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시절,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부대사(部隊史) 작성 이야기가 나왔다. 각 실무자의 자료를 취합하고 사진을 정리하며 문장을 다듬는 작업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바쁜 업무 속에서 부대사 작성은 종종 ‘또 하나의 행정업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부대사는 반드시 해야 하는 연례 업무였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단에서 부대사 업무를 직접 담당하며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창설 이후 이어져 온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부대사가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부대가 걸어온 시간을 담은 역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대사에는 한 해 동안의 주요 작전과 훈련, 부대 개편, 장비 변화 등 다양한 기록이 담긴다. 때로는 부족했던 점이나 사건·사고도 함께 기록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며 잊혔을 이야기가 기록을 통해 부대의 역사로 남는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 사단은 쉼 없이 달려왔다. 한미 연합 공중기동훈련부터 CWMD(대량살상무기 대응부대)·ISTF(군단 통합지원특수임무부대) 임무 수행, 포병부대 최초 자력기동, 인천 도시지역훈련장 개장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만약 기록하지 않았다면 이 뜨거웠던 순간은 기억의 풍화작용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부대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된 경험은 휘발되지 않고 조직 자산으로 축적된다.
군조직에서 기록은 단순한 자료 이상의 의미로 ‘미래를 위한 나침반’이다. 후배 장병들은 우리가 남긴 기록으로 선배들이 어떤 환경에서 임무를 이행했는지, 예상치 못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배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기록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시행착오는 줄어들고, 부대의 노하우는 대를 이어 전승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조직의 경험을 축적하고 전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거창한 사건 속에서만 찾으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는 매일 반복되는 고된 훈련과 묵묵히 처리하는 임무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게 바로 기록이다. 부대사를 작성하며 적어 내려간 한 줄의 문장, 정성껏 고른 사진 한 장이 훗날 우리 부대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것이다.
과거에는 부대사 작성이 단순한 행정업무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부대사 작성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신성한 작업이다. 우리는 부대사의 마지막 마침표 하나까지도 결코 가볍게 찍을 수 없다. 오늘 우리가 남기는 한 줄의 기록이 바로 내일의 부대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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