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생들을 인솔해 독일 트리어의 한 학교로 국제 공동수업을 다녀왔다. 트리어는 로마시대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시다. 한국 학생들은 현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생활을 공유하고, 홈스테이를 하면서 짧지만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눈길을 끈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교실과 복도, 운동장에서 만난 몇 가지 장면이었다.
당시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계속됐다. 학교 안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선풍기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손부채질을 하거나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혔고, 수업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쉬는 시간엔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간단한 음식을 먹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하기보다 친구와 얼굴을 마주하고 몸을 움직이는 학생들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몇몇 수업에선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사에게 인사한 뒤 수업을 시작했고, 질문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자기 생각을 말하려 애썼다.
이 짧은 경험만으로 독일 교육 전체를 말할 순 없다. 어느 한 나라의 교실을 잠깐 본 뒤 그것을 정답처럼 말하는 것은 경솔하다. 우리 학생들의 성실함과 집중력, 빠른 이해력 역시 분명한 장점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는 일이 아니라 낯선 장면을 통해 지금 우리 교육이 무엇을 더 길러야 하는지 묻는 일이다.
그 질문 끝에서 떠오른 말이 ‘주저함의 힘’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반응하는 데 익숙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즉시 검색하고, 인공지능(AI)에 질문하면 곧바로 답이 돌아온다. 빠르게 답하는 능력은 중요하나 교육이 오로지 그 방향으로만 흐를 때 놓치는 것이 있다. 사람을 깊게 만드는 힘은 언제나 속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저함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다. 그것은 섣불리 말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태도다. 질문 앞에서 곧바로 정답을 내놓기보다 잠시 멈춰 자기 생각을 가다듬고 상대의 말을 곱씹는 힘이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힘이다. 삶의 중요한 결정은 대개 즉답보다 숙고 끝에 더 단단해진다.
생각은 원래 조금 느리고, 성장은 잠시 멈추는 시간 속에서 이뤄진다. 말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한 순간, 쉽게 짜증 내지 않고 불편을 견딘 순간, 당장 답을 찾지 못해도 질문을 품고 버틴 순간이 사람을 깊게 만든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자기 언어가 생기고, 남의 생각을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단단하고 천천히 자란다.
교육은 정답을 맞히는 기술과 함께 정답이 보이지 않을 때 견디는 힘도 길러 줘야 한다. 불편함을 참는 태도,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는 습관, 질문 앞에서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는 인내, 실제로 보고 듣고 만나며 배우는 경험이 필요하다. 디지털이 편리할수록 실제 세계를 몸으로 통과하는 배움은 더 중요해진다. 화면은 정보를 주지만, 삶의 농도는 관계와 체험 속에서 짙어지기 때문이다.
군 생활 또한 이런 힘을 기르는 시간일 수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조절하고, 불편을 견디며, 빠른 자극 없이도 생각을 이어 가는 힘을 배우게 해서다. 즉답의 시대에 주저함을 배운다는 것은 뒤처짐이 아니라 더 깊이 나아가기 위한 내면의 호흡을 익히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교육에 더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느린 힘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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