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축복보다 걱정이 앞서는 일로 여겨진다. 아이를 환대하기보다 부담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치열한 경쟁과 그에 따라붙는 양육비, 경력단절의 두려움까지. 더욱이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는 때로 ‘견뎌야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다행히도 어떤 공간과 사람은 그 버거움을 덜어주곤 한다. 국방부청사어린이집과 그 안에서 아이들의 한끼를 책임지는 이들이 그렇다. 글=김해령/사진=조종원 기자
군 자녀인 반혜준 군은 아토피 피부염으로 음식 하나하나를 가려 먹어야 한다. 밀가루·옥수수·감자·새우 등 피해야 할 식재료만 수십 가지에 이르지만, 혜준이의 식판은 늘 채워져 있다. ‘한 아이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는 정성은 마침내 아이의 몸을 바꿔 놨다.
지난 1월 국방부 내부망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청사어린이집 영양사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이었다. 고마움을 전하는 별도 코너조차 없지만, 작성자인 반상석 육군중령은 ‘감사합니다’라는 말머리를 달아가며 글을 남겼다. 피부질환을 앓던 늦둥이 아들 혜준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상태가 호전됐다는 이야기였다.
‘아기 때부터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심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원인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 전쯤 원인을 찾았고, 최근 들어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모두 어린이집 영양사 선생님의 덕분입니다. 지금은 피부가 깨끗해졌습니다. 어린이집 덕분에 군 생활도 더 하고 싶고, 넷째도 낳고 싶습니다.’
반 중령은 “알레르기가 심할 때는 통증으로 계속 울고 밤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어린이집에 다닌 이후 피부 상태가 좋아졌다”며 “감사한 마음에 선물을 드리고 싶었지만 어린이집은 작은 선물도 받지 않아, 게시판에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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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어린이집 황혜정 영양사가 혜준이를 처음 눈여겨본 건 다섯 살 혜준이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하면서였다. 무심코 잡은 손은 마디마디 유난히 거칠었다. 나무껍질처럼 갈라진 피부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고 한다.
황 영양사는 곧바로 혜준이 어머니에게 연락해 ‘어린이집과 가정이 함께 식단을 조정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후 병원 검사에서 다양한 식품 알레르기가 확인됐고, 혜준이를 위한 ‘대체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혜준이는 어린이집에서 매일 총 세 번 음식물을 섭취한다. 오전 간식과 점심, 오후 간식까지 모든 식단에서 알레르기 유발 재료를 걸러내야 했다. 식단표에 ‘새우볶음’이 올라오는 날이면 혜준이에게는 ‘돼지고기볶음’이 따로 준비됐고, 감잣국을 끓일 때는 감자를 넣기 전 미리 덜어 별도로 조리했다. 간식으로 빵이 제공될 때는 단호박찜 등으로 대신했다. 현재 청사어린이집 전체 원아 135명 가운데 이처럼 대체식을 받는 아이는 혜준이를 포함해 5명이다.
대체식 준비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달 정년퇴직을 앞둔 이영이 조리사는 “조리 과정에서 교차 오염을 막기 위해 도마와 조리 도구를 철저히 구분하고, 대체식은 일반 식사와 완전히 분리해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황 영양사는 “한정된 시간 안에 조리해야 하는 만큼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작은 실수도 곧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혜준이의 피부 상태는 1년 만에 눈에 띄게 좋아졌다. 갈라지고 피가 맺히던 손은 몰라볼 만큼 깨끗해졌다. 조리실에서는 그 소식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황 영양사는 “대체식을 먹는 아이들은 대체로 투정이 많은데, 혜준이는 군말 없이 잘 따라줘 오히려 고마웠다”고 했다.
사실 청사어린이집에서 이런 변화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심한 알레르기나 아토피로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식단 조절을 통해 호전된 사례가 이어져 왔다.
청사어린이집은 지침보다 더 엄격한 자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가공식품과 당·염분을 최소화한 식단이 원칙이다. 오영희 원장은 “식품 선정부터 조리 과정까지 ‘내 아이라면’이라는 마음으로 가장 까다롭게 살핀다”고 밝혔다.
황 영양사는 “어린이집에서의 식사는 평생 식습관의 출발점”이라며 “영양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아이들이 차별 없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식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저출산이라는 난제의 해법은 거창한 정책 이전에 이런 현장에 있을지 모른다. 한 아이의 한끼를 위해 수십 가지 재료를 덜어내는 일. 사소하지만 고된 노력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다시 아이를 낳고 키워도 좋겠다는 마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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