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의 상처 남았지만…삶은 멈추지 않았다

입력 2026. 06. 15   16:13
업데이트 2026. 06. 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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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Ⅲ - 아프리카-우간다 ③ 

월드컵 결승전 응원 현장 덮친 테러
추모비·표지석도 없이 장터로 변해
생존자가 생생히 증언한 폭발 참상
질병·빈곤 속 이어지는 현실 보여줘

 

우간다 캄팔라의 카돈도 럭비경기장은 대형 테러사건으로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다. 2010년 7월 11일 밤 수천 명의 시민이 이곳 넓은 잔디운동장에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월드컵 축구 결승전을 즐겼다. 하지만 2번의 엄청난 폭발음은 축제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74명이 목숨을 잃었고, 80명 이상이 다쳤다.

 

2010년 테러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우간다 캄팔라 카돈도 럭비경기장 인근은 현재 먹거리 장터로 변해 있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생존자 피터(오른쪽)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0년 테러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우간다 캄팔라 카돈도 럭비경기장 인근은 현재 먹거리 장터로 변해 있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생존자 피터(오른쪽)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우간다의 풍토병 에볼라와 말라리아

엔테베 인근에 위치한 숙소 침실엔 대부분 대형 모기장이 있었다. 말라리아와 에볼라 감염 대응책이다. 그러나 화장실, 옷장, 탁자 뒤에 숨어 있는 모기를 100% 퇴치하는 것은 힘들다. 결국 예방약을 꾸준히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캄팔라를 벗어나면 전문 의료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간다 농촌의 주요 사망 원인은 에이즈·말라리아·결핵 등 감염병이다. 병원이 없는 지방에서는 전통 치료사에게 가거나 민간요법에 의존한다. 최근엔 인접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규모 에볼라가 발생해 우간다로 유입되고 있다. 이달 중에만 19명의 확진자와 2명의 사망자가 보고됐다.

에볼라는 사망률이 최대 70%에 달한다. 우간다에서도 매년 수백만 명이 말라리아에 걸린다. 연간 1만6000명이 이 병으로 죽는다. 5세 미만의 어린아이가 대부분이다. 숙소 창밖에 펼쳐진 광활한 정글, 붉은 황톳길, 넘치는 하수로를 보니 모기 서식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간다 체류기간 항상 말라리아 예방에 바짝 신경 써야만 했다.

 

 

럭비경기장 주변에 자리한 잔디운동장.
럭비경기장 주변에 자리한 잔디운동장.

 


먹거리 장터로 변한 테러사고 현장 

캄팔라에서 이디 아민의 흔적을 찾을 때 함께했던 운전기사 아초아는 우간다 폭탄테러 사고 현장을 방문해 볼 것을 권했다. 어두운 역사 유적에 관심을 많이 보이자 외국인이 거의 찾지 않는 럭비경기장으로 안내하겠다고 나선 것. 2010년 일어난 이 테러는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아초아는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친구가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주저할 것 없이 캄팔라 시내로 다시 달려갔다. 엔테베·캄팔라 고속도로에는 자동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도로 주변의 빅토리아호수 늪지대에는 온갖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캄팔라 시내로 들어서니 교통체증이 심각했다. 인파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이면도로는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자동차가 정차하면 어김없이 과일을 손에 든 노점상이 창문을 두드렸다.

인파를 헤치고 카돈도 럭비경기장에 도착했다. 2층 목조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잔디운동장이 있었다. 운동장 끄트머리엔 페인트가 벗겨진 럭비장 골대가 서 있다. 울긋불긋한 유니폼의 럭비선수들 대신 건물 주변 야외식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그득했다. 스포츠센터라기보다 먹자골목촌처럼 느껴졌다. 푸짐한 소고기와 채소류를 마음껏 먹었지만 가격은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엔테베 국제공항 구활주로 주변 도로.
엔테베 국제공항 구활주로 주변 도로.

 

빅토리아호수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
빅토리아호수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



폭탄테러 현장의 생존자 증언 

아초아의 친구인 피터는 이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앞치마를 입은 그는 직접 고기를 구워 식당 안으로 옮기곤 했다. 피터의 말에 의하면 2010년 월드컵 결승전 당시 이곳 잔디운동장에는 축구 애호가로 가득 찼다. 아슬아슬한 경기 장면에 시민들은 환호했고, 자신도 식당에 머무르며 대형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경기 종료 직전 섬광이 번쩍이며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의자와 테이블이 공중으로 날아갔고, 곧바로 정전이 됐다. 관중의 비명이 터졌고 잔디밭 곳곳에 시신 조각이 나뒹굴었다.

피터는 처음엔 주변 변압기가 폭발한 것으로 착각했으나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테러임을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의 이름을 외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부상자들은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응급처치를 받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손수건과 옷으로 출혈을 막았다.

당시 우간다는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에 수천 명의 병력을 파병하고 있었다. 사건 직후 소말리아 내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샤바브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우간다의 소말리아 개입에 대한 보복이 그 이유였다.

피터는 잔디운동장 안의 대략적인 폭탄 폭발지점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테러현장 주변에는 추모비나 표지석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역사 인식과는 한참 차이 나는 우간다의 현실이었다.


‘우간다의 바다’ 빅토리아호수

캄팔라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엔테베 국제공항 구활주로 주변을 돌아봤다. 이곳은 현재 우간다 공군이 운영 중이다. 빅토리아호수와 연결된 활주로는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최적의 공항 입지조건을 갖췄다. 공항 울타리를 따라 돌면서 본 농가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원통형 지붕에 출입구가 한 개뿐인 움막이었다.

활주로 끝자락에 자리 잡은 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면적은 약 6만8800㎢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이 호수는 우간다가 43%, 탄자니아가 49%, 케냐가 8%를 차지하고 있다. 우간다 빅토리아호수는 경상남도 전체 면적보다 훨씬 넓다. 이 호수 덕분에 엔테베는 기온 변화가 적고 시원하며 습도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우간다 대통령궁도 엔테베에 있다. 호수 주변에는 광대한 파피루스 습지가 형성돼 있다. 풍부한 플랑크톤과 수생식물로 물고기 개체 수가 엄청나다. 그래서 우간다인은 흔히 빅토리아호수를 ‘우리의 바다’라고 부른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는 조선대 초빙교수, 충남대·국간사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세계<br>의 전사적지를 찾아서』등이있다.
필자 신종태는 조선대 초빙교수, 충남대·국간사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세계
의 전사적지를 찾아서』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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