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바쁜 분이셨다.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날보다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던 날이 더 많았으며, 집에 계신 모습보다 군복을 입고 있으신 모습이 더 익숙했다. 당시엔 그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아버지처럼 늘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현실이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자리가 어떤 의미였는지 점차 깨닫게 됐다. 아버지께서 수행하신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었고, 그 책임을 묵묵히 지켜 내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제야 아버지의 부재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채워지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군복을 몰래 입어 보고 거울 앞에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아버지는 웃으시며 “그 옷은 아무나 입는 게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저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으나 지금에야 그 말속에 담긴 무게를 알게 됐다. 군복은 단순한 복장이 아니라 책임과 사명, 각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해서인지 같은 길을 선택하게 됐다. 누군가의 권유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길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그 가치와 의미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군인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훈련 과정에서 신체적 한계를 느끼는 순간도 있었고, 스스로의 선택에 되묻는 날도 존재했다. 그 순간마다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내던 모습은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힘이 됐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왜 그토록 책임감이 강하셨는지, 힘든 상황에서도 아무 내색을 하지 않으셨는지, 어떻게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 내셨는지 말이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군인이 되고자 한다. 나의 존재가 조직과 동료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군인이 되는 게 목표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나를 보며 같은 꿈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은 큰 자부심이다. 나아가 이제는 같은 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앞으로도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길을 따르며 배우고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변함없이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이젠 사랑한다는 말을 좀 더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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