 참전 해병대 1기
최연규 인천상륙작전 참전 해병대 1기




참전용사 233인의 증언 속 10대 키워드

가장 압도적인 빈도를 기록한 단어는 역시 ‘전쟁·전투’(2554회)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구체적인 전장의 모습이다. 2위에 오른 ‘고지·능선’(1051회)과 7위 ‘포탄·포격’(419회)은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된 이후 약 2년간 전선이 교착되면서 벌어진 처절한 고지 쟁탈전의 양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문주흥 참전용사
문주흥 참전용사


“오늘의 출동 목적은 백암산 고지를 공격 탈환하는 것이다. 만약 탈환하지 못하면 화천 발전소까지 적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으며 적이 남하할 경우 지형적으로 방어할 곳이 없으므로 우리는 백암산 고지를 반드시 탈환해야 한다.” (『6·25전쟁 참전수기』 중 문주흥 참전용사 증언)


박명호 백마고지참전용사
박명호 백마고지참전용사


“고지를 지키고 있는데, 우리 진지에 적 폭탄이 수백여 발 떨어진 거야. 포연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밑에서 시꺼먼 개미 떼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어. 전부 다 중공군이었지. 우리가 피 흘리며 점령하면 중공군이 포를 무지막지하게 쏘고, 중공군이 고지를 차지하면 국군은 동해에서 함포를 쐈어.” (『위대한 기록,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중 박명호 백마고지참전용사) 

참전용사들의 기억 속에서 전투란 곧 이름 모를 ‘능선’과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피 마르는 과정이었다. 또한 한 치의 땅이라도 적에게 내어줄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없이 쏟아지는 ‘포탄’과 ‘포격’ 세례의 압도적인 공포를 견뎌내며 조국의 영토를 수호해 낸 결연한 의지의 공간이었다. 


기억을 꺼내다… 전쟁 전투 피아가 교차하는 전선을 말하다

전장에서 이들이 마주했던 부류는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조국을 위협했던 ‘북한군·인민군’(712회), 등 뒤를 맡겼던 형제인 ‘전우’(538회), 그리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국군을 지원했던 ‘미군·유엔군’(296회)이다.

특히 ‘전우’라는 단어는 인터뷰와 수기 전반에 걸쳐 가장 감정적인 키워드였다. 국방일보 인터뷰에서 참전용사들은 인터뷰 도중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전우는 곧 나의 생존을 담보하는 방패였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남긴 존재였기 때문이다.


김진원 참전용사 증언
김진원 참전용사 증언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총탄에 맞고 쓰러져 죽어가도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며 산화한 전우들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고지를 놓고 한 달 반을 싸웠다.” (『6·25전쟁 참전수기』 중 김진원 참전용사 증언)

전우가 쓰러져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슬픔은 7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들의 가슴속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기억을 살리다… 목숨 희생조차 불사하며 지킨 가치 전하다

포탄이 빗발치는 한가운데서도 그들을 끝까지 버티게 한 원동력은 ‘나라·조국’(496회)과 ‘고향·가족’(394회)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희생’(443회)을 기꺼이 바쳐 사랑하는 이들과 국가를 지켰다.

 

이춘식 참전용사
이춘식 참전용사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겪은 전쟁이었습니다.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피의 고지를 넘고 또 넘었죠.” (『위대한 기록, 참전용사에게 듣는다』중 이춘식 참전용사)

이들에게 조국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당장 등 뒤에 있는 가족과 고향의 평화를 의미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노병이 된 이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훈장’(314회)은 척박한 전장에서 피 흘려 조국을 지켜냈다는 눈물겨운 긍지의 표상이자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증표다. 금성지구전투에 참전해 70년 넘게 심장 곁에 적의 총탄을 품고 살아온 류재식 6·25참전유공자회 서울지부장의 증언이 그 숭고함을 여실히 대변한다. 


류재식 서울지부장
류재식 서울지부장


“나는 내 가슴에 박힌 총탄을 훈장이라 생각해요. 가끔 비행기에 탈 때는 보안검색 과정에서 총알이 인식돼 경고음을 내곤 하죠. 그럴 때마다 총탄이 박힌 엑스레이 사진을 당당하게 보여주곤 합니다. 내 심장에 70년의 세월이 박혀 있는 셈이죠.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내 손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각오뿐이었으니까요.” (『위대한 기록,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중 류재식 서울지부장)

AI가 분석한 233명 참전용사들의 기억은 전쟁의 비극적 실체와 그 속에서 빛났던 숭고한 호국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포탄이 쏟아지는 고지에서 전우를 의지해 적군에 맞서며 가족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시간이 흘러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활자로, 그리고 데이터로 남겨진 이들의 위대한 기억을 되새기고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의 굳건한 평화를 누리는 우리가 호국 영웅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가장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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