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4기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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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대신 총을 쥔 3000명의 소년·소녀들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온 절체절명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제주도의 어린 학생들은 주저 없이 펜을 꺾었다. 나이를 속이고,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면 손가락을 깨물어 쓴 혈서로 굳은 의지를 증명했다. 푹푹 찌는 뙤약볕 아래 무릎과 팔꿈치가 너덜너덜해져 피고름이 흐를 정도로 고된 훈련을 견뎌낸 해병 3기 1600여 명과 앳된 중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해병4기 1200여 명까지 총 3000여 명의 제주 청년들이 혹독한 훈련을 거쳐 사지로 향했다.
특히 4기에는 “조국 수호에 남녀차별을 두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치”라며 일어선 126명의 여성도 자원입대해 해군·해병대 역사상 최초의 여군이라는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빛바랜 기록 속 단정한 교복 대신 헐렁한 군복을 입고 거친 M1 가랜드 소총을 쥔 열일곱 소년·소녀들의 모습은 그들이 짊어져야 했던 시대의 비장함을 절절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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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곳은 바다뿐, 살기 위해 적진으로 내달렸다”
당시 17세의 대정중학교 4학년 신분으로 입대했던 문상선 옹. 그는 인천상륙작전과 피비린내 나는 연희 104고지 전투, 깎아지른 절벽의 도솔산지구전투 등 생사를 넘나드는 사선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도솔산전투당시 매복 중이던 적을 생포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그는 참혹했던 전장을 회고하며 끝내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해병대는 바다에서 뭍으로 오르는 군대입니다. 우리에게 후퇴란 곧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등 뒤에는 거센 파도밖에 없었기에 생사를 막론하고 무조건 적진을 향해 돌격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그의 기억 속 전쟁은 지독하리만치 외롭고 처절했다. 동지들이 곁에서 픽픽 쓰러져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들을 이끈 것은 ‘내 한 몸 바쳐 나라를 구하겠다’는 악에 받친 사명감이었다.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밥 한 숟갈 분량을 담아 마시듯 넘기고 싸웠습니다. 그 지독한 배고픔과 처절함 속에서 이 나라를 지켜낸 선배들의 피와 땀을 지금의 후배들이 부디 잊지 말아 줬으면 합니다.”
한림수산중학교 4학년 재학 중 참전한 김동학 옹은 제대로 된 청춘의 낭만 한 번 누려보지 못한 채 사지로 투입됐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거친 밧줄 사다리를 타고 뱃전에 올랐고, 원산 앞바다에선 적의 기뢰를 피하며 밤낮으로 죽음의 항해를 계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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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듯한 삭풍이 몰아치던 장진호전투. 그는 동상으로 발이 퉁퉁 부어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쩔뚝이며 퇴각하는 미군들을 후방에서 엄호하며 지옥 같은 설원을 버텨냈다. 이후 사천강 도하기습작전 중 야간 매복 전투에서 날아든 적의 수류탄 파편과 화약 불씨에 얼굴과 오른손이 타들어 가는 중화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노병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94세의 백발노인이 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뼈 있는 일침을 토해냈다. “우리 해병이 어떤 고난 속에서 피 흘리며 이 나라를 지켜냈는지 아는 사람이 이제 얼마나 되겠습니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부디 이 피로 물든 나라가 올바르게 발전하기만을 늙은 군인은 바랄 뿐입니다.”
“꿈에라도 한 번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다면…”
제주의 열일곱 살 소년·소녀들은 바람 앞의 등불 같던 대한민국을 살려낸 희망이자 오늘날 ‘무적해병’ 신화를 이룩한 반석이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승전의 이면에는 뼛속까지 시린 유가족의 짙은 눈물이 고여 있다. 아버지가 도솔산전투에서 산화해 생전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딸 임선영 씨는 평생을 한숨으로 살았다.
상실의 고통이 너무 컸던 할머니가 고인의 사진 한 장, 유품 한 점 남기지 않고 모두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포로로 끌려가 살아계시지 않을까, 언젠가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을까 평생을 기다렸습니다. 남들처럼 크면서 ‘아빠’ 하고 딱 한 번만 불러보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서럽고 원통합니다. 꿈에라도 한 번 나와주면 그걸 남은 생의 버팀목 삼아 살 텐데, 왜 한 번을 안 나타나 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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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눈물 사이로 토해낸 유자녀의 사연은 듣는 이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그는 고령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세상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는 것을 염려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만 반짝 행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정말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찾아가 손을 잡아주세요. 남은 가족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부디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조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1950년. 제주 바다를 등지고 전장에 뛰어든 소년들이 있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기억과 포연 속에서 스러져간 전우들을 향한 그리움도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파도에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있다. 지난 12일 해병대2사단 백호여단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부대를 찾은 해병대 3·4기 참전용사들을 만났다. 생존 참전용사가 크게 줄고 고령으로 장거리 이동이 점차 어려워지는 가운데 이뤄진 발걸음이었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흔을 넘긴 노병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유가족의 한 맺힌 사연을 갈무리한다. 글=조수연/사진=김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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