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군사적 확장 맞서 인·태 해양안보 네트워크 구축

입력 2026. 04. 30   15:41
업데이트 2026. 05. 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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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소다자 협력의 배경과 동향  ④ 미·일·호주·필리핀 협의체의 발전 배경과 경과

미국·필리핀·호주·뉴질랜드군 장병들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필리핀에서 열린 발리카탄 연합훈련을 마친 뒤 자국 국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필리핀·호주·뉴질랜드군 장병들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필리핀에서 열린 발리카탄 연합훈련을 마친 뒤 자국 국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와의 4자 협의체인 쿼드(QUAD)로 규칙 기반의 역내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대(對)중국 봉쇄 기제로 인식되는 데 부담을 느낀 인도의 소극적 대응으로 쿼드는 비전통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운용됐다. 이에 인도 대신 필리핀이 가세한 미·일·호주·필리핀 협의체가 중국을 군사적 차원에서 견제하는 소다자 협력의 기제로 부상했다.

미·일·호주·필리핀 협의체 창설의 가장 직접적 배경은 남중국해에서 본격화한 필리핀과 중국의 충돌구도다. 중국은 이른바 ‘구단선(九段線)’을 설정해 남중국해 상당 부분을 자국 영해로 규정했다. 이에 필리핀이 소송을 제기했고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갈등구도는 필리핀이 주권 행사 차원에서 자국 군함과 해병대원을 주둔시키고 물자를 보급해 온 남중국해 ‘세컨드 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를 둘러싸고 재점화했다. 중국이 필리핀군 보급작전을 방해하면서 충돌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격화한 양측의 충돌은 인도·태평양 역내 군사·안보적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다.

필리핀은 군사력 현대화로 독자적인 국방력 구축과 함께 미국과의 동맹 관계 현대화에도 착수했다. 2014년 4월부로 체결된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이 그 출발점이다. 협정을 통해 필리핀은 향후 10년간 미군의 필리핀 군사기지 이용 권한을 부여했다. 1991년 필리핀 상원의 미군기지 조차기간 연장안 부결에 따라 1992년 미군이 철수한 지 22년 만이다. 협정에 따라 양측은 2023년 미군의 필리핀 군기지 4곳을 추가 이용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역내 군사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했다. 

2024년 11월부로 맺은 양국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주목되는 내용이다. 군사기밀을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군사적 신뢰 기반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다. 필리핀의 군도 방어개념 구현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도 이목을 끌었다. GSOMIA 없이는 고급 정보의 첨단 장비 이전이 제한될 수 있어서다. EDCA에 따른 기지 접근, 합동훈련, 해양영역 인식, 지휘·통제협력 등 양국의 군사협력을 더 높은 수준에서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지난달 필리핀에서 실시한 발리카탄 연합훈련 중 무인항공기(UAV) 대응훈련이 펼쳐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필리핀에서 실시한 발리카탄 연합훈련 중 무인항공기(UAV) 대응훈련이 펼쳐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필리핀과 일본의 군사적 공조도 본격화했다. 2024년 7월 체결된 양국의 상호접근협정(RAA)이 대표적이다. 일본 자위대와 필리핀군이 연합연습 등의 목적으로 상대국 영토를 방문할 때 필요한 출입국, 장비 반입, 시설 사용, 형사관할권 등 제반 법적·행정적 절차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호주·영국에 이어 필리핀과 세 번째로 RAA를 맺었다. 특히 아시아 국가와 체결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미·일·필리핀 협력은 협의체 출범으로 이어졌다. 2024년 4월 백악관 정상회의를 통해서다. 백악관 공동비전 성명은 이들 세 나라를 인도·태평양지역의 해양 민주주의국가로 규정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 등 공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정상회의 직후 발표된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 루손 회랑’ 계획에도 관심이 쏠렸다.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 대응 차원에서 천명한 PGI 구상의 인·태지역 내 첫 번째 적용 국가로 필리핀을 지목해서다. 이는 미·일·필리핀 협력이 군사적 차원을 넘어 필리핀의 기반시설·산업·공급망 기반을 강화하는 기제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필리핀과 호주의 국방협력도 한층 강화됐다. 2023년 9월부로 양국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됐다는 측면에서다. 양국의 공동선언은 정치·전략적 협력의 제도화, 안보·국방협력 강화, 남중국해 공동순찰과 해양안보, 경제안보·공급망·무역 투자 등의 내용을 강조했다. 그 후속 이행의 차원에서 양국의 국방장관회의가 2024년 11월과 2025년 8월에 열리면서 연례화됐다.

미·일·호주·필리핀 소다자 협력은 이러한 동맹·우방국 협력을 토대로 발전했다. 특히 정례화된 4개국 국방장관회의가 핵심 기제다. 그 출발점은 2023년 6월 1차 국방장관회의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2차 회의에서는 남중국해·동중국해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해양협력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같은 해 11월 3차 회의는 한국이 참여하는 5자 회의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역내 확장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평가됐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서면서 더욱 구체적 수준의 협력방안이 논의됐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4차 회의에선 협력의제를 4가지 방향으로 구체화했다. 방위 투자의 우선순위 식별, 정보 공유 강화, 사이버안보와 복원력 강화, 작전 조정과 상호운용성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는 필리핀의 국방력 강화가 4개국 협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발리카탄 연합훈련 중 미국·필리핀군 장병들이 상륙 저지 실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발리카탄 연합훈련 중 미국·필리핀군 장병들이 상륙 저지 실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같은 해 11월 5차 회의도 주목받았다. 억제와 작전 준비태세, 작전 조정체계 제도화 등 핵심 의제 논의를 거쳐 4개국 협력이 작전 중심의 단계로 진화했다. 특히 4개국 장관은 합동참모의장급 국방협력위원회 설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관급 협의체의 합의 내용을 작전적 차원에서 구현하려는 공조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훈련도 본격화했다. 2023년 8월 4자 해상훈련이 그 출발점이다. 4개국 해양협력활동(MCA) 정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다. 예를 들어 2024년 7월의 제1차 MCA와 2025년 2월의 제2차 MCA 모두 필리핀의 배타적경계수역(EEZ) 내에서 실시됐으며, 기동·전술절차와 해양상황 인식 공유 등 4개국 해·공군 전력의 상호운용성 강화에 목적을 뒀다.

기존 양자훈련을 확장한 방식의 연합훈련도 본격화하는 추세다. ‘발리카탄 훈련(Exercise Balikatan)’이 대표적이다. 미국·필리핀의 최대 연례 양자훈련에서 일본·호주가 참여하는 4개국 협력의 플랫폼으로 발전했다는 측면에서다. 특히 2025년과 2026년 훈련에선 필리핀 전역에서의 다영역작전 훈련을 전개하면서 역내 억제력 시현의 의지를 보여 줬다. 미국·호주의 격년 연합훈련인 ‘탈리스만 세이버(Talisman Sabre)’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필리핀을 포함한 역내·역외 국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다국적 전구훈련이어서다.

미·일·호주·필리핀 협의체는 필리핀을 인·태 해양안보의 거점으로 삼고 역내 전략거점을 연계하는 억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목적을 둔다. 미국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일본·호주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소다자 협력은 집단방위체제와는 엄밀히 구분되는 기제다.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 발전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강석율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강석율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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