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입력 2026. 05. 19   15:03
업데이트 2026. 05. 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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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삶이란 결국 무언가와 마주치는 일의 연속이다. 사람은 혼자 존재하는 것 같아도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다시 일어서게 하기도 하고, 어떤 이와의 관계는 이전의 나와 전혀 다른 자신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결코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삶이란 수많은 만남이 남긴 흔적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쌓여 간다는 점에서 나무의 나이테와 무척 닮아 있다. 부모와의 만남부터 친구와의 만남, 연인과의 만남, 돈과 명예와의 만남까지. 그 모든 만남이 삶의 흔적으로 새겨져 있다. 힘겨운 시절에는 가늘고 메마르게, 풍요로운 시절엔 두껍고 선명하게 말이다. 그 모든 하나하나의 고리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부버는 진정한 만남을 ‘나-너(I-Thou)’의 관계라고 말했다. 상대를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온전히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는 ‘나-그것(I-It)’의 관계다. 사람을 하나의 기능이나 역할로만 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이 두 관계 사이를 오간다.

군 생활도 마찬가지다. 군이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계급은 군 조직을 움직이는 필수불가결한 질서다. 명령과 복종의 체계 없이 군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계급은 역할의 언어일 뿐 존재의 언어가 아니다. 별을 단 장군도, 막 입대한 이병도 그 계급 너머에 각자의 나이테를 품고 살아가는 한 인간, 한 존재다. 계급이 ‘나-그것’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순간 조직은 효율을 얻을지 몰라도 사람을 잃는다. 반대로 계급의 질서를 지키면서도 상대를 온전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만남은 단순한 상하 관계를 넘어선 무언가가 된다. 그것은 계산되지 않는 가치다. 수치로 측정되지 않고, 명령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직을 가장 깊은 곳에서 단단하게 붙드는 결속력이 된다.

구약성경 룻기에는 ‘헤세드’라는 단어가 반복해 등장한다. 흔히 ‘인애’라고 번역되지만, 그 뜻은 훨씬 깊다.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 흔들리지 않는 충성,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헌신’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단순한 감정적 친절이 아닌 관계 안에서 끝까지 자신을 내주는 신실한 사랑을 말한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기에 남편이 죽은 순간 시어머니 나오미 곁에 머물러야 할 법적 이유도, 도덕적 의무도 없었다. 그러나 룻은 말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겠습니다.” 이것이 헤세드다. 계산이 아닌 존재 자체를 향한 선택인 것이다.

부버가 말한 ‘나-너’의 관계는 결국 헤세드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계급장 너머로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전우를 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각자의 나이테를 지닌 한 인간으로 마주하는 것, 그 선택은 의무가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그것은 가치가 있다.

오늘 당신은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그 만남 앞에 어떤 태도로 서 있는가. 부버는 말했다. ‘나-그것’의 세계에는 만남이 없다고. 그곳에는 오직 사용과 소비만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헤세드가 그랬듯이 그것은 의무의 영역 밖에서 일어난다. 군 복무의 시간이 훗날 단순한 의무 이행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누군가의 나이테에 굵은 고리로 새겨질지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선택하는 만남의 방식에 달려 있다.

정명석 소령 육군5기갑여단 목사
정명석 소령 육군5기갑여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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