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통제력 VS 정교한 침투력

입력 2026. 05. 10   15:30
업데이트 2026. 05. 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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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모사드와 혁명수비대의 '그림자 전쟁'

이란 ‘혁명수비대’ 이스라엘 ‘모사드’
대규모 체포·처형으로 공포심 극대화
스파이 활동 위축·내부 단속 강화 목적
소수 정예로 표적 제거·선제 공격 강점 
위협이 국경 넘기 전 해외서 적극 제거

이란 당국자들이 2020년 11월 이란 테헤란 외곽에서 일어난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파크리자데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당국자들이 2020년 11월 이란 테헤란 외곽에서 일어난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파크리자데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연합뉴스


스파이 공개 처형은 방첩 심리전
지난달 20일 이란은 자국민 두 명을 스파이 혐의로 처형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사법부 산하 매체에 따르면 이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연계된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이란 내부에서 공격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란 당국은 두 사람이 해외, 특히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훈련받았고, 민감 시설을 정찰하며 파괴 공작을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최고법원이 사형을 확정한 뒤 형이 집행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형사사건이 아니다. 국가 간 전쟁에서 정보전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며, 고도의 방첩 심리전에 속한다. 이미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 전쟁’ 이후 이란은 대규모 스파이 색출과 처형을 이어갔다. 전쟁 과정에서 이스라엘 모사드가 오래전부터 이란 내부에 구축한 스파이망을 가동해 미사일과 드론을 반입하고, 이란 내 비밀기지에서 방공망 등 주요 타깃을 정밀 공격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란은 내부 스파이 색출을 국가안보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배신자가 더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12일 전쟁’ 발발 4일째인 지난해 6월 16일, 이란은 스파이 혐의자 에스마일 페크리를 서둘러 처형했다. 그는 모사드 요원에게 포섭돼 중요 시설의 위치와 보안요원 명단 등 민감한 정보를 암호통신으로 전달한 혐의로 이미 6개월 전 체포된 상태였다. 스파이 처형을 반대하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이 뒤따랐으나 이란의 전략은 분명했다. 공포심을 자극해 스파이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추가 포섭을 차단하기 위한 긴급 방첩 대응 조치를 취한 것이다.

전쟁 개시 후에는 전국적으로 검문소 확대, 휴대전화 검사, 주민 신고제 강화, 외국인·이중국적자 조사 등이 병행됐다. 종전 직후인 6월 25일에는 모사드 협력 및 암살 장비 밀반입 혐의로 3명이 교수형을 당했으며, 8월에는 혁명수비대(IRGC)가 스파이 혐의자 8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훈련을 받고 전쟁 기간 중 민감한 시설의 좌표와 군 지휘부 정보를 모사드에 전달했다고 한다. 9월에는 정보기술 회사의 데이터 관리 전문가 바흐만 추비아슬이 모사드에 포섭돼 이란 정부 데이터센터에 침투한 혐의로 처형됐다. 이란이 지난해 6월 이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한 사람은 수백 명에 달한다. 처형된 사람도 최소 10명이 넘는다. 적 스파이 기관을 압박해 활동을 위축시키고 내부 단속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정교한 창과 치밀한 그물의 대결
오랜 숙적인 이스라엘과 이란의 정보기관은 모두 강하지만 주요 목표나 활동 양상에는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은 좁은 국토와 제한된 전략적 완충지대를 가진 국가다. 위협이 국경을 넘기 전에 해외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안보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모사드가 선제적·공세적 성격이 강한 이유다. 해외에서 적국의 군사·핵 개발 동향을 추적하고 필요하면 과감한 비밀작전을 감행한다. 2009년 스턱스넷 사이버 공격으로 이란 핵시설 원심분리기 1000대를 파괴해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켰다.

2018년 1월에는 테헤란 비밀 창고에서 500㎏에 달하는 5만5000쪽의 방대한 핵 관련 문서를 빼돌려 이란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2020년 11월에는 이란 최고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인공지능(AI) 탑재 무인 기관총으로 암살했고, ‘12일 전쟁’ 첫날에만 9명의 핵 과학자를 핀셋 제거했다. 이란 지원 세력 헤즈볼라와의 전투에서는 오래전 비밀공작을 통해 헤즈볼라 전투원들에게 투입해둔 무전기와 무선호출기를 일시에 폭발시켜 전투력을 마비시키는 기발한 작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이란 내 스파이망을 가동해 주요 인물과 시설을 내부에서 드론과 미사일로 타격하는 등 직접 전투에 나섰다. 

반면 이에 대응하는 이란의 정보체계는 다층적이다. 공식 정보기관인 정보부(MOIS)와 혁명수비대 산하 정보국이 핵심 축이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 정보 수집을 넘어 체제 생존과 지역 내 영향력 유지에 있다. 외부 적대세력의 침투를 막고, 내부 반정부 움직임을 통제하며 레바논·시리아·이라크·예멘 등지의 우호 세력과 연계해 전략적 완충지대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정보부는 광범위한 국내 방첩과 해외 정보활동을 담당하고 혁명수비대 정보국은 체제 유지와 암살, 테러 등 준군사 작전에 특화돼 있다. 모사드가 ‘정교한 창’이라면 이란 정보기관은 ‘넓고 촘촘한 그물망’에 가깝다. 작전 방식도 다르다. 모사드는 소수 정예, 기민한 의사결정, 침투와 표적 제거에 강점을 보인다. 반면 이란은 광범위한 협조망, 지역 내 대리 세력과의 연대, 강한 국내 통제력을 활용한다. 최근 반복된 스파이 적발 발표도 방첩 심리전의 성격을 지닌다. 국민에게는 통제력을 과시하고, 적에게는 내부 침투가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정밀작전에서는 모사드가 강하지만 내부 통제와 방어력에서는 이란도 만만치 않다. 이번 전쟁에서도 최고지도자만 제거되면 대규모 시위로 정부가 전복될 것이라던 모사드 예측과는 달리 철저한 통제로 체제를 유지해 냈다. 한쪽은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력, 다른 쪽은 넓고 촘촘한 통제력에서 강한 것이다.

전쟁 개념 변화에 따른 통합정보전 체계 필요
이스라엘과 이란 정보기관의 대결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북한은 국제사회와 단절돼 접근이 어렵고, 극단적 통제 체제로 내부 정보 수집이 제한된다. 북한 정보기관은 우리 내부에 자신들을 지원하는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한 포섭 공작을 지속하고 있으며 사이버 공격 능력도 뛰어나다. 평시에도 전시와 연계되는 정보전을 수행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며 매 순간 우리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평시 정보전과 전시 대응이 연동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8일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은 “이번 전쟁에서 모사드는 군과 긴밀히 협조해 이스라엘의 전략적 태세(strategic posture)를 전환시켰다”고 공언했다. 전쟁 초기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등 지도부를 제거하고 내부에서의 공격으로 방공망을 마비시키는 등 직접 전투를 수행한 것이 일회성이 아니라 변화된 정보전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선언이다. 

이제는 평시 정보활동을 통해 입수된 정보가 전시 군사 작전에 즉각 활용될 수 있도록 군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정보기관이 찾아낸 표적을 군이 타격하고 사이버와 심리전도 동시 진행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한 정보기관의 비밀공작 능력도 강화돼야 한다. 또한 암살, 사이버, 시설 파괴, 인프라 마비 등 전쟁도 평화도 아닌 회색지대 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는 내부 혼란을 일으키는 선전 선동과 여론전, 심리전이 포함된다.

방첩의 영역도 간첩 침투를 색출하는 것뿐 아니라 사이버 방어, 공급망 안전, 국민 경각심 제고까지 폭을 넓혀야 한다. 이란의 스파이 처형 사건은 먼 나라의 잔혹한 뉴스 한 줄로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21세기 주권 국가의 힘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얼마나 먼저 위협을 감지하고 어떻게 잘 막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은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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