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채운 큐비즘、빛으로 물든 한강

입력 2026. 06. 18   16:48
업데이트 2026. 06. 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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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미술관의 문법 ⑥퐁피두센터 한화, 한강 변에 펼쳐지다 

근현대 미술의 성지 퐁피두의 亞 첫 분관
전통 기와 곡선미 재해석 건물 외관 눈길
개관전으로 韓·佛 공동 기획 큐비즘 조망
여의도, 국제 문화예술 허브로 도약 기대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 제공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 제공


서울 여의도 한강 변에 위치한 63빌딩은 오랫동안 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전망대와 수족관, 아이맥스 극장 등 시민들의 추억을 담아냈던 이 건물에 최근 새로운 문화공간이 문을 열었다. 퐁피두센터 한화. 1977년 개관 이후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아시아의 새로운 거점으로 서울을 선택한 것이다.

2023년 한화그룹이 메세나 경영철학의 일환으로 퐁피두센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63빌딩에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아시아 첫 번째 분관을 유치했다는 소식은 큰 화제가 됐다. 한화와 퐁피두는 4년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매년 두 차례씩 퐁피두센터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전시를 선보이는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을 국제무대와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수많은 직장인의 출퇴근길이자 한강을 품은 일상의 공간 여의도를 해외 명작 전시장을 넘어 국제적인 문화예술의 허브로 재정의하겠다는 대담한 시도다.

근현대 미술의 성지 퐁피두센터
퐁피두센터는 미술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다.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의 이름을 딴 이 기관은 파리 도심의 낡은 보부르 지역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한 곳으로 도서관과 음악연구소, 영화관, 카페, 공연 공간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복합문화센터다.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파리 본관은 배관과 구조체를 외부로 드러낸 파격적인 ‘인사이드 아웃(Inside-Out)’ 건축으로 미술관이라는 단어에서 기대되는 모든 것을 배반하는 건축으로 유명하다. 콘크리트와 대리석 대신 거대한 철골이 드러나 있고 배관과 덕트, 에스컬레이터가 건물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다. 건물의 내장을 뒤집어 외벽에 붙여놓은 것 같은 이 건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파리 시민들은 도심 한복판에 정유 공장이 들어섰다며 경악했다. 그러나 이 기이한 구조물은 어느덧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퐁피두센터의 진정한 힘은 컬렉션에 있다. 약 12만 점에 이르는 소장품은 세계 최대 규모의 근현대미술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셀 뒤샹, 소니아 들로네 등 20세기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집약돼 있어 현대미술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파리 본관이 2030년까지 대규모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면서 퐁피두는 세계 각지의 파트너 기관을 통해 컬렉션을 순회 전시하고 있는데, 서울의 퐁피두센터 한화 역시 이러한 국제 프로젝트의 중요한 거점이 됐다.

수족관이 떠난 자리, 미술관이 들어서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건축 설계는 세계적인 건축 거장 장미셸 빌모트가 맡았다. 빌모트는 루브르 박물관 리노베이션, 엘리제궁 실내 개보수, 인천국제공항 프로젝트 등을 두루 거치며 빛과 재료, 동선을 통해 도시와 예술의 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해 온 건축가다. 빌모트가 이번 작업에서 제안한 핵심 콘셉트는 바로 ‘빛의 상자(Box of Light)’다. 한강 변을 따라 우뚝 솟은 황금빛 63빌딩의 수직성에 대비되도록 미술관은 낮게 깔리는 수평적인 ‘빛의 띠’ 형태로 설계됐다. 

우선 전통 기와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투명 접합 유리 외관이 특징이다. 낮에는 자연광이 전시장 내부로 은은하게 스며들고, 밤에는 미술관 안의 불빛이 밖으로 번져나가며 한강을 비추는 도시의 등대로 변모하며 거대하고 화려한 존재감을 뽐내기보다 극도의 절제와 순수함을 통해 작품이 온전히 주인공이 되도록 배려한 시선이 돋보인다.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레이몽 뒤샹-비용의 청동 조각 ‘대형 말(The Large Horse)’은 건축과 조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복합 문화공간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시각의 혁명으로 여는 새 시대
큐비즘(입체주의)은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1907년을 전후해 파리에서 일으킨 시각 혁명으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회화의 사명이라 믿어온 오랜 관습을 단호히 거부한 실험이다.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보고 해체한 뒤 화면 위에 재조립하는 이 방식은 회화의 역사를 나누는 분기점이 됐다. 

한국과 프랑스 공동 큐레이터십으로 기획된 개관전은 총 54명 작가의 작품 112점을 선보이며 큐비즘의 태동부터 전개, 확산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뿐만 아니라 국내 관객에게 다소 낯설었던 소니아 들로네, 나탈리아 곤차로바 등의 작품을 통해 큐비즘이 특정 유파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 국제적 아방가르드 운동이었음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제2전시실에 마련된 특별 섹션 ‘KOREA FOCUS: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다. 서구의 시각 혁명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어떻게 수용되고 번역됐는지 살피는 이 자리에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이수억 등 한국 미술사 거장 11인의 작품 21점을 함께 배치했다. 큐비즘 이후 현대적 시각이 한국적 현실과 감각 속에서 새롭게 번역된 과정을 조망하며, 전시 전체를 단순한 서구 미술사의 소개가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 미술의 대화로 완성했다.

미술관은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대감각을 번역하는 장치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실험정신을 상징하는 퐁피두센터가 서울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다는 것은 단순한 문화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서울이 더 이상 세계 미술의 주변부가 아니라 주요한 대화의 무대가 됐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다. 여의도의 밤을 밝히는 새로운 빛의 상자 안에서 우리는 현대미술의 역사뿐 아니라 앞으로의 예술이 향할 미래 또한 함께 마주할 것이다. 파리에 가야만 볼 수 있던 명작들을 이제 이 도시에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미술관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한 도시에 미술관이 생긴다는 것은 도시인의 삶을 확장하는 것과 같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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