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시간을 얻을 것인가, 잉여인간이 될 것인가

입력 2026. 06. 22   15:24
업데이트 2026. 06. 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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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기술일까? 문명일까? 전기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문명이다. 전기는 ‘발명된 기술’로 출발했지만 인간의 생활 방식 전체를 바꾼 순간부터 문명이 됐다. 

전기는 인간의 근육노동을 줄였다. 그러나 기술이 시간을 줄여줬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삶이 줄어든 시간만큼 더 좋아지고 성장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남는 시간에 공부하고, 관계를 넓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반면 누군가는 그 시간을 더 오래 쉬고 더 많이 필요 없는 것들을 소비하는 데 썼다. 기술은 시간을 만들어주지만, 그 시간을 어디에 쓸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AI)도 다르지 않다. 기술로 시작됐지만 인간의 삶 속에 스며들면서 문명이 되고 있다. AI는 글쓰기, 번역, 기획, 분석 같은 인지 노동의 시간을 빠르게 단축한다. AI가 만들어주는 이 시간은 모두에게 비슷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시간이 ‘잉여시간’이 될지, ‘잉여인간의 시간’이 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첫 번째 차이는 질문에서 발생한다. AI에게 “보고서 써줘”라고 명령하는 사람과 “이 사안을 효율, 인력, 예산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실행 우선순위를 제안해줘”라고 묻는 사람은 같은 AI를 써도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다. 그저 귀찮은 일을 AI에게 맡겨버리는 사람은 조만간 그 AI에게 대체될 것이다. “내 생각의 빈틈은 무엇일까?” “내 글을 반박해 봐”처럼 AI를 자기 능력의 빈틈을 찾고 메우는 데 쓰는 사람에게 AI는 성장을 돕는 파트너가 된다.

두 번째 차이는 맡길 것과 직접 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데 있다. 초안 작성, 자료 정리, 반복 업무, 형식 변환은 AI에게 맡길 수 있다. 그러나 판단, 책임, 방향 설정, 가치 선택, 인간 이해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가 일을 줄여줘도 결심과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한다.

세 번째 차이는 남는 시간을 그냥 소비하느냐, 투자하느냐에 따라 갈리게 된다. AI가 하루 두 시간을 줄여준다면 1년이면 700시간이 넘는다. 새로운 전문성 하나를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시간을 공부와 새로운 기술 습득에 쓰는 사람은 1년 뒤 완전히 달라진다. 반대로 그 시간을 소비성 콘텐츠로만 채운다면 AI는 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무력함을 편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네 번째 차이는 자기 관점을 갖느냐에 있다. AI는 평균적인 답을 빠르게 만들어낸다. 앞으로 평균 수준의 보고서와 기획은 더 흔해질 것이다. 역설적으로 평균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자료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구조를 발견하는 힘, 같은 현실을 다른 관점으로 재정의하는 힘이다. AI가 답을 대신 줄수록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답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의 진짜 질문은 “AI를 쓸 수 있는가”가 아니다. 이미 누구나 쓸 수 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줄여준 시간으로 나는 무엇을 더 인간답게 할 것인가.” 목적이 있는 사람은 AI를 지렛대로 쓰고, 목적이 없는 사람은 마취제로 쓴다. 관점을 가진 사람은 AI를 통해 더 선명해지고, 관점이 없는 사람은 AI가 만든 평균 속에 묻힌다.

AI는 우리에게 빈 그릇 하나를 건네고 있다. 거기에 목적을 담으면 성장의 시간이 되고, 회피를 담으면 잉여인간의 시간이 된다. 잉여시간을 가진 인간이 될 것인가, 시간이 남아도 성장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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