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에, 예술』 선 넘은 미술 ⑥ 촉각
미술관 엄격한 보호 규칙 적용하지만
엄정순, 손끝으로 경험하는 대상 제안
주디 시카고, 공감각 체험 공간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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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는 여러 가지 금지 사항이 있다. 작품에 가까이 가지 말 것, 옆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할 것, 음식물 반입 금지 등등. 이 가운데 전 세계 미술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금기는 바로 ‘만지지 마시오’ ‘눈으로만 보시오’일 것이다. 작품에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은 거의 모든 미술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관람 예절로 여겨진다. 미술관 입구에는 관람 예절을 안내하는 매뉴얼이나 패널이 세워지고, 전시장 안에서도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인제책과 눈으로만 보라는 안내 문장이 작품 앞이나 공간 곳곳에 배치돼 이 중요한 규칙을 강조한다.
작품을 손으로 만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작품의 훼손 우려 때문이다. 살짝 손을 댄다고 해서 작품이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와 손상이 작품 안에 일어날 수 있다. 민감한 재질로 이뤄진 작품의 경우에는 작은 움직임이나 접촉만으로 파손·변형될 위험이 있다. 유기물로 이뤄진 작품의 표면은 온도와 습도의 변화, 공기 중 물질에 의해 변화하고 시간에 따라 노화한다. 특히 사람의 손에 존재하는 유분과 염분, 먼지 등 여러 물질은 작품을 변형시키고 노화를 가속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현대미술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뿐만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기 때문에 작품의 표면에 손이 닿는 행위 자체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손상된 작품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 100%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만지지 마시오’는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따라서 미술품을 오랫동안 보존해 미래 세대에 전승해야 할 책임이 있는 미술관은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작품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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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대 미술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금지 사항과 경계를 넘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신체적 접촉과 촉각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작품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은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온몸으로 느끼며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또 금속, 나무, 부드러운 천, 자연 속 모래 등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질감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제시하고 시각예술의 범위를 넓힌다. 즉, 촉각을 사용함으로써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작품 감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접근성 또한 넓혀간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작품을 통해 탐구해 온 엄정순 작가(1961~ )는 시각에 의존하는 작품 감상 방식을 넘어 작품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왔다. 엄정순의 전시에서는 보통의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지지 마시오’ ‘눈으로만 보시오’ 같은 안내문 대신 ‘작품을 만지면서 감상하시오’라는 낯선 문장이 제시된다. 작품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끝과 몸 전체로 경험해야 하는 대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엄정순은 1996년 ‘우리들의 눈’이라는 법인을 설립한 뒤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시각예술에서 소외된 이들이 손끝으로 미술을 접하며 미술을 보는 행위가 아니라 느끼고 읽는 행위로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확장한다. 작가는 올해 초 개인전을 개최해 손끝으로 만지며 이해하는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점자책으로 이뤄진 작품 ‘찰나 2001-1’(2026)은 바람에 날리는 종이의 소리와 빛에 의한 그림자, 손에 닿는 점자 등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교차한다. 눈이 아닌 손끝으로 읽는 점자책은 읽는다는 행위가 단지 눈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어린이미술관 ‘오~감각미술관’에 설치돼 내년 2월 21일까지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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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로 된 책에 흑연으로 다시 글자를 써 내려간 ‘흑연으로 쓴 코끼리-기록되지 않은 도서관’(2026)은 한 권의 책인 동시에 읽기의 방식 자체를 되묻는 작품이다. 손끝으로 점자를 읽고 만지는 순간 흑연으로 쓴 글자는 뭉개지며 점차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책 속에는 ‘자, 이제 그대들의 손가락을 보게나. 눈으로 읽을 수 있었던 글자들은 다 뭉개져서, 그대들의 지문 사이에 검은 ‘보푸라기’처럼 박혀 버리지 않았는가.
책 속의 코끼리는 사라졌네만, 진짜 코끼리는 이제 그대들의 손끝에 스며들었다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은 시각적으로 읽히는 글자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촉각적 경험이 남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손으로 읽은 책은 손끝을 통해 우리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결국 기억과 감각의 형태로 남는다. 어쩌면 읽는다는 것은 눈으로 의미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되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섬유·자수와 같이 여성적 매체로 여겨져 온 수공예를 중심에 두고 작업해 온 주디 시카고(1939~ )는 촉각적 요소를 통해 전통적 조각 양식을 새롭게 전복해 왔다. 특히 차갑고 딱딱한 것으로 인식돼 온 조각을 부드럽고 감각적인 공간으로 바꿔 관람자가 몸으로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설치된 주디 시카고의 ‘깃털의 방’은 직사각형의 백색 공간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고 136㎏의 거위털(깃털)로 채워 경계가 사라진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설치 작품이다.
공간을 가득 채운 깃털을 만지고 몸으로 느끼는 이 환경은 촉각을 넘어 공감각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작품은 리움미술관의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에서 재현돼 오는 11월 29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은 직접 깃털 속을 걷고 만지며 감각을 확장해 볼 수 있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시각 중심의 미술에서 벗어난 예술은 보는 것에서 만지고, 듣고, 몸으로 통과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감각의 위계를 흔들고, 예술이란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느끼고 읽는가’에 더 깊이 연결돼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촉각을 강조하는 작품들은 단순히 만질 수 있는 작품을 넘어 촉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몸 전체로 경험하게 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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