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챗GPT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우스꽝스러운 대답이나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어내는 환각(hallucination)으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불과 3년이 지난 2026년 현재, 생성형 AI의 발달로 우리 삶이 극적으로 바뀔 것이라느니 하는 불안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AI는 만능이 아니다. 최근 스탠퍼드 연구진에 따르면 같은 AI 모델이라도 그것을 감싸는 설계(하네스)의 차이에 따라 같은 과제에서 성능이 6배까지 차이 났다고 한다.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어떤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모델을 어떻게 다루느냐며, 활용을 끝내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생성형 AI를 잘 활용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 즉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지식이다. 그런데 그 핵심은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스스로 오래 부딪치고 고민하며 쌓은 고유한 경험에 있다. 외워 둔 지식의 양은 더 이상 교육 성과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교육이 길러야 할 것은 무엇인가. 검색하면 나오는 것을 머리에 채우는 일은 이제 기계의 몫이다. 교육이 길러야 할 것은 그 위에 있다. 마주한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파고들어야만 얻어지는 고유한 경험, 그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력,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안목, 그리고 자기 결정을 책임지는 태도다.
나는 그 답을 사관학교 교양 수업에서 마주했다. 생도들에게 교양 수업은 지나가는 소나기와 같다. 맞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소나기. 그럼에도 그 비를 맞겠다고 내게 문학 수업을 들으러 오는 생도들은 대개 학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문학을 만난다. 잠깐 내리고 그칠 소나기일 뿐이지만 어떤 씨앗은 바로 그 비에 싹을 틔운다.
처음에는 좋은 작품을 한 편이라도 더 보여 주고 싶어서 가장 빛나는 것만 골라 꽉 찬 강의를 짰다. 그러나 생도들에게 내 수업은 빼곡한 일과 중 하나였고,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우는 것은 애초에 핵심이 아니었다. 교양(敎養)이란 가르칠 교에 기를 양, 지식을 채우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기르는 말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덜 설명하고 더 묻는다. 왜 이 문장이 네 마음에 남았는지, 너라면 어떻게 썼을지를 되묻는다. 생도가 자신의 감상을 글로 써 오면 다시 함께 고민한다. AI에 글감을 던지면 그럴듯한 글이 나오지만 거기엔 글쓴이의 고민이 없다.
직접 써 본 생도만이 그 세련돼 보이는 문장이 실은 텅 비어 있음을 알아챈다. 왜 이 작품을 그렇게 읽어 냈는지, 왜 이 문단을 여기에 뒀는지 물으면 생도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고 그에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만의 관점과 문체를 찾아간다.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을 함께 통과하는 것, 그리고 고민의 깊이를 더하도록 이끄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불안의 시대에도 계속해야 할 올바른 교육이다.
생도들이 기억하는 것은 내가 나눠 준 지식 목록이 아니다. 무언가가 처음으로 열리던 그 순간이다. 하늘공원에 올라 함께 시를 쓰던 경험,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분석해 동기들 앞에서 왜 좋은지 설명하던 시간.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교육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끝내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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