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이런 대사가 있다.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원치 않는 자리에 떠밀려 나간 소년이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장면이다. 어릴 적에는 그저 멋있다고만 생각했다. 그 말이 훗날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군사관후보생(ROTC)은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 아버지는 군 생활이 사회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리더십과 인내를 길러 줄 것이라고 믿으셨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원서를 냈지만, 입영훈련은 첫날부터 모든 게 낯설고 버거웠다.
그런 나를 바꾼 것은 교관님과 간부님들이었다. 적응하지 못하는 후보생을 다그치는 대신 왜 이 훈련을 하는지 후보생 눈높이에서 설명했고, 부족한 부분은 옆에서 함께 뛰며 묵묵히 채워 주셨다. 단장님께서 새벽 체력훈련에 누구보다 먼저 나와 계신 모습을 보고선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명령이 아닌 존중, 통제가 아닌 소통. 막연히 그려 오던 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야외훈련의 어느 밤이 떠오른다. 동기들과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지쳐 말이 없었지만 누군가 “우리가 해낸다”고 했을 때 피곤한 얼굴 위로 웃음이 번졌다. 혼자였다면 버틸 수 없었을 시간이 함께여서 견딜 수 있었다. 전우애라는 말의 무게를 가슴으로 처음 느낀 밤이었다.
변화는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졌다.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 홍보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촬영·편집해 대학교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학군단이 내게 준 것들을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안보학술 경연대회에 도전해 우리 학교 최초로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것도 그 마음의 연장선상이었다. 학군단에서 쌓은 자신감은 바깥 무대로도 이어져 서울시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전국 2위에 올랐고, 고용노동부 정책홍보단 영상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게 됐다. 돌이켜 보면 모든 시작에는 학군단이 있었다. 처음 카메라를 들게 해 준 것도, 무대 앞에 설 용기를 준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학군단은 꿈의 방향을 바꿔 주고 생각지 못한 길을 열어 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지금은 그때 체득한 소통의 힘을 바탕으로 마케팅 직무를 꿈꾸며 사회인으로서 역량과 장교로서 사명감을 품고 임관을 준비 중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ROTC를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처음의 두려움을 겁내지 말라고. 그 군복 위에 써 내려갈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눈부실 것이라고.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