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대신 취향

입력 2026. 06. 24   15:55
업데이트 2026. 06. 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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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주류(酒類)가 비주류(非主流) 되는 시대


“직장인이 많이 분포한 30, 40대는 소맥, 즉 소주와 맥주를 백미보다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0, 40대의 1일 맥주 섭취량은 116.18g, 소주는 62.29g으로, 이를 합치면 178.47g으로 한국인의 주식 재료인 백미(156.03g)보다 많은 양입니다. 또한 한국인의 필수 밑반찬인 배추김치(77.61g)의 2배가 넘는 수치라고도 합니다.”

위 글을 읽고 이상하다고 느꼈는가? 이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6년 작성된 글이다. 10년 사이 일상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가계동향 자료에 따르면 주류 소비지출은 2023년 4분기부터 10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으며, 2026년 1분기 기준 물가상승을 고려했을 때 가구당 주류 지출한 돈은 지난해 동기 대비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밥보다 술을 많이 마시고, 친목에는 술이 필수처럼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술이 없는 점심 회식도 자연스러워진 동시에 많은 주점이 문을 닫았으며, 국내 수제맥주 기업들이 파산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러한 변화는 수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돼 왔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메가트렌드다. 주류(酒類)가 비주류(非主流)가 되는 시대, 술에 관한 소비문화는 어떻게 변화했으며, 산업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술에 관한 소비문화가 변화하면서 논알코올·저도수 술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대한민국맥주박람회&드링크 서울’에서 무알코올 막걸리 등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술에 관한 소비문화가 변화하면서 논알코올·저도수 술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대한민국맥주박람회&드링크 서울’에서 무알코올 막걸리 등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첫 번째로 주류 소비에 ‘건강’이 덧씌워지고 있다. 논알코올·저도수 술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의 대명사였던 소주도 일제히 알코올 도수를 내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참이슬 후레쉬의 경우 2006년 19.8도로 출시됐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16도까지 낮아졌다. 한편 롯데칠성음료의 2026년 1분기 소주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이는 ‘제로슈거’라는 부담 없는 이미지를 내세운 소주 ‘새로’ 매출이 성장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술을 마시지 않는 분위기 속에 역설적으로 숙취해소제 매출은 빠지지 않고 있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숙취해소상품의 전년 대비 매출이 3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제품유형도 음료에서 벗어나 스틱, 젤리 등 다양화되고 있다. 과음한 다음 찾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전에 챙겨 먹는 필수품이 됐다. 그만큼 술로 인해 일상에 영향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술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면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사교문화의 변화다. 20대 특화 미디어인 캐릿에서 2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학교 단체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요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1.6%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어서 캐릿에서는 MT에 양주를 들고 갔으나 아무도 먹지 않아 개봉도 하지 않은 채로 다시 들고 왔다는 대학생의 인터뷰를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술 대신 커피를 매개로 사교모임을 진행하는 ‘커피 레이브(rave·파티)’와 같은 문화로 이어진다.

팀 빌딩의 수단도 다양해졌다. 미국에서는 술을 마시는 대신 직장 동료들이 함께 스트레스를 푸는 체험이 인기다. 뉴욕에 있는 ‘더 레이저리(The Ragery)’는 사무실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물건을 부수는 체험공간으로, 2025년부터 1년 사이 기업 예약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외에 예전에 소개한 ‘사우나’가 건강을 챙기는 문화로 떠오르면서 기업 간 미팅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술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술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향을 위해 소비된다. 여럿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술을 주문할 때를 보더라도 각자 하이볼·맥주·소주 등 다른 주류를 주문한다. 심지어 소주 브랜드도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게 주문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나아가 일상에 새로움을 더하는 경험소비로서 술을 찾는다. 2025년도 주류시장 트렌드보고서에서는 향후 인기가 예상되는 트렌드로 ‘편의점 구입’ ‘즐기는 술’ ‘다양한 맛’ ‘홈술’ ‘패키지가 예쁜 술’ 등을 꼽았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신제품, 안 먹어본 맛, 혹은 보기에 예쁜 제품 등을 구매해 즐기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알코올이 목적이 아니라 기분전환이라는 경험이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가 통계수치로 나타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음주한 사람 비율은 2014년도에 20대가 가장 높고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낮아졌던 데 비해 가장 최근 자료인 2024년 기준으로는 40대가 가장 높다. 친목으로서의 술 대신 집에서 즐기는 취향으로서의 주류 소비가 반영된 결과이자 세대 변화를 보여주는 결과다.

전 세계 주요 주류 기업들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기존의 술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음료’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경험’을 강조한다. 최근 RTD(Ready-to-drink) 카테고리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하이볼을 비롯해 칵테일류를 다양한 맛과 도수로 출시해 소비자에게 선택의 재미를 제공한다. 음료캔의 상단이 완전 개봉되는 ‘풀탭’ 방식을 적용하거나 거품이 풍성하게 일어나는 설계를 통해 맥주잔에 마시는 듯한 경험을 강조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맥주 브랜드 기네스(Guinness)는 무알코올 버전을 알코올의 대안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만들고 있다. 2024/2025 시즌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글로벌 파트너십 업체로 참여하며 스포츠 팬들의 응원문화와 브랜드를 연결 지을 뿐만 아니라, 무알코올 버전을 통해 건강하고 책임 있는 음주문화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기업의 사업영역을 시대흐름에 맞게 변경하기도 한다. 일본의 맥주 브랜드로 출발한 기린(Kirin)은 맥주 사업에서 축적한 발효·바이오 기술을 기반으로 식음료·의약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실제로 기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룹 원천이 ‘미생물학’이라고 설명하며 자체 개발한 면역 케어 기능성 성분을 활용한 식음료 제품이 전년 대비 약 40% 성장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주류산업의 변화는 소비자의 가치관, 나아가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어떻게 시장의 구조를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앞으로 또 어떤 일상의 변화가 산업의 향방을 결정할까?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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