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는 냉장고의 ‘더위사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등굣길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빨리 집에 가 더위사냥 먹어야지! 수학익힘책을 풀어도, 교실 앞뒤 청소를 해도 시원한 더위사냥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한입 베어 물면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쌉싸래하니 맛있을까. 나이를 먹어 가며 더 이상 더위사냥은 그만큼의 효용을 주지 못하게 됐지만, 이를 대신하는 게 생겨났다. 중학교 때는 일주일에 3번 들어 있는 체육시간을 떠올리면 행복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앞 맥도날드 소프트콘을 먹으며 하교하는 30분이 버티게 했다. 대학생 때는 동기들과의 술 한잔이 그 자리를 꿰찼다. 초등교사가 된 뒤에는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격의 없이 주고받는 농담이 달콤했다. 그리고 26세, 뒤늦게 군인이 됐다.
일병 때는 시간이 안 간다는 선임들의 말이 청천벽력처럼 느껴졌다. 빨리 전역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가면 어떡하지. 마음을 부대 안이 아닌 밖에, 과거에 두고 살았다. 휴가를 손꼽고, 여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견뎠다. 냉장고엔 과거의 기억만 가득했고, 그것들을 버릴 수 없었다. 풋살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서 매일 풋살을 했다.
바깥바람을 쐬면 기분이 좋아질까 분대외출을 나갔다. 포상휴가를 모으기 위해 특공무술을 신청했고 푸르게 멍들어 가며 연습했다. 야간 경계근무를 하면 상점을 줘 지원했지만 추위에 벌벌 떨며 후회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냉장고에 더위사냥이 쌓여 갔다.
동기들과 이부자리에 누워 주고받던 실없는 농담들이 일과 중 떠올라 웃음 짓게 됐다. 전우들과 함께할 풋살을 생각하면 들고 있던 엔진오일통이 가벼워졌다. 분대외출 때 팝콘 모자를 쓰고 찍었던 네 컷 사진은 아직도 지갑에 있다. 특공무술을 연습하며 들었던 푸르뎅뎅한 멍들은 무단증이 됐다. 선임과 야간 경계근무를 설 때 벌벌 떨며 나눠 썼던 핫팩은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웠다.
문득 되돌아봤을 때 이미 냉장고는 가득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살며시 웃음이 났다. 그 웃음으로, 기억으로 다음 날 아침 눈이 떠졌다.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다. 다음 날의 하루는 또 그다음 날의 더위사냥이 됐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상병이 됐고, 병장을 앞두게 됐다. 곧 전역을 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소중한 기억을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본다. 초등학생 때 더위사냥을 떠올리던 것처럼.
이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군대에 몸담고 있는 여러분의 더위사냥은 무엇인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고 생각만으로도 배시시 미소 짓게 하는 달콤쌉싸래한 더위사냥은 무엇인가. 군 생활의 냉장고를 열어 봤을 때 항상 시원한 더위사냥이 가득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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