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균열하는 NPT 체제, 핵비확산 전략의 전환 모색할 때
평가회의 3연속 결과문서 채택 불발
핵군축보다 핵군비경쟁 지속 가능성
핵사용 금지 단계·실천적 목표 전환
AI·사이버 우발적 핵사용 위험 포함
핵보유국 간 경쟁 심화 완화 동시에
비핵보유국 간 연대·외교 압박 병행
2026년 5월 22일 제11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Review Conference)는 또다시 최종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채 막을 내렸다. 이로써 NPT 평가회의는 연속적인 세 번의 결과문서 도출에 실패했고, 그 효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올해 평가회의 결과문서 채택 실패는 이란 문제가 방아쇠였지만 그 총은 이미 장전돼 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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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T는 1970년 핵보유국의 핵군축과 비핵보유국의 비확산 의무를 규정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는 조약이다. 1970년 비준 이후 회원국은 조약의 의무 이행 상황을 검증하기 위해 5년마다 평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NPT를 강대국 간 핵 경쟁과 핵보유국의 확산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핵전쟁 위협으로부터 전략적 안정성을 보장하고자 했다. 창설 50년이 지난 지금 NPT는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의 의무상 태생적인 불평등 구조를 갖고 시작됐기 때문에 분열 요인이 잠재됐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역대 11번의 NTP 평가회의에서 실질적 결과문서가 채택된 경우는 네 차례였다. 여섯 차례는 절차적 결과문서만 채택했거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1995년 평가회의는 NPT 무기한 연장이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포괄적 최종문서 채택에는 이르지 못했다. 특히 최근 개최된 세 번의 평가회의 결과문서 채택의 실패로 강대국 군비경쟁 구도와 맞물려 NPT 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강화되고 있다.
우선 NPT 평가회의 성과의 조건과 실패의 구조를 살펴보자. 결과문서가 채택된 회의는 1975년, 1985년, 2000년, 2010년으로 NPT가 비준되고 바로 개최된 회의였거나, 핵군축 시도 및 적극적인 움직임이 결실을 맺었던 시기다. 공통적인 조건은 당시 미국과 소련 또는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 의지가 강했다는 점과 핵군축 진전이 비보유국에 주는 유인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00년 회의 성공은 1990년대 미·러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Ⅰ·Ⅱ) 협상 타결을 토대로 비보유국의 합의를 유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최근 개최된 세 번의 평가회의에서는 다음 의제들에 의견 합의를 보지 못했다. 첫째 2015년 평가회의에서는 중동 비핵화 지대 설정 논의에 대해 강대국 간 의견 충돌로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 둘째 2022년(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연기 개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핵무기 위협을 막으려는 문안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로 결과문서가 성안되지 못했다. 셋째, 올해 평가회의는 이란 핵문제와 북한의 비핵화 문구 삭제에 대한 합의 실패로 결국 최종문서 도출에 실패했다.
3연속 실패의 공통분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표면적 이슈는 달랐지만 핵무기 보유국(P5) 중 하나 이상이 지정학적 이슈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핵군축 의무를 외면하는 핵보유국에 대한 비핵보유국의 불만이 누적된 것이 본질적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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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미·러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만료(2026년 2월)는 세계 최대 핵보유국 간 대타협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2026년 평가회의에서는 New START 조약의 후속 협상 촉구 문구조차 삭제됐다. 또한 ‘핵전력 현대화’ 명분 아래 확대되고 있는 핵의 수직적 확산 양태는 이러한 대타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해 회의에서 미국과 폴란드 대표단은 ‘핵무기 사용의 재앙적 인도주의적 결과’란 기존 문안에 대해 단순한 핵무기 폭발은 재앙적 결과를 반드시 초래하지는 않을 수 있으며, 이러한 문구 재강조가 핵 억지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NPT 6조상 핵군축 의무를 보유한 5개국이 오히려 핵전력을 강화하는 역설은 NPT 체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NPT 체제는 이번 평가회의를 기점으로 실패했는가? 평가회의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합의문 채택 불발이 반드시 NPT 체제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체제의 균열점을 다시 진단했다는 분석도 있다. NPT의 실패가 아닌 정치의 실패로 ‘핵 자제’라는 정치적·법적 구속력은 지속될 것이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번 NPT 평가회의 결과로 NPT 체제 권위의 균열이 비확산 규범 자체를 잠식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체제는 붕괴하지 않겠지만 권위와 실효성 약화는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번 평가회의 결과가 NPT 체제에 던지는 함의는 세 가지로 진단할 수 있다. 첫째 핵보유국끼리, 혹은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사이의 갈등으로 NPT 체제 균열이 진단됐으며, 이는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자국 안보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세 속에 핵군축보다는 핵군비경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그럼에도 NPT를 대체할 더 구속력 있는 조약의 성안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체제의 절차적 유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제사회 핵비확산 레짐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정할 수 있다. 우선 NPT 체제 내 의제 설정을 안전한 핵관리 및 유지, 무력 충돌 시 절대적인 핵사용 금지와 같은 단계적·실천적 목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AI), 사이버 기술이 핵 운용과 결합해 발생하는 우발적 핵사용 위험은 기존 NPT 체제가 다루지 못했던 영역으로, 이를 포함하는 논의 전환도 요구된다. 아울러 핵보유국 간 경쟁심화를 완화시키는 동시에 비핵보유국 간 연대를 통한 외교적 압박도 병행돼야 한다.
NPT 체제 위기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험 증가와 연결돼 있기에 한국 안보에도 직접적 함의가 있다. 국제사회 레짐의 방향성 속에 북핵 문제가 논의 의제로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되 동맹과 자강으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근본적인 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NPT 체제 속에서 북핵 위험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낮출 것인가? NPT 체제가 완전히 약화된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이 있는가? 다만 핵비확산 레짐을 약화시키는 형태의 자강은 명분을 잃으며, 우리의 안보를 국제사회의 선의와 동맹에만 의지하는 것은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2031년 제12차 NPT 평가회의를 위한 준비가 다시 시작된 만큼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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