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퐁피두센터는 안다. 퐁피두센터는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해 1977년 파리에서 개관한 미술관이다. ‘벨 에포크’(1871~1914년)라는 말로 함축되던 유럽 문화의 최전성기가 지나가자 파리가 가졌던 예전의 압도적이었던 문화적 위상은 뉴욕 등 다른 도시로 옮겨졌다. 파리가 도시를 재개발할 겸 과거의 전성기를 만회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 퐁피두센터다.
근대 이전의 고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루브르박물관, 인상파 미술을 중점적으로 전시하는 오르세미술관, 현대미술 중심의 퐁피두센터는 문화의 도시 파리를 대표하는 전시공간이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퐁피두센터는 건축형태가 특이하다. 내부에 있어야 할 전기시설, 배관설비, 통로 등의 기능을 외부로 돌출시킨 파격적인 건축물이다.
퐁피두센터는 미술품 전시뿐 아니라 영화,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퐁피두센터에서 진행한 다양한 실험의 프로그램과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는 이후 세계 각지에서 추진되는 복합문화공간의 모범이 됐다. 퐁피두센터 광장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루프 트레인을 타고 최상층에 오른 연인들은 멀리 에펠탑 뒤로 번져 나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화양연화의 시간을 갖는다.
어수선한 빈민가였던 보부르 지역에 퐁피두센터가 들어서니 그 일대가 변신했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세계적인 화랑이 몰려들어 새로운 미술생태계를 만들었다. 갤러리 세미오즈는 걸어서 3분 거리다. 서울에도 지점을 갖고 있는 갤러리 페로탱은 도보 10분 거리다.
2026년 6월 서울 여의도 63빌딩 옆에 ‘퐁피두센터 한화’가 개관했다. 국내 미술계로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파리 퐁피두센터는 리노베이션 공사를 위해 2025년부터 2030년까지 휴관한다. 퐁피두센터는 2010년 프랑스 동부의 메스에 분관을 세웠다. 2015년엔 스페인 말라가에 해외 분관을 설립한 데 이어 이번에 퐁피두센터 한국 분관이 들어선 것이다.
개관전으로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이 열리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 등 교과서에서나 보던 입체파 작가 43인의 작품 91점이 전시됐다. 파리 미술관에 직접 가서도 보기 힘든 수준 높은 대형 전시다. 이와 더불어 특별섹션 ‘코리아 포커스’에서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유영국, 박래현, 한묵 등 한국작가 11인의 작품 23점을 전시했다. ‘퐁피두센터 한화’라는 미래지향적 공간과 입체파 작가들에게 스며든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광휘를 발휘하며 새로운 미적 체험을 선사한다. 공간이 달라지면 작품도 달라진다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2030년까지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개최될 전시 주제와 작가는 예정돼 있다.
여의도는 정치와 금융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TV 방송사가 집중한 시기도 있었다. 여의도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엘리트들이 모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여의도에 몇몇 갤러리가 있었으나 대부분 철수했다. 당분간 여의도는 퐁피두센터 한화의 전시로 미술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보부르 지역에 퐁피두센터가 들어서자마자 그 지역의 분위기가 변신했던 것처럼 미술인의 잦은 발길과 함께 여의도의 생태계도 바뀌지 않을까 한다. 정치, 금융은 경쟁의 장르다. 미술은 모두가 아름다운 꽃인 화엄의 비경쟁 장르다. 이제 여의도에 미술생태계가 더해지는 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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