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왜란의 영웅 이대원 장군을 기리며

입력 2026. 04. 22   15:11
업데이트 2026. 04. 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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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선조 20년) 정해년 음력 1월 16일 녹도진 앞바다에 일본 규슈 오도·평호도 왜인들의 배가 나타났다. 34세였던 녹도만호 이대원(1553~1587)은 즉각 출동해 왜선 2척을 침몰시켰지만, 왜인들은 2월이 되자 18척 규모로 당시 흥향현에 속한 손죽도(현 여수시)에 다시 나타났다. 이대원은 손죽도 앞 해상으로 나아가 조총을 쏘아대는 왜인들과 사흘 밤낮으로 전투를 치르다가 전사했다. 정해년에 왜인이 일으킨 이 전란이 정해왜란이다.

손죽도에서의 전투는 사실상 임진왜란의 서막을 알리는 전초전이었다. 조정은 정해왜란을 계기로 전라좌수영의 함대와 군사 전력을 증강하는 등 전라좌수영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방어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훗날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해 승전의 기틀을 닦을 수 있었던 것도 이대원 장군의 희생이 배경이 된 수군력 강화라는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장군의 피는 전라좌수영을 철옹성으로 변모시켜 임진왜란에 이르러 나라를 구하는 결정적 자산이 됐다.

장군과 그 부하들이 보여 준 압도적 투혼은 조선뿐만 아니라 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손죽도에서 왜군이 마주한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저항은 왜군으로 하여금 전라도를 통한 직접 진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왜군은 침략 루트를 변경해 전라도 대신 경상좌수영이 위치한 부산포를 주공격 목표로 설정했다. 만약 일본군이 계획대로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먼저 유린했다면 조선의 보급선은 끊기고 전쟁 양상은 훨씬 비참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투쟁은 지리적 방어선을 구축해 전쟁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승리였다.

올해는 충령공 이대원 장군이 전사한 지 439주기가 되는 해다. 장군이 보여 준 충의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 평택시, 함평이씨 종친회, 해군 등이 중심이 돼 매년 추모제 등의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으나 정해왜란의 중요성, 장군의 희생이 미친 역사적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더 깊이 있는 연구나 국가적 예우가 부족한 것은 아쉽다.

정해왜란의 영웅 이대원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해군 함정에 그의 이름을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그의 불굴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현대 해군 장병들에게도 시대를 초월한 참된 군인정신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우리가 장군의 숭고한 이름을 함정으로 건조해 바다로 돌려보내야 할 때다. 학술대회와 홍보활동으로 이대원 장군의 공적을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도 병행돼야 마땅하다.

이상식 예비역 해군준장 전 해군항공사령관
이상식 예비역 해군준장 전 해군항공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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