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원화 구멍들… 킹달러에 킹받네

입력 2026. 06. 22   16:00
업데이트 2026. 06. 22   16:27
0 댓글

『위클리 경제이슈』'고환율의 역설’

요즘 뉴스에서 ‘환율이 많이 올랐다’ ‘달러가 강세다’란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당장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에게는 직격탄입니다. 비싸진 항공권에 현지 숙박비와 식비 부담까지 더해지자 여행 계획을 미루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수입 기업 역시 울상입니다. 같은 원재료나 상품을 수입해 오더라도 수입 비용이 크게 늘어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환율 상승에 따른 결과죠.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후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분위기가 달라질까요? 특히 현재 우리나라 수출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호조를 보이고 있고, 이에 경상수지도 흑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원화가치가 강해지며 환율이 큰 폭으로 내려갔어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요즘 원화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환율 1500원대가 ‘뉴노멀’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1달러를 사기 위해 더 많은 원화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환율이 13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면 같은 100달러를 사기 위해 13만 원이 아니라 15만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환율이 상승하면 곧바로 한국 경제의 위기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물론 지나친 고환율은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만 이번 환율 상승은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과거처럼 외환 보유액이 낮아져 우리 경제가 무너진 이유에서라기보다는 ‘달러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진 결과에 따른 경제적 현상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시장점검회의에서 반도체 업황 개선과 경상수지 흑자 확대 등을 감안할 때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견조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외환보유액 역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신현성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은 최근 국내 반도체 업황의 이익 전망이 지속적으로 상향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의 펀터멘털(기초체력)과 대외신인도는 견고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의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000억 달러(약 153조 원)를 넘어섰고, 외환보유액도 세계 12위 수준입니다.

이처럼 수출이 잘 되는데 원화는 왜 힘을 쓰지 못하는 걸까요? 이를 두고 ‘고환율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고환율의 역설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쉽게 말해 ‘달러를 사려는 사람은 많은 반면 원화를 사려는 사람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우선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견조하고 미국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자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으로 몰리고 있는 영향이 큽니다. 즉, 미국 국채나 예금에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달러 수요가 늘면 달러 가치는 당연히 오르게 되고,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죠.

최근 미국이 이란을 재차 공격하면서 중동 지역 긴장이 재고조되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고 있고, 달러 가치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 한국처럼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의 경우 원유 대금을 달러로 더 많이 결제해야만 하는 입장이 됩니다. 그만큼 달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주식 매도세가 지금의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팔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서 본국으로 가져가게 되죠. 이에 따라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이것이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118조 원 이상을 순매도했습니다. 5월 한 달 동안에만 44조 원 넘게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고, 이달 들어서도 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스피가 급등하면서 차익 실현 수요가 커진 데다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부각되자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내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집중되고 있는 겁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출이 늘어나면 달러가 국내로 유입돼 환율이 자연스럽게 하락했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제공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제공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주식 등에 투자를 보다 자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아예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공장을 짓고, 직접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즉, 수출로 달러가 들어오는 만큼 투자 목적으로 달러가 다시 해외로 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달러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 같은 고환율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 중입니다. 중동 긴장 고조와 미국 금리 인상 전망 등 대외 요인에 더해 일부 투기적 거래가 원화 약세 흐름을 키우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일례로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필요시 시장 개입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로 인한 달러 수요를 줄이기 위한 외환스와프를 활용하는 한편 외환수급 점검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미 통상협상 과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내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 역시 환율 변수로 꼽히는데요.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투자가 확대될 경우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한 달러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 한미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들은 ‘한미전략투자특별법’ 시행에 앞서 환율 불안이 대미 직접투자 수익성과 자금 조달 비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긴밀히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환율은 수출기업에는 호재일 수 있습니다. 같은 100달러를 벌어도 더 많은 원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유와 원자재, 반도체 장비 등 수입 비용도 함께 상승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해외여행 비용과 해외직구 가격 등이 오르고 수입 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율 상승에 따라 늘어난 수출기업 이익이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결국 내수 침체를 야기하는 요인이 되고 맙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로 시장은 한숨을 돌렸지만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중동 정세 때문만이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와 해외투자 확대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다방면에서 고환율의 역설을 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필자 방영덕 기자는 매경AX에서 유통 및 산업 분야 취재를 맡고 있다. 소비 트렌드부터 굵직굵직한 산업 이슈 등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고 한다.
필자 방영덕 기자는 매경AX에서 유통 및 산업 분야 취재를 맡고 있다. 소비 트렌드부터 굵직굵직한 산업 이슈 등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고 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