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지 않는 자유 영혼들, 웃기지만 우습지 않다

입력 2026. 05. 11   16:47
업데이트 2026. 05. 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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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를 만나다
코르티스가 선보이는 ‘영크크’의 음악


중독성 있는 신곡 ‘영크리에이터크루’
‘요를레이히 말고 영크크’ ‘바로 감튀남’
절크 장르 위 외계어 같은 노랫말 화제

음악·뮤비·안무 적극 참여한 멤버들
창작 과정 자체를 작품 콘셉트로 소화
K팝 앞세워 10대들의 중심으로 진입

보이그룹 코르티스. 사진=빅히트 뮤직
보이그룹 코르티스. 사진=빅히트 뮤직

 

케이팝은 언제나 실험 중이다. 늘 새로워야 하고, 충격을 안겨야 한다는 산업의 숙명 혹은 강박이 있다. 복고 열풍도 새로운 것만이 등장하는 시장에서 다시 새로운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좋아하는 국민 아이돌이라거나 대중적 히트곡은 환상이다. 후렴 한 줄, 가사 한 마디, 혹은 어떤 스타일링 하나라도 전에 없던 무언가로 어필해야 한다.

최근 인기 드라마 제목을 살짝 비틀어보자면 모두가 자신의 과거 모습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요를레이히 말고 영크크’는 좀 심했다. 빅히트 뮤직의 5인조 보이그룹 코르티스(CORTIS)의 선공개곡 ‘영크리에이터크루(YOUNGCREATOR-CREW)’ 말이다.

지난 2월 26일 그룹이 타자 연습 소프트웨어와의 협업으로 노랫말을 처음 공개했을 때, 게임 이름인 ‘산성비’처럼 쏟아지는 언어의 폭격에 모두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감자튀김 좀 먹었을 땐 바로 감튀남”, “너무 웃거버려서 난 영ㅋㅋ”와 같은 표현은 대체 어떻게 생각해 낸 걸까. 반신반의하던 팬들은 SNS상에서 중독성 있는 안무를 추며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외계어를 뱉는 다섯 멤버에게 점차 ‘코며들기’ 시작했다.

사실 ‘영크리에이터크루’의 어법은 그리 낯설지 않다. 케이팝 후크송이 오래도록 사랑한 의성어의 반복, 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의 나열을 최신 보이 그룹의 문법에 적용한 것이다. 굳이 그런 옛날 음악을 잘 모르겠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평소 언어 습관을 생각해 보자.

인터넷 밈을 현실에서 큰 소리로 내뱉으며 공통의 감각을 느끼고,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모습 말이다. ‘트랄라레로 트랄라라’를 어떤 심오한 가치가 있어 모두가 즐겼던 게 아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목소리로 굳이 몰라도 될 정보를 무의미하게 나열하는 의미의 열화가 음악에도 묻어나오는 풍경이다.

이런 경향이 케이팝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케이팝은 늦었다. 전 세계 ‘인터넷 게토’의 무법자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그렇게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페이크밍크(fakemink), 자비에르소베이스드(xaviersobased), 넷스펜드(Nettspend) 등 신예들이 ‘절크(jerk)’라 불리는 장르를 중심으로 정신없는 프로듀싱 위에 정신없는 노랫말을 뱉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 하이퍼팝이 개척한 인터넷의 혼돈과 고자극의 표현이 점차 과격하고 폭력적인 형태로 발전하면서 젊은 세대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보이그룹 코르티스. 사진=빅히트 뮤직
보이그룹 코르티스. 사진=빅히트 뮤직


한국에도 그런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힙합어워즈 5개 부문 후보에 오른 래퍼 이케이(EK)의 ‘야호(YAHO)’, 최근 힙합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규모 디스전을 통해 입지를 굳힌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나 GGM 킴보와 같은 래퍼들이 그 증거다. 이들은 세계적인 흐름을 빠르게 숙지하고 한국의 커뮤니티 문화를 버무려 온라인 팬들을 현실로 나오게 하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코르티스의 음악은 이러한 외침을 표백해 새로운 형태의 활력을 선사한다. 재미는 챙기면서 커뮤니티의 유독한 문법은 없앤다. 문제를 부르는 표현이나 욕설, 비하가 없다. 5월 4일 ‘영크리에이터크루’와 함께 발표한 두 번째 EP ‘그린그린(GREENGREEN)’에서 코르티스는 가장 실험적인 프로듀싱 위에서 굉장히 건전한 취향을 소리 높여 외친다. 슈프림 보이와 히스 노이즈를 주축으로 한 프로듀싱 위에 마틴, 제임스, 주훈, 성현, 건호가 아이디어를 더하고 실제 창작에 관여하는 형태로 만든 음악은 웃기되 우습지 않다.

그 중심에는 타이틀곡 ‘레드레드(REDRED)’가 있다. 빽빽한 밀도로 좀체 쉴 틈을 주지 않는 일렉트로클래시의 폭격 위에서 멤버들은 눈치 보지 않는 태도를 증명하기 위해 젊음을 쏟아붓는다. 오래된 점포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쇠퇴한 대규모 상가를 제집 드나들듯 누빈다. 언뜻 허술하게 보이는 춤사위도 잘 짜인 무대와 결합했을 때의 쾌감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에 대해 적색과 녹색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재빠르게 원하는 것만을 챙기며 창작하는 동료들과의 우정을 과시한다.

케이팝의 막대한 자본과 육성 시스템은 젊은 창작가 양성 실험을 오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음악부터 뮤직비디오, 안무까지 모든 부문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등장한 코르티스가 체계적인 연구 개발팀과 함께 만든 ‘그린그린’에서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이유다. 구름 관중과 함께 서울 곳곳을 질주하는 뮤직비디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TNT’나 멤버들이 가장 사랑하는 간식 아사이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아사이(ACAI)’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결코 인위적이지 않다.

‘레드레드’와 ‘영크리에이터크루’ 같은 에너지 넘치는 곡이 끝나면 앨범의 후반부를 마무리하는 노래는 신세대의 우울을 베드룸 팝으로 그려낸 ‘와썹(Wassup)과 ‘블루 립스(Blue Lips)’가 기다리고 있다. 설득력 있는 구성이다.

코르티스가 오늘날 케이팝에서 중요한 그룹인 이유는 이들이 창작하는 아이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창작 과정 그 자체를 작품 콘셉트로 풀어내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젊은 창작가 모임이라는 ‘영크리에이터크루’의 선언은 다른 세대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의 자기 확립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멤버 마틴의 작사 및 프로듀싱과 성현의 참여, 프리스타일로부터 만들어지는 노랫말은 기획된 상품이라는 케이팝의 역설을 파훼하기에 충분하다. 컬트 수준에서 머무르는 근본적인 인터넷 게토 문화의 한계가 케이팝을 통해 10대들을 중심으로, 남녀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로 기능하는 모습을 본다.

진짜 청년 창작자인지, 청년 창작자의 얼굴을 한 잘 만들어진 상품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을 수 있다. 아무렴 어떤가. 케이팝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신속하게 등장하고 잊히는 유행 속에 살아남는 건 뻔뻔한 콘텐츠다. 케이팝은 그 양면성을 가장 잘 운용해 온 음악 장르다. 코르티스는 ‘창작하는 나’ 콘셉트를 화끈하고 적확하게 소화하고 있다. 혼란 위를 달려 나가는 다섯 소년의 앞길에는 초록불뿐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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