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바다의 시대,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

입력 2026. 05. 26   10:54
업데이트 2026. 05. 26   10:54
0 댓글
김재호 중령 해사 국제관계학과 교수
김재호 중령 해사 국제관계학과 교수

 


얼마 전 해군사관학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함께 ‘제5회 국제해양법·해양안보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우리가 당면한 해양 문제와 최근 중동 정세의 국제법 쟁점이 폭넓게 다루어졌다. 담당 교수로 일정을 소화하면서, “우리는 지금 어떤 바다를 마주하고 있고,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한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요즘 전 세계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아 보면, 인류가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 온 국제규범인 유엔해양법협약에 기초한 해양질서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서해 잠정조치수역에서는 우리 동의 없이 설치된 다른 나라의 구조물이 외교 현안으로 다뤄져 왔다.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는 이를 두고 남중국해에서 보아 온 ‘회색지대 전술’이 북쪽으로 옮겨 온 것이라 평가했다.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국제해협’임에도 전 세계 상선의 자유로운 통항이 반복적으로 위협받고 있고, 발트해와 동북아 인근 해역에서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려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 곳곳을 누비고 있다. 우리 해군의 작전환경인 한반도 주변의 바다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를 거시적으로 보면, 한 가지 진단이 가능하다. 해양질서를 포함한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안팎에서 이중으로 도전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일부 국가들이 국제규범의 빈틈을 이용해 바깥에서 질서를 우회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강대국들이 점차 자국 중심의 거래적 외교로 기울며, 기존 질서에 대한 신뢰와 도덕적 우위 역시 안에서부터 시험에 들고 있다. 그 결과 바다에는 합법과 불법, 평시와 분쟁의 경계가 모호한 회색지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회색빛 바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위성과 무인기, 그리고 국제 해양영역인식(MDA) 협력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인공지능은 그것을 빠르게 분류한다. 그러나 진짜 본질적인 질문은 그다음에 있다. 관심 해역에 새로 들어선 구조물은 어업수단인가 군사시설인가, 공해상에서 의심 선박과 환적한 유조선을 그림자 선단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 해역에서의 타국 해군과 해경 활동이 항행의 자유인가 일방주의적 행동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정보의 양보다 그 의미를 읽어 내는 힘이 더 중요하다.


기술이 발전해도 전장의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그것을 해석하는 안목이 더욱 중요해진다. 기준이 분명한 스포츠 경기의 판정은 데이터와 영상 판독을 통해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합의된 기준이 없는 국제 현상이나 정치사회 현상의 의미를 읽는 일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역사와 국제법, 동맹과 상대국의 손익, 우리의 가치와 국익에 대한 오랜 이해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평소 쌓아 둔 인문·사회과학의 안목이 결정적 순간에 진가를 보이는 영역이다.


우리는 강대국 경쟁의 시대에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 군 건설로 나아가고 있다. 장교 교육은 기술적 역량 강화와 함께, 모호한 현장의 신호를 한국 안보와 국방의 맥락에서 읽어 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어쩌면 미래의 지휘관은 다양한 정보와 AI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결정이 우리 국익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판단하는 ‘의미의 결정자’가 아닐까?


해군사관학교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첨단 과학기술 역량과 해양법·해양안보 전문 지식,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키워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인문학적 소양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충무공 정신과 같은 철학과 가치관이 자리한다. 해사 교수로서, 우리 생도들이 미래 회색바다의 안개를 뚫고 순항해 갈 인재로 성장하도록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