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문학 - 두 도시 이야기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일본 도쿄(下)
에도 막부, 습지에 대규모 토목공사
18세기 초 인구 100만 명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로
목조 가옥 잦은 화재 ‘에도의 꽃’이라 부를 정도
관동대지진·미군 대공습…다시 폐허
새 수도 찾는 대신 개조와 부흥의 기회 삼아
‘안전하고 함께 사는 법 ’ 새로운 방향 모색
일본 도쿄도청사 45층 전망대에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벙커에서 본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진 건물과 그 틈 사이 뻗은 철도 위로 열차가 달린다. 도쿄는 1923년 관동대지진과 1945년 대공습이라는 두 번의 극단적인 파괴 뒤에 다시 태어난 도시다. 이 도시에도 시대를 앞서간 도시설계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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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끝없는 도시박물관
도쿄에서 우리는 좀처럼 느긋할 수 없었다. 이곳은 역사가 층층이 쌓인 거대한 박물관 같았고, 그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에도시대 서민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센소지 주변 나카미세 상점가는 지금도 활기차게 여행자를 맞이한다. 반대로 마루노우치지구는 메이지유신 이후 영국과 독일의 영향을 받은 붉은 벽돌 근대 건축물이 금융 중심지를 이룬다. 우리는 도쿄를 순환하는 야마노테선을 타고 몇 정거장 이동만으로 수백 년의 시간을 넘나들 수 있었다.
도쿄의 넓은 평야 위로 길게 솟은 마천루들은 도쿄의 규모와 특징을 한눈에 보여 준다. 그중 도쿄타워와 도쿄스카이트리는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1958년에 완공된 도쿄타워는 에펠탑보다 더 높이 세우고자 했던 일본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1960년대 이후 이어진 고도 경제성장기의 빽빽한 도시 모습과 활기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타워 아래 시바공원의 녹지는 거대한 철탑과 대비를 이룬다. 도심 속 휴식공간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잘 나타낸다.
2012년에 완공된 도쿄스카이트리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 세워졌다. 높이 634m의 스카이트리는 과거 ‘무사시’로 불리던 지역에 들어서며 도쿄가 에도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변화해 온 도시임을 한눈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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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도시가 동쪽의 수도가 되기까지
에도는 도쿄의 옛 이름이다. 일왕이 교토에서 이주하기 전까지 도쿄는 에도로 불렸다. 에도가 본격적인 도시 형태를 갖춘 것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무사정권)를 열 때부터다. 당시만 해도 도쿄는 습지가 대부분이었다. 무질서한 습지를 거주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산을 깎아 바다를 매립하고 연못의 물을 끌어오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며 도시로 개조했다.
성곽을 중심으로 계급별로 도시를 구획했는데, 에도성 서쪽은 다이묘(지방 영주) 저택이 둘러쌌고 서민과 상인은 스미다강 동쪽 저지대 시타마치에 모여 살았다. ‘아랫마을’이라는 뜻의 시타마치는 오늘날 우에노·아사쿠사·니혼바시 지역으로 더 이상 아랫동네가 아닌 도쿄의 중심지다.
에도 막부는 전국 영주들에게 에도에 저택을 유지하라고 명했다. 영주를 따라온 가신들도 함께 이주하면서 전국의 노동력과 자본이 에도로 집중됐다. 18세기 초 에도 인구는 100만 명을 넘어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 최대 도시가 됐다.
하지만 목조 가옥으로 가득한 에도는 화재가 잦아 사람들이 이를 ‘에도의 꽃’이라고 부를 정도로 화재에 취약했다. 결국 이 목조 가옥들은 훗날 대지진과 대공습으로 도쿄가 처참하게 잿더미가 되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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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신베이의 부흥작전
에도 막부시대가 끝나고 일왕이 교토에서 에도로 거처를 옮기자 동쪽의 수도 도쿄가 탄생했다. 메이지 일왕은 북미와 유럽을 시찰한 사절단을 통해 서구의 도시계획 기법을 배우고 봉건 성읍 도시였던 에도를 서구식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려 했다.
도쿄의 근대 도시계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고토 신베이다. 외과의사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가인 그는 대만총독부 민정장관, 남만주철도 초대총재, 철도원 총재, 체신상 등을 역임하며 식민지 행정과 근대 인프라 건설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일제 식민정책의 대표주자로 우리에게 썩 반가운 이름은 아니다.
고토가 도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20년 시장 취임부터다. 그는 하수도 시스템 확충, 도로 폭 확대, 대규모 공원 조성으로 도쿄를 서양 대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국가 예산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과 정적들의 비판으로 3년 만에 시장직에서 물러난다. 그가 퇴임하고 4개월 뒤인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의 관동대지진이 도쿄와 가나가와 일대를 강타했다. 직접 피해도 심각했지만 더 큰 재앙은 화재였다.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화재가 이틀 넘게 이어져 도쿄 면적의 44%가 불탔고 15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합산하면 10만 명이 넘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불을 지르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 학살이라는 비극까지 초래했다.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도쿄를 재건할 사람으로 뽑힌 고토는 내무상 겸 제도부흥원 총재로 복귀했다. 그는 “도쿄를 세계 최고의 현대 도시로 개조할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선언하며 정치적 반발에 막혔던 야망을 실현한다.
도쿄의 부흥은 역설적으로 관동대지진에서 시작됐다. 폐허가 된 도시는 버리고 새 수도를 찾는 게 쉬웠을 텐데, 고토는 단순 복구가 아닌 미래를 대비한 ‘부흥’을 목표로 삼았다. 도쿄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뻗는 방사형 도로와 이를 연결하는 8개 환상도로(방사형 도로들을 서로 연결하는 원형 순환로) 체계를 설계했다. 지진 후 화재로 무너진 목조 다리 400여 개를 철제 다리로 교체하고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대형 공원을 조성했다. 또 도시 곳곳에 철근 콘크리트로 ‘부흥 초등학교’를 세우고, 옆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 긴급대피소로 활용했다.
그는 고밀도 주거지역의 화재 취약성을 해결하고자 일본 최초의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공동주택을 건설했다. 수세식 화장실과 가스설비를 갖춘 이 아파트는 도쿄 중산층 주거 모델의 시초인 도준카이주택이 됐다.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이들 주택은 도심 개발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요요기 국립경기장 근처 오모테산도 힐스에 일부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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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폐허, 두 번의 올림픽
고토의 손에 잠시 일어선 듯 보였던 도쿄는 또다시 화염에 휩싸이고 만다. 1945년 3월 10일 자정 무렵 미군의 대공습으로 단 하루 만에 관동대지진 때 잃은 도쿄 면적보다 더 넓은 지역이 불탔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 공습으로 도쿄는 도시 면적의 약 60%를 소실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파괴는 전후 건축가들에게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백지를 제공했다. 두 번의 폐허를 경험한 도쿄는 두 번의 올림픽으로 시대적 얼굴을 새롭게 그려 냈다.
폐허 위에 구축된 전후 도쿄의 얼굴을 가장 강렬하게 규정한 건축가는 단게 겐조다. 그는 1964년 요요기 국립경기장을 설계했다. 서구 모더니즘과 일본 전통건축의 공간 원리를 접목해 세계 무대에 선보인 것이다. 케이블을 지탱하는 2개의 콘크리트 지지대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지붕은 일본 가람건축의 곡선을 현대구조 공학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반세기 뒤 건축가 구마 겐고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도쿄의 새 얼굴을 그렸다.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그의 철학은 차갑고 거대한 20세기 콘크리트·철강건축이 아니라 목재·대나무·석재·종이 등 자연재료로 건물이 주변 환경에 녹아들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단순 친환경 설계를 넘어 일본 전역에서 가져온 목재를 사용해 도쿄올림픽을 ‘국가 전체의 것’으로 표현했다.
재난 속 진화하는 도쿄
도쿄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놀이터가 된 이유는 고토의 튼튼한 기반 덕분이다. 이후 단게와 구마는 ‘도쿄가 급성장하던 때’ ‘자연과 어우러지는 때’를 각각 보여 주며 도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요즘 도쿄의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은 기후위기와 인구 변화라는 전 세계적인 고민에 실용적인 답을 제시한다. 또한 계속 부수고 다시 짓더라도 ‘안전하고 함께 사는 법’이라는 뿌리를 지키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 준다. 여행자는 매일 새롭게 살아나는 도시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관동대지진과 전후 공습이라는 2차례의 큰 재앙을 겪은 도쿄는 이를 딛고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 방향을 모색했다. 400년 전 에도에서 시작된 도쿄의 역사는 무너짐과 재건을 반복하며 이어졌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대도시로 자리 잡았다. 야마노테선을 따라 도시를 순환하는 여행자도, 아침 창문을 열고 골목을 바라보는 주민도 각자의 자리에서 도쿄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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