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전우가 있다. 2년 전 의무대장을 할 무렵 사단 의무대로 파견 나와 있던 김 중사다. 업무 중 예기치 못한 폭발사고로 한쪽 다리를 크게 다친 그는 가끔 처음 후송됐던 민간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말하던 의사의 모습과 “실패할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수술하겠다”고 얘기하던 국군수도병원 군의관의 모습이 동시에 떠오른다고 했다.
자신은 두 다리로 다시 걷게 된 ‘두 번째 삶’을 얻었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도 했다. 다리를 절단하진 않았지만 무거운 포탄을 나르고 장비를 정비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김 중사는 응급구조사 교육을 거쳐 의무병과로 전환했고, 응급구조부사관으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김 중사를 보면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환자가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그들의 생을 붙잡아 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간호장교로서 돌아가야 할 자리라고 믿었다. 2024년 10월, 9년간 임상을 떠나 있던 나는 그 믿음 하나로 수도병원 외상센터로 돌아왔다.
수도병원 신고 첫날, 정신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외상센터는 조용하고 따뜻했다. 인사하기 위해 들르는 곳마다 웃음꽃이 피어났고,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과 안부를 나누며 평온한 분위기를 느꼈다.
“외상팀 활성화! 환자 도착 5분 전! 헬기!”
외상센터를 움직이게 하는 소리는 따로 있었다. 다급한 방송음과 함께 들려오는 헬기 소리, 순식간에 현장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훈련 중 추락해 경추를 크게 다친 환자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팔다리의 운동 기능과 감각은 사라진 상태였다. 환자는 소생실에서 각종 검사와 응급처치를 마치고 응급수술에 들어갔고, 추가적인 치료를 위해 외상 중환자실에 입실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응급환자였지만 외상센터의 모든 장비와 물자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젊은 장병이 상실의 아픔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외상센터 구성원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 체계에 온전히 녹아들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외상센터에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외상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환자를 만난다.
“선생님, 저 기억 안 나세요? 저희 가게에 식사하러 왔었잖아요.”
외상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모니터를 부착하느라 정신없던 내게 환자가 말을 걸었다. 상처로 뒤덮인 환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야 집 앞 칼국수집 사장님이 떠올랐다. 산책 중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창문이 전신을 덮치며 심각한 중증 외상을 입은 그는 119에 의해 구조됐지만 받아 주는 병원이 없어 30분을 지체한 끝에 겨우 수도병원 외상센터로 후송됐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에 찢긴 폐와 절단된 혈관을 잇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극심한 통증, 끊임없는 감염과 싸우느라 눈을 감은 채 짧은 호흡만 이어 갔다. 10여 일이 지나 그가 죽 한 그릇을 처음으로 모두 비운 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기쁨의 박수를 쳤다. 재활을 거쳐 3개월 만에 퇴원한 환자의 칼국수집에 다시 불이 켜지던 날,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놀란 눈으로 반기던 사장님은 지금도 외상센터 마크를 단 버스가 지나갈 때면 “받아 주고 살려 줘 고맙다”고 기도드린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다 보면 외상은 TV 뉴스나 다큐멘터리, 통계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옆의 전우에게도, 매일 인사를 나누는 이웃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다리가 절단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물만 흘리던 김 중사는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상사로 진급해 누군가의 희망이 돼 살아가고 있고, 칼국수집 사장님은 가게를 찾을 때마다 양을 두 배로 주며 여전히 우리 동네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그날 외상센터가 아니었다면 저는 여기 없었을 겁니다.” 김 중사와 칼국수집 사장님, 주변의 전우와 이웃을 지키는 일. 그것이 내가 이 자리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외상센터 간호장교 역할은 단순히 치료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며, 외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삶을 이어 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중증 외상으로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것 역시 우리의 중요한 임무다.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양팔을 절단할 위기에 처했던 한 환자는 장애가 남은 왼쪽 팔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때로는 누군가를 원망하며 소리를 질렀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우리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상투적인 위로 대신 환자가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다시 삶을 이어 가도록 그의 곁에 머물렀다.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퇴원 한 달 뒤 그가 다시 병동을 찾았다. 사고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두 팔을 들어 환하게 인사하고 있었다.
“아직 장애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조만간 직장에 복직하려고 열심히 재활하고 있어요.” 그의 한마디에 수없이 반복되던 힘든 나날과 지쳐 있던 순간이 모두 의미를 얻었다. 외상은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지만, 우리는 그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예상할 수 없는 각종 사고로 급격하게 돌아가는 현장은 때론 숨이 가쁠 만큼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환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이곳에 서 있을 수 있는 이 순간만큼 간호장교로서 보람된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외상으로 삶의 궤도가 흔들릴 이들이 다시 희망을 갖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환자의 생을 붙잡는 손이 필요할 때 망설임 없이 외상센터 간호장교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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