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에서 익숙하면서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말과 또 한 번 마주했다.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이 문장에는 이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응축돼 있다.
생즉필사는 그의 군사적 행적에서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장군은 탈영하던 장수와 병졸을 군율에 따라 참수했다. 생즉필사의 원칙은 동일하게 스스로에게도 적용했다. 1597년 선조의 출병 명령에 장군은 해전 여건, 보급상태, 정보의 불명확성 등으로 보수적인 판단을 했고 그의 공적을 시기한 정파의 모함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에서 파면돼 서울로 압송된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장군에게 탈옥을 권유하자 “죽으면 죽는 것이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필생즉사(必生卽死), 살고자 하면 곧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원균의 칠천량전투 패배와 복권 명령으로 백의종군하는 굴곡을 겪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전쟁터 복귀 후에는 막내아들이 왜군 손에 죽었으며, 수많은 부하를 전장에서 잃었다. 장군 역시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았다. 왜군의 총탄에 맞고 쓰러지면서 “전투가 시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言我死)”는 유언을 남겼다. 본인의 죽음이 전장의 흐름 자체를 변화시킬 것을 우려한 장군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과연 사즉필생,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삶으로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을까? 장군은 임진왜란 7년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장수들의 죽음을 너무도 많이 봐 왔으며 『난중일기』에 ‘죽음도 천명’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있다. 왜 생즉필패 사즉필승(生卽必敗 死卽必勝)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장군은 20년 넘게 야전 무관으로 전투를 지휘하면서 전쟁의 일승일패(一勝一敗)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임진왜란은 민족의 생사가 걸린 전쟁이며 자신의 일패가 곧 조선의 패망이라는 것을 인지했기에 승패를 생각하기 이전 장수로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고자 결단한 한 장수의 생은 현재도 ‘나라와 겨레를 지키겠다는 전투의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생즉필사 사즉필생을 또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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