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사람
미 DPAA 특별프로젝트 매니저 진주현 박사
장진호전투 통해 유해 확인 본격 작업
2010년부터 600여 구 신원 밝혀내
조부모 6·25 당시 미군 도움받아 피란
한미 함께 피흘린 ‘혈맹’ 결코 변치않아
7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인연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있다. 스물이 갓 넘은 청년의 유해와 이를 지켜보는 중년의 법의인류학자. 청년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 기이한 만남은 절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학자는 묘한 감정과 함께 소명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특별프로젝트 매니저 진주현 박사 이야기다. 글=맹수열 기자·박유빈 인턴기자/사진=이윤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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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박사는 이날 장진호전투 76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마련한 초청강연을 위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장진호전투는 그가 본격적인 유해 신원확인의 길에 들어서는 계기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일단 직장이 필요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 주어졌죠. 특히 장진호전투는 제가 본격적으로 전사(戰史)를 공부하게 된 계기이자 북한까지 건너가 유해를 발굴하게 된 계기, 무엇보다 제 할아버지·할머니께서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대한민국에 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투여서 더욱 뜻깊습니다.”
진 박사의 조부모·외조부모 모두 전란을 피해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다. 특히 조부모의 경우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군 함정의 도움을 받아 내려온 이들이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진 박사는 6·25전쟁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장진호전투는 직업에 대한 소명을 심어 준 운명적인 계기가 됐다.
“원래 저는 장진호전투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어요. 일을 위해 전사를 공부하다가 글 맨 끝에 ‘흥남부두에서 미군이 북한 주민 10만 명을 배에 태우고 내려왔다’는 문구가 있었죠. 그때 할아버지 생각이 나 미국에서 전화를 드렸어요. ‘할아버지, 집 떠난 날이 언제예요?’ 물었더니 1950년 12월 4일이래요. 그날부터 흥남부두로 향하신 것이죠. 다시 물었어요. ‘그러면 타셨던 배 이름이 기억나세요?’ 그랬더니 ‘LST(상륙함)라는 배’라고 하셨어요. 영어도 못하시는 분이 너무나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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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배에 의지해 한국에 온 진 박사의 조부모는 전남 여수에 정착해 그의 아버지를 낳았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진 박사는 그 순간부터 자신 앞에 놓인 미군의 유해가 다르게 보였다고 한다.
“이 유해의 주인공들은 사망 당시 나이가 저희 할아버지와 거의 같아요. 18~23세의 꽃다운 청년들이죠. 이분들은 그곳에서 전사했는데 할아버지는 미군 덕분에 배를 타고 내려와 아버지를 낳으셨고, 저는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이분들을 만나 유해 앞에 서 있다니…. 너무 큰 인연이라고 생각했어요. 피란민 후손도 많고, 직업도 많은데 제가 그분들의 유해 신원확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 일은 직업을 넘어 꼭 해야 할 소명이 됐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신원을 확인한 유해는 600여 구. 진 박사는 “신원을 확인하는 모든 순간순간이 소중했다”고 털어놨다. 유가족들이 감사인사를 전할 때는 고마우면서도 속상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가끔 행사 등에서 유가족들을 만날 일이 있어요. 그분들이 제 손을 꼭 잡고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시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제가 태어난 나라에 와서 가족이 생명을 잃은 셈인데, 유해를 찾아 줘 고맙다고 하니 가슴이 짠하면서도 오히려 제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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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박사는 오랜 시간 유해를 바라보며 자연스레 ‘평화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한다.
“이분들이 70여 년 전 집을 나섰을 때 ‘전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군인이니까요. 하지만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분은 한 분도 없을 거예요. ‘(전사해도) 집에는 가겠지’ ‘누군가 챙겨 주겠지’라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그런 분들이 제 앞에 ‘무명용사’로 와 계신 것이죠. 뉴스를 보면 전쟁에서 몇 명이 전사했다는 이런 추상적인 숫자만 나오잖아요. 저는 전쟁의 뒷모습, 남겨진 것, 살아남은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을 매일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평화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굳건한 한미동맹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6·25전쟁에 참전해 함께 피를 흘린 ‘혈맹’이란 사실은 절대 변치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미동맹에 대해 여러 의견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6·25전쟁입니다. 참전해 목숨을 잃은 미군 수는 3만6000명. 엄청난 숫자죠. 만약 한국이 어떤 나라에 병력을 보내 3만6000명이 전사했다고 하면 정말 큰일이죠. 말로만 ‘혈맹’이 아니라 목숨으로 보여 준 동맹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걸고 한국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진 박사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유해발굴에 여념이 없는 우리 장병들에게 “그 어떤 나라 장병들보다 믿음직스럽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에서 몇 차례 발굴을 할 때마다 그 지역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이 지원을 나왔어요. 너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발굴을 잘하더라고요. 우리 장병들이 정말 훌륭하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모두 건강히 군 생활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이어진 강연에서 진 박사는 유해 신원확인의 중요성과 업무 중 겪었던 에피소드, 한미동맹의 중요성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갔다. 그는 강의 말미에 슬럼프에 빠졌던 자신에게 큰 힘이 돼 준 신원확인 전사자들의 생전 사진을 공개했다.
“제가 만난 유해가 사실 이렇게 생긴 분이었구나. 그 얼굴들을 보면 잠시 잃었던 힘을 얻을 수 있었죠.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이 굉장히 보람 있다는 것. 사진을 모으면서 고귀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 말에서 강의 전 인터뷰에서 그가 얘기한 ‘소명’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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