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 너머의 안전

입력 2026. 05. 14   15:17
업데이트 2026. 05. 1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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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 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 소식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각급 부대는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성 평가를 하고, 상급 부대에서 내려온 체크리스트와 자동화된 매뉴얼을 바탕으로 부대활동을 관리한다. 서류상으로는 어느 때보다 체계적인 안전관리체계를 갖춘 것처럼 보이나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는 바로 그 견고해 보이는 시스템의 틈에서 발생한다.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른바 ‘뜨거운 손 오류(Hot Hand Fallacy)’가 주는 가짜 안도감이다. 농구선수가 연달아 슛을 성공시키면 다음 슛도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심리처럼 “우리 부대는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으니 오늘도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무사고 기록은 철저한 대비의 결과물일 뿐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간 유지된 무사고 기록은 위험신호에 대한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설마 우리 부대에서?”라는 안일함이 고개를 드는 순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신호는 익숙한 일상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과도한 시스템 의존 역시 문제다. 표준화된 체크리스트는 위험요소를 관리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것이 안전의 전부는 아니다. 체크리스트의 빈칸을 채우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현장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생생한 위험요소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된다. 영점사격장의 ‘총기 안전틀’을 떠올려 보자. 이 장치는 총기의 가동 범위를 제한해 유탄을 방지하는 핵심 안전장치다. 체크리스트에는 ‘안전틀 설치 및 이상 유무’라는 항목이 있고, 통제관은 이를 확인한 뒤 습관적으로 ‘양호’에 체크한다. 그러나 지면 상태나 고정 불량으로 안전틀이 들려 있다면 실제 가동 범위는 안전통제 범위보다 넓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체크리스트는 “틀이 있으니 안전하다”는 확증편향을 강화하며 오히려 현장의 시야를 가리는 장막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부대의 안전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리비히의 최소량 법칙(Law of the Minimum)’에 따르면 나무통을 이루는 판재 가운데 가장 낮은 판의 높이가 통에 담길 물의 양을 결정한다. 한 부대의 안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철저한 안전의식을 갖춘 다수의 인원과 완벽한 시스템이 구현돼 있어도 현장에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부대의 안전 수준은 시스템의 평균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준으로 낮아진다. 안전은 가장 강한 부위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의 실효성을 높이는 핵심은 시스템의 확대가 아니라 현장 말단까지 스며드는 안전의식의 상향 평준화, 즉 가장 낮은 판의 높이를 끌어올리는 데 있다.

안전은 서류에 ‘체크’하는 행정행위가 아니라 현장을 바라보는 실천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다. “정말 매뉴얼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현장의 변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안전은 확보된다. 체크리스트와 위험성 평가는 사고 예방을 위한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것이 단순한 행정절차로만 남게 된다면 안전의 본래 목적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서류의 빈칸이 아니라 현장에 위치한 관리자가 위험과 관련해 던지는 질문이다. 군의 안전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닌 그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현장의 책임 있는 시선에서 완성된다.

김승진 중령 육군5보병사단 포병여단
김승진 중령 육군5보병사단 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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