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연습 훈련장에서 비디오월 위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전장상황을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완벽한 방위태세와 합동성을 논하는 치열한 현장인데, 불현듯 낯선 이국 골목길에서 마주했던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오타쿠(オタク)’다. 흔히 일본 문화라고 하면 상대를 극진히 대접하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환대)’가 품은 밝고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반면 ‘오타쿠’란 오랫동안 방 안에 틀어박힌 은둔자를 뜻하며 어둡고 쓸쓸한 꼬리표에 가까웠다.
일본 고베 여행길에서 우연히 발길이 닿았던 이진칸(異人館) 언덕배기 낡은 킷사텐(다방)에 들어섰을 때다. 백발 노년 마스터는 커피 한 잔을 내리기 위해 원두 굵기와 물줄기 각도, 심지어 물방울 속도까지 집요하게 통제하며 10여 분을 온전히 쏟아부었다. 숨 막힐 듯 몰입한 찰나가 빚어낸 한 잔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 예술이었다. 친절한 주인을 넘어 커피 자체에 미친 ‘오타쿠’이자 위대한 ‘장인’이었다.
최근 일본항공이 ‘팬(Fan)에서 오타쿠(Otaku)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배경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적당한 호감을 지닌 얕은 ‘팬’보다 대상이 가진 본질을 꿰뚫고 무한한 애정을 쏟아 낼 ‘오타쿠’가 거대한 혁신을 끌어냈다며 던진 통찰이다. 이처럼 오타쿠는 ‘최고도로 진화한 스페셜리스트’를 가리킬 새로운 지표로 자리 잡았다.
오타쿠 철학이야말로 치열했던 연합연습 현장에서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합동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해답이다. 진정한 합동성이 발휘되려면 육·해·공군이 단순히 한 공간에 모이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특히 정보장교라면 적 교리·지형·기상, 나아가 적 지휘부가 품은 심리까지 집요하게 파고들 ‘정보 오타쿠’가 돼야만 한다. 영상정보와 신호정보가 그렸던 미세한 파동에서 적 기만을 꿰뚫고 허점을 찾아내던 극도에 이른 전문성이다. 그 뾰족한 분석력이 육·해·공군 타격 자산에 정확한 좌표를 쥐여 줄 때 합동성이 빚어내던 거대한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쉼 없이 돌아가던 연합연습 톱니바퀴 속에서, 고베 이진칸에서 마주했던 이름 모를 마스터가 보여 준 장인정신 앞에서 서성이며 다시금 나를 돌아보니 그토록 무서운 몰입을 보여 준 적이 없다.
섣부른 영역 확장보다 긴 세월 파 내려온 참호 속에서 진정한 끝을 마주할 때까지 더 맹렬하게 파고들고 싶다. 내가 품은 뾰족한 깊이가 누군가와 맞닿아 굳건히 연대할 때 우리 군이 발휘할 합동성도 그 어떤 위협마저 뚫어 낼 날카롭고 단단한 창과 방패가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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