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전역 후 2020년 6월부터 전적지 답사와 6·25참전유공자 인터뷰를 이어오며 다양한 보훈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담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 인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오인구 할아버지다. 처음 뵌 것은 2021년 7월, 6·25참전유공자회 대전시지부의 도움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내가 모셨던 대대장님의 생사를 알고 싶네. 정말 잘해주셨던 분이었는데. 그분 덕에 헌병으로도 갈 수 있었던 거고…내 인생의 은인이었어.”
할아버지께서는 전쟁 전 안동의 한 양복점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할아버지는 홀로 계시던 어머니께 소식조차 못 전한 채 피란길에 올랐다가 징집돼 8사단 21연대 3대대에 배치됐다. 소총수로 영천전투에 처음 투입됐다가 이후 대대장 당번병으로 차출됐는데 부상했을 때도, 헌병으로 지원할 때도 대대장님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어느 날 직접 여쭤봤다. “할아버지, 그 대대장님 존함이 어떻게 되나요?” 돌아온 대답은 ‘맹보영 중령님’이었다. 낯익은 이름이었다. 평소 6·25전쟁사를 공부하며 여러 사료에서 접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소장하고 있는 사료와 증언록을 펼쳐 찾아봤다. 맹보영 대령은 육사 7기 출신으로, 전쟁 전 8사단 21연대 3대대 11중대장으로 부임해 직접 중대원을 모병하고 훈련시켰으며, 태백산지구 공비토벌 작전에도 참전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강릉전투 당시 고립된 자신의 중대를 성공적으로 철수시켰으며, 낙동강 전선의 영천전투에서는 북한군 연락장교 소좌를 생포해 적 정보에 관한 중요한 진술을 끌어낸 인물이다. 문제는 생사 여부였다. 수소문 끝에 국립현충원 안장자 정보를 검색한 결과 2012년 3월 별세해 현재 국립대전현충원 장병1묘역에 안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곧바로 할아버지께 연락했다.
“할아버지, 비록 대대장님께서 별세했으나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계십니다. 언제 한번 함께 찾아뵈러 가요.”
할아버지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며칠 뒤 할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양군! 자네 덕에 대대장님께 찾아가 인사드릴 수 있었네. 정말 고마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결 밝았다. 필자가 한 일은 사료를 뒤지고 현충원 사이트를 검색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70년 넘게 이어온 할아버지의 그리움이 비로소 닿을 곳을 찾았다는 사실이, 작지 않은 울림으로 남았다. 참전용사들의 기억은 아직 우리 곁에 살아있다.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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