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6주년] 귀향의 약속 DNA로 잇는다

입력 2026. 06. 24   17:16
업데이트 2026. 06. 2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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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가족 품으로…발로 뛰는 국유단
조승원 탐문관은 이번 주에도 또 다른 유가족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다.

"혹시 전사자 가족분 맞으십니까?"
70여 년 동안 이름 없는 호국영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첫 질문이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하면 떠오르는 건 6·25전쟁 전적지 곳곳에서 전사자 유해를 찾고 수습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유해를 발굴해도 대조할 가족의 유전자가 없으면 끝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국유단 탐문관들은 유가족을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모으고 있다. 호국영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오늘도 전국을 누비는 탐문관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글=김해령/사진=조용학 기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미수습 전사자와 유가족을 찾기 위해 전적지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한편, 전국을 돌며 유가족을 찾는 작업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23일 국유단 유전자분석실에서 유전자분석과 연구원이 발굴 유해의 DNA를 추출하는 모습.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미수습 전사자와 유가족을 찾기 위해 전적지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한편, 전국을 돌며 유가족을 찾는 작업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23일 국유단 유전자분석실에서 유전자분석과 연구원이 발굴 유해의 DNA를 추출하는 모습.

 


시간이 없다… 살아 계실 때 한 분이라도 더 유전자 시료 확보

지난 16일, 6·25전쟁 미수습 전사자인 고(故) 김대식 참전용사의 남동생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 측면에 ‘6·25 전사자의 가족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SUV 차량에서 국유단 탐문6팀 조승원 탐문관이 내렸다. 조 탐문관은 오래된 병적기록과 제적등본, 주민센터 방문 등을 통해 고인의 막내 남동생인 김만식(75) 씨 주소를 찾아냈다. 방문에 앞서 연락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예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연락처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설령 확인하더라도 이미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 탐문관은 김씨의 집을 찾아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시죠?” “안녕하십니까.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서 나왔습니다. 형님이 김대식 씨 맞으십니까?” 김씨는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불쑥 찾아오는 일이 드문 세상이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조 탐문관은 준비해 온 제적등본을 펼쳐 가족관계를 하나씩 설명했다. 김씨는 서류와 조 탐문관의 공무원증을 번갈아 살펴본 뒤에야 “들어오세요”라며 문을 열었다. 조 탐문관은 “김씨처럼 신분을 확인한 뒤 문을 열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 탐문관은 전사자 관련 자료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과정은 동의서를 작성한 뒤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것인데 의외로 간단했다. 과거 혈액 채취에서 구강 채취로 채취 절차가 간소화됐기 때문이다. 조 탐문관은 김씨 입 안에 음식물 찌꺼기가 없는지 확인하고 면봉과 유사한 스펀지 막대로 양쪽 볼 안쪽을 문질러 시료를 채취했다.

시료 채취를 마친 김씨는 고인에 대한 기억을 들려줬다. 다섯 형제 가운데 막내인 그는 1950년생이다. 둘째 형인 고인은 10대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1951년 전사했다. 김씨는 형이 전쟁에 나간 뒤 태어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전쟁 중 경기 수원시에 있던 집이 불에 타면서 가족사진까지 모두 사라져서다. 김씨는 “어머니께서 ‘둘째 형님이 가장 똑똑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이제 형제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형님 유해가 돌아온다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 탐문관을 비롯한 국유단 탐문관 24명은 매주 월요일 국유단 청사를 출발해 목요일까지 전국을 누빈다. 조 탐문관도 지난주는 수도권, 그 전주는 경상권을 돌았다.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외부 숙소에서 보내며 미수습 6·25전쟁 전사자의 유가족을 찾아다닌다.

 

 

고 김대식 참전용사의 남동생 김만식 씨가 유전자 채취 동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고 김대식 참전용사의 남동생 김만식 씨가 유전자 채취 동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김씨의 유전자를 채취하는 조승원(왼쪽) 국유단 탐문관.
김씨의 유전자를 채취하는 조승원(왼쪽) 국유단 탐문관.

 

국유단 유전자분석과 연구원이 발굴 유해의 유전자형을 분석 중이다.
국유단 유전자분석과 연구원이 발굴 유해의 유전자형을 분석 중이다.

 


전국 누빈다… 탐문관 24명 일주일 절반 이상 유가족 찾기 발품

김씨의 집을 나온 조 탐문관은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시간’을 꼽았다. 그는 “유전자 시료는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확보하기 때문에 형제분들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으면서 형제분들을 직접 만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전사자의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요양원까지 찾았다. 조 탐문관은 “아드님을 통해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어머님이 요양원에 계셨다”며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유전자 시료는 반드시 확보해야 했기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면봉으로 시료를 채취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시간은 탐문관들의 가장 큰 적이다. 유가족이 세상을 떠날수록 가족관계는 형제에서 조카, 손주 세대로 멀어진다. 유전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신원 확인의 정확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탐문관들은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집을 찾아야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조 탐문관은 “집을 찾아갔더니 병원에 가서 없는 경우도 있고, 직장에 다니는 조카를 밤늦게까지 기다린 적도 있다”며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 관리사무소를 찾아 연락을 부탁하거나 문 앞에 명함과 안내문을 남기는데, 연락이 오는 경우는 다섯 집 중 한 집 정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예비역 육군대위 출신인 그는 6년 차 탐문관이다. 지금까지 채취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만 2400건이 넘는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단 1명뿐이다. 그는 “많이 채취했다고 신원이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적게 했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유단에 따르면 2000년 유해발굴사업 시작 이후 지난해까지 수습된 국군 전사자 유해는 1만1488구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275명이다. 이 중 기동탐문을 통해 확보한 유전자 시료로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93명으로 전체의 33.8%를 차지한다. 국유단은 기동탐문 외에도 유가족 방문, 각종 행사에서 진행하는 순회 채취 등을 통해 유전자 시료를 확보하고 있다. 여전히 수습되지 않은 국군 전사자는 12만1948명으로 추산된다. 지난 17일 기준 확보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12만3851개다. 이를 전사자 기준으로 환산하면 7만7698명분으로, 시료 확보율은 58.1%다.
조승원 탐문관은 이번 주에도 또 다른 유가족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다. “혹시 전사자 가족분 맞으십니까?”70여 년 동안 이름 없는 호국영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첫 질문이다.

 

 



과학이 돕다… 전사자 유해서 DNA 추출…증폭 과정 거쳐 종합 분석 

탐문관들이 전국을 누비며 유전자 시료를 확보하는 동안 발굴 현장에서는 유해발굴작전이 한창이다. 현장에서 수습된 유해는 임시 감식소에서 기초 감식을 거친 뒤 국유단으로 봉송된다. 이후 국유단 유전자분석과는 전사자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를 데이터화해 비교 분석한다.

전사자 유해 유전자 분석은 유해에서 DNA를 추출하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분석 대상은 주로 허벅지뼈처럼 하중을 많이 받아 비교적 단단하게 보존되는 부위다. 먼저 뼈 표면을 깎아 오염된 부분을 제거한다. 오랜 시간 토양에 묻혀 있던 뼈는 표면이 부식되는 등 DNA가 손상된 경우가 많아서다. 이후 칼슘을 제거하는 탈회 과정을 거쳐 뼈를 부드럽게 만든 뒤 DNA를 추출한다. 이 과정에만 약 2~3주가 걸린다.

추출된 DNA 가운데 대부분은 토양 속 미생물의 DNA다. 실제 사람 DNA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사람 DNA의 양과 품질, 분석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PCR(중합효소연쇄반응)로 필요한 DNA를 증폭한다.

증폭된 DNA는 유전자형 분석 장비에서 염기서열을 분석해 데이터로 변환한다. 이후 모계 계통을 확인하는 미토콘드리아 DNA, 부계 계통을 확인하는 Y염색체, 친족 관계를 통계적으로 추정하는 상염색체 등을 종합 분석해 유가족 시료와 비교한다.

분석 결과는 유전자 정보뿐 아니라 유해 발굴 정황, 유품, 병적 기록 등을 함께 검토하는 유해발굴감식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신원이 확인된다.

유전자 분석은 평균 약 한 달이 걸리지만 추가 분석이 필요하면 수개월이 소요되고, 아예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도 기술 발전으로 과거 분석에 실패했던 유해를 다시 분석해 신원을 확인하는 사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비무장지대(DMZ)에서 유해발굴작전이 이어지면서 더 많은 유해가 수습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현 국유단 유전자분석과장은 “DMZ에서 발굴되는 유해는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며 “일반 지역은 개발과 토양 교란이 반복돼 유해 훼손이 심한 경우가 많지만, DMZ는 사람 접근이 제한돼 토양 환경이 상대적으로 유지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유전자 분석은 한 번으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확인해 반드시 이름을 찾아드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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