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국가유산청이 함께하는 ‘두 발로 만나는 국가유산’
산지승원-산사의 길
마음을 비우는 발걸음
통도사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온
불심의 길에서 지혜의 숲을 보다
발끝을 채우는 시간들
수많은 세월 이어온 역사와 문화
가장 한국적인 사색에 잠기다
바쁜 일상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지쳐 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고자 했던 일이 무위에 그칠 수도 있고, 때로는 영원할 것 같던 인연이 멀어질 수도 있다. 고통스럽지만 지나간 시간은 강물처럼 흘려보내자. 그리고 오롯이 내 안의 깊은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속세를 벗어나 깊은 산속의 사찰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옭아매던 집착의 끈을 끊기 위해 ‘산사의 길’로 떠났다. 글=노성수/사진=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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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에서 불교를 접하긴 어렵지 않다. 굳이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형 사찰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연등 행렬도 친숙한 일상이다. 그렇지만 속세를 완전히 벗어나 산속에 자리 잡은 사찰 산사(山寺)를 찾아 나서는 길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산지승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는 통도사·부석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대흥사 등 7곳에 해인사·송광사를 더해 9개 사찰로 이뤄져 있다. 지역적으로도 충청도를 시작으로 경상도, 전라도까지 범위가 방대하다. 속세에 얽혀 있는 삶인 탓에 어쩔 수 없이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대표 사찰을 찾는 데 만족해야 했다.
먼저 경남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로 향했다. 서울에서 통도사를 방문하려면 KTX를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서울역에서 KTX에 몸을 싣고 2시간여 만에 울산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렌터카를 빌려 20여 분 달리면 영축산 자락에 자리 잡은 통도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인한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가람의 배치를 세 지역으로 나눠 상·중·하로전으로 구성한 게 특징이다. 노전이 3개인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7세기 산지승원의 특징뿐 아니라 수행과 신행의 시대적 변천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심 사찰로 불릴 만하다.
또한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비롯한 4만여 점에 이르는 성보유물과 600여 점에 달하는 불화·글씨 등을 보존하고 있는 ‘불보의 종찰’이자 ‘민족 문화유산의 보고’다.
푸르게 우거진 소나무숲을 지나 ‘영축산 통도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통도사 경내로 진입할 수 있다. 큰 규모의 사찰답게 건물이 많은데, 전체적으로는 남향이지만 지형 때문인지 가람 배치가 동서로 길게 돼 있다.
이어 천왕문을 통과하면 극락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극락세계를 열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끈다는 아미타불을 모신 건물이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어진 건물답게 외관부터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극락전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영산전과 약사전이 자리해 있다. 석탑은 큰 받침돌에 2층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른다. 규모는 작지만 특유의 분위기 덕에 경내를 빛내는 존재다. 영산전 내부에는 다보탑 벽화를 비롯해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 내용을 담은 수준 높은 벽화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약사전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수명을 늘려 준다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이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지만, 약사여래불에게 영원한 건강을 빌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나니 대웅전을 향하는 길이 왠지 가벼워지는 듯했다. 통도사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 대웅전에는 일반적인 대웅전과 달리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다. 금강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인돼 있어서다.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처음 지어진 뒤 여러 차례 보수되거나 다시 건립됐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화마에 피해를 본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보수한 것이다. 건물의 동서남북에는 다양한 편액이 걸려 있는데, 남쪽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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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금강계단은 대웅전 옆에 있다. 이곳에선 승려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인 계율을 받는 수계의식이 이뤄진다. 사리탑 보존을 위해 금강계단 참배는 음력 초하루에서 초삼일, 음력 보름, 지장재일(음력 18일), 관음재일(음력 24일)로만 제한된다.
아쉽게 금강계단 참배는 못 했지만, 마당 내에 자리 잡은 연못을 둘러보기만 해도 치유의 기운을 느꼈다.
통도사는 사찰이지만 2021년 지정된 현충시설이기도 하다. 우리 군이 6·25전쟁 기간 부산 동래에 있던 31육군병원 분원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전쟁 중 부상한 3000여 명의 장병이 입사해 1952년 4월 12일 퇴거했다는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이에 통도사는 호국영령 위령제를 5년째 이어 오고 있다. 방문객이라면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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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새벽 경남 합천군 해인사로 향했다.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중심이자 고려대장경을 모신 사찰로 한국인의 정신적인 귀의처로 꼽힌다. 해인사의 이름 역시 불교 경전 가운데 최고라고 인정받는 『화엄경』 속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에서 비롯됐다. 해인삼매는 우리의 마음이 거울처럼 맑고 투명해 있는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의미한다.
해인사 인근에는 가까운 KTX 역도 없어 오직 버스나 자차로 접근해야 한다.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다. 해인사로 향하는 길 역시 수행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해인사가 잘 알려진 것은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리는 고려대장경 덕이다. 고려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고려가 부처님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 나가자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바른 최고(最古)의 대장경이자 정확성과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은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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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산신이 깃든 소원나무를 지나 해인사 경내에 들어서면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하는 석등과 정중삼층석탑이 방문객을 맞는다. 워낙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해외 관광객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어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대적광전’이 위용을 드러낸다. 해인사는 『화엄경』 중심 사찰이어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대웅전이 없고, 화엄세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주 법당이다. 대적광전 뒤편으로 또 한 번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팔만대장경’이란 편액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려대장경의 실물이 앞에 놓여 있다. 숨을 고르고 발을 내딛자 스님의 목탁 소리까지 귓가에 울려 퍼지며 황홀한 순간을 맞이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재 고려대장경은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돼 있다. 고려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에 임시 설치된 나무 가리개 틈 너머로 살펴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속세의 시선으로는 아쉬움이겠지만, 해인사를 빠져나오면서 느낀 감정은 기쁨이었다. 이번에 직접 마주하지 못한 고려대장경을 다음에 마주할 기회가 또 생기지 않았는가. 산사의 길을 다녀온 나는 어느새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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