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인문학-두 도시 이야기 - 프랑스 파리와 중국 청두(下)
두보의 ‘춘야희우’- 호우시절, 사랑한다면 봄비처럼
반가운 비가 시절을 알아 / 봄이 되니 내리네 /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만물을 적셔 주며 아무런 소리도 없네 / 들판의 오솔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등불만 비추네 /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이 꽃으로 겹겹이 덮여 있네
어떤 도시는 지도가 아닌 소설로 읽힌다. 눈앞의 풍경보다 먼저 오래된 이야기들이 그 도시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중국 청두(成都)는 유비와 제갈량의 숨결이 스며 있는 ‘삼국지의 땅’이다. 쓰촨(四川)성의 성도인 청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을 유지한 도시 중 하나다. 25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름을 바꾼 적이 없다. 수많은 전쟁과 왕조의 교체 속에서도 이름을 지켜 냈다는 사실은 이 도시가 간직한 시간의 깊이를 말해 준다.
마라의 도시에서 만난 가장 무해한 얼굴
‘매운맛의 도시’ 청두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짙게 배어 있었던 마라향 덕분에 첫인상이 꽤 자극적이었다.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 이 강렬한 도시가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던 걸까. 청두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얼굴을 한 판다를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붉고 뜨거운 도시의 이미지 옆에는 늘 귀여운 얼굴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훔치는 판다가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청두는 변검처럼 한 가지 얼굴로만 기억되기를 거부하는 도시다.
청두는 ‘판다의 도시’다. 여행자라면 ‘청두 판다 기지’를 빼놓을 수 없다. 귀여운 것에 큰 관심이 없던 우리도 결국 판다 기지로 향했다. 사실 판다를 보기 전 우리에게 판다는 눈 아래 검은 아이라인을 짙게 두르고, 가슴에는 검은 볼레로 카디건을 걸친 듯한 동물에 불과했다. 그도 아니면 영화 ‘쿵푸팬더’의 주인공이던지. 실물을 보기 전까지는 그런 이미지가 전부였다.
대나무를 오물오물 씹다가 이내 우람하다 못해 거대한 몸을 느릿느릿 옮기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한 저 느긋한 삶의 방식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동경과 찬사,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결국 우리도 판다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청두시정부는 1983년 아사 위기에 처한 자이언트판다 6마리를 구조해 번식 연구기지를 설립했다. 오늘날 이 기지는 면적 3.07㎢의 대나무숲 안에 240마리 이상의 자이언트판다를 보유한 세계 최대 판다 인공번식시설로 성장했다. 야생 판다를 단 한 마리도 추가로 포획하지 않은 채 순수한 번식 연구만으로 이룬 성과다. 청두가 단지 매운맛으로만 기억되길 거부해 온 긴 시간의 결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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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에 남겨진 두보의 시간
청두에 판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사람의 흔적도 남아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 인물이 두보다. ‘두보 초당’은 당나라의 위대한 사실주의 시인 두보가 안녹산의 난을 피해 떠돌다가 쓰촨에 들어와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은 우리가 청두에서 가장 좋아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은 유유히 산책하기에 좋았고, 걸음을 옮길수록 시 한 수가 절로 떠오를 듯한 고요함과 평온함이 감돌았다.
두보는 친구의 도움으로 청두 서쪽 강가에 초가를 짓고 4년 가까이 머물며 24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널리 알려진 그의 시들도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두보가 청두를 떠난 뒤 초가는 사라졌지만 오대십국시대에 옛터를 찾아 복원됐고 송·원·명·청 시대를 거치며 다시 증축됐다. 전란의 시대에도 민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인의 숨결을 고요히 간직한 이곳은 오늘날 ‘중국 문학의 성지’로 불리며 1961년 중국 국가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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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완성된 도읍
이름도 인상적이다. 청두는 ‘도읍을 이룬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곳은 오랜 시간 도시의 면모를 갖춰 왔다. 기원전 4세기 촉나라(춘추전국시대)가 수도를 옮긴 뒤 진나라 시기에는 청두 서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댐식 관개시설인 두장옌(都江堰)이 완성돼 평원에 물길과 풍요를 안겼다. 지금도 두장옌은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아 청두를 ‘천부지국(땅이 매우 기름져 온갖 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라고 부르는 바탕이 되고 있다.
청두의 길은 나이테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다. 도심을 중심으로 순환도로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그 사이에 천부광장과 춘시루, 두보 초당, 무후사, 판다 기지가 차례로 자리한다.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와는 조금 다른 이 구조는 청두가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넓혀 온 도시처럼 보이게 한다.
청두를 걷다 보면 이 도시가 왜 사람들을 오래 붙잡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거대한 도시인데도 어딘가 느긋하고 오래된 역사 위에 지금의 생활이 부드럽게 포개져 있다. 그래서 청두는 단순히 큰 도시가 아니라 천천히 읽을 더 많은 이야기가 드러나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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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의 땅에서 제국의 수도로
청두를 읽는 좋은 교과서이자 대표적인 소설은 『삼국지연의』다. 소설 속 무대는 광대한 중국 전체이지만 그 서사가 가장 깊은 울림으로 남는 곳은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이 촉나라를 세운 청두다. 유비는 세 번이나 제갈공명의 초가를 찾아가 마침내 그를 책사로 맞이했다. 역사에 남은 ‘삼고초려’다. 그때 제갈량이 유비에게 제시한 게 바로 ‘천하삼분지계’로 불리는 구상이었고, 그 바탕이 된 땅이 지금의 쓰촨이었다.
211년 유비는 청두를 장악했다. 이후 조조의 아들 조비가 한나라를 폐하고 위나라를 세우자 유비는 한 왕조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청두에서 황제를 칭하고 촉한을 세웠다. 제갈량은 승상이자 재상으로서 나라의 살림을 맡았고, 유비가 전장에 나설 때마다 청두에 남아 군량과 내정을 책임졌다.
기원전 256년 두장옌이 완공된 뒤 청두 평원은 중원의 전란 속에서도 스스로 먹고살아도 될 만큼 풍요로운 땅이 됐다. 진나라가 이곳을 차지하려 했던 이유도, 한나라가 이 땅을 특별하게 여겼던 이유도 바로 그 풍요로움에 있었다. 두장옌이 길러 낸 비옥한 곡식이 없었다면 촉한의 북벌, 제갈량의 출사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촉한은 221년부터 263년까지 40여 년간 이어지다가 위나라의 공격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패배한 왕조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고 오랜 세월을 지나 오늘의 무후사로 이어졌다. 이곳은 왕인 유비와 신하인 제갈량을 함께 모신 중국 역사에서도 드문 ‘군신 합사’의 공간이다. 유비는 이 천부지국으로 걸어 들어와 영웅의 나라를 세웠다. 도시는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다시 도시를 불멸로 만들었다.
천부지국의 미식
비옥한 곡식은 청두의 자랑이라는 사실이 『삼국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에는 “천하의 맛은 중국에 있고, 중국의 맛은 쓰촨에 있으며, 쓰촨의 맛은 청두에서 나온다(食在中國 味在四川 廚出成都)”는 말이 있다. 중국 4대 요리 가운데 하나인 쓰촨 요리의 중심이 바로 청두다. 2010년 유네스코가 청두를 중국 최초의 ‘미식 창의 도시’로 지정한 것도 이런 오랜 미식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쓰촨 요리의 뿌리는 기원전인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알싸하고 붉은 쓰촨의 맛은 훨씬 뒤에 완성됐다. 특히 고추는 16세기 이후 신대륙에서 들어와 청나라 때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쓰촨 요리의 ‘매운맛’은 생각보다 오래된 전통이라기보다 비교적 뒤늦게 더해진 개성에 가깝다. 그보다 먼저 쓰촨은 산초의 저린 맛, 두반장의 깊은 발효향, 여러 향신료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미각의 세계를 오래도록 키워 왔다. 온화하고 습한 청두 평원의 기후, 풍부한 농업 생산력,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은 독자적인 식문화를 꽃피우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청두 특유의 습기를 이겨 내기 위해 매운 음식을 즐기게 됐다는 설명까지 더해지면 이 도시의 입맛은 더욱 설득력 있게 읽힌다.
청두의 맛을 대표하는 음식도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서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마파두부는 청두 한 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천마파의 손에서 시작됐다. 노동자를 위해 두부, 다진 소고기, 두반장, 산초, 고추를 함께 볶아 낸 요리가 오늘날의 마파두부다.
단단면(擔擔麵)은 행상들이 대나무 장대에 면과 소스를 매달아 거리에서 팔던 데서 이름이 붙었고, 훠궈는 진·한 시대 쓰촨의 소금 노동자들이 강가에서 끓여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미식문화의 가장 생생한 얼굴은 춘시루 동쪽의 ‘칭룽정제(靑龍正街)’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인근 주민들의 일상에 스며든, 말 그대로 ‘진짜 청두의 밥상’이 펼쳐지는 골목이다. 수십 년째 자리를 지켜 온 작은 식당들이 아침부터 문을 열고 골목은 금세 음식 냄새로 가득 찬다. 훈기 어린 두부와 장 냄새, 대나무 찜통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까지. 청두의 맛은 결국 이런 이름 없는 골목에서 가장 진하게 살아난다.
청두는 서두르지 않는다. 파리가 에펠탑의 야경과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하고 계산된 아름다움이라면 청두의 매력은 훈기와 소음, 웃음 속에서 불쑥 찾아온다. 이 도시를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은 계획을 절반쯤 비워 두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우연이 채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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