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립운동가 6월의 6·25전쟁 영웅

입력 2026. 05. 31   16:40
업데이트 2026. 05. 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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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박하균·강달룡·박내홍 선생
고된 옥고에도 6·10만세운동 앞장

6월의 6·25전쟁 영웅  김광수 육군대위·밴 플리트 미 육군대장·밴 플리트 2세 공군대위
K고지 지키고 전사…대이어 한미동맹 강화 기여

(왼쪽부터) 박하균 선생, 강달룡 선생, 박내홍 선생, 김광수 육군대위, 밴 플리트 미 육군대장, 밴플리트2세 미 공군대위.
(왼쪽부터) 박하균 선생, 강달룡 선생, 박내홍 선생, 김광수 육군대위, 밴 플리트 미 육군대장, 밴플리트2세 미 공군대위.



국가보훈부(보훈부)는 6·10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박하균·강달룡·박내홍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은 3·1운동 이후 다시 전개된 대규모 항일독립운동이었다.

박하균(1902~미상) 선생은 1919년 함흥과 홍원의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서 활동하며 6·10만세운동 준비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강달룡(1888~1940) 선생은 진주 3·1운동을 주도해 3년 형을 받았지만, 노동·농민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해 사회적 약자의 권익 향상에 힘썼고 천도교, 민족주의 세력과 협력해 6·10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박내홍(1894~1928) 선생은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위원으로서 6·10만세운동의 전국적 봉기를 계획하고 준비했다.

같은 날 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헌신한 김광수 육군대위, 밴 플리트 미 육군대장과 그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공군 대위를 ‘6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광수(1931~1953) 대위는 1951년 12월 육군소위(갑종장교 8기)로 임관해 1953년 3월 9사단 30연대 11중대 선임장교로 강원 김화지역 북진능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같은 해 6월,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대규모 공세를 단행한 중공군에 맞서 K고지를 사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어 전사했다.

밴 플리트(1892~1992) 대장은 1951년 4월 11일, 미8군 사령관으로 임명돼 6·25전쟁에 참전했다. 여러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북상시키는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장군의 아들 밴 플리트 2세(1925~1952) 대위도 B-26 폭격기 조종사로 6·25에 참전했지만, 1952년 4월 4일 서해 연안 해주 인근에서 폭격 임무 중 실종됐다.

장군은 외아들의 실종 소식에도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또한 1951년 10월,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로 다시 개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대한민국 정예 장교 양성의 토대도 마련했고 1957년에는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설립하는 등 한미동맹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에 오늘날 한미동맹 기여자에게 ‘밴플리트상’이 수여되고 있다.

노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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