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로 전통을 계승하다

입력 2026. 06. 01   15:08
업데이트 2026. 06. 01   16:11
0 댓글

군가는 군대의 혼을 담는 그릇이자 장병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무형의 전력이다. 전장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용기를 불어넣고, 고된 훈련 속에서는 서로의 심장 박동을 하나로 맞추는 동질감의 원천이 된다.

지난 1월 백령도 전진기지의 유도탄포대장으로 부임한 나는 부대를 둘러보다가 복도 한편에 있는 게시판에서 우리 기지의 부대가 악보를 발견했다. “바다의 눈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함대의 창이 되어 비수를 꽂는다.” 가사를 읽어 내려갈수록 우리 부대원들이 공유해야 할 자부심과 임무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대 내 그 누구도 이 노래를 기억하거나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제작 시기도, 곡조도 알 수 없는 채로 악보만 벽면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경험과 의지를 녹여냈던 부대가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대로 모르는 척한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에 나는 평소 깊은 관심을 뒀던 음악적 지식에 최근 주목받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보기로 했다. 잊힌 노래에 숨을 불어넣어 부대의 자긍심을 되찾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먼저 악보의 음표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옮겼다. 여기에 수많은 군가를 학습한 AI를 활용해 우리 부대의 가사와 선율 데이터를 입력하고 행진곡풍의 편곡을 진행했다. 여러 차례 수정과 조율을 거치자 마침내 오랫동안 종이 위에 잠들어 있던 우리 기지의 선율이 현실의 소리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복원된 첫 번째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선배들과 악수를 나누는 듯한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전통은 박물관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이 순간 장병들의 입술 끝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나는 복원된 원곡을 바탕으로 신세대 장병들의 감성에 맞춘 편곡을 시작했다. 강렬한 에너지의 록, 비트감이 살아있는 힙합, 그리고 아이돌 스타일까지.

변화는 놀라웠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부대가는 이제 장병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체력단련 시간에 록 버전의 부대가를 들으며 한계를 넘어서고, 휴게실에서 힙합 버전을 흥얼거리는 장병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다. 부대가의 비장한 가사가 20대 청년들의 활기찬 리듬에 실려 부대 곳곳으로 퍼져나갈 때, 우리 부대는 비로소 하나가 됐다. 과거의 전통이 현대의 감성과 만나 장병들의 자부심으로 피어난 것이다.

군은 무기체계로만 싸우는 조직이 아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유대감, 내가 지키는 이 바다에 대한 자긍심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창이자 방패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복원된 부대가를 통해 하나로 묶였다. 서해 최북단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우리는 선배들의 유산에 감성을 더해 필승의 의지를 다지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유환 대위 해군2함대 백령도전진기지<br> 
김유환 대위 해군2함대 백령도전진기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