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流로드… 길 위에서 만난 천년 문화유산 아카이브

입력 2026. 04. 21   17:16
업데이트 2026. 04. 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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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국가유산청이 함께하는 ‘두 발로 만나는 국가유산’
한국 진경문화의 꽃-관동 풍류의 길

서울서 불과 2시간 선비의 발자취 깃든 곳
신사임당·율곡 이이 생가 ‘오죽헌’
송강 정철 관동별곡서 언급한 ‘경포대’
영험함 깃든 ‘신흥사’·천혜의 풍광 ‘낙산사’
6개 길에서 만난 관동의 국가유산
보존·전승 무거운 책임감으로

“강호(자연)에 병이 깊어 대나무숲에 누워 있었더니 관동 팔백 리에 관찰사직을 맡겨 주시니. 아아, 임금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끝이 없구나….”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1580년 조선 중기 문인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을 살펴보면 강원도(관동) 일대의 수려한 경치에 감탄하며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과연 조선의 선비도 탄복했던 백두대간과 동해의 경관은 2026년 어떤 빛깔로 우리를 맞이할까.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태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한국인의 ‘영원한 여행지 1순위’로 사랑받는 강원도의 국가유산을 마주하러 나섰다. 글=노성수/사진=김태형 기자

 

강원도 관동팔경은 백두대간과 동해를 잇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자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배경인 한국 진경문화 발원지다. 왼쪽부터 ‘관동 풍류의 길’ 국가유산 거점인 강릉 오죽헌·선교장·경포대, 평창 월정사, 속초 신흥사, 양양 낙산사.
강원도 관동팔경은 백두대간과 동해를 잇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자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배경인 한국 진경문화 발원지다. 왼쪽부터 ‘관동 풍류의 길’ 국가유산 거점인 강릉 오죽헌·선교장·경포대, 평창 월정사, 속초 신흥사, 양양 낙산사.

 

마천루가 가득한 서울 도심을 벗어나 옛 시인 묵객의 풍류가 깃든 강원 강릉시에 발을 내딛기까지는 2시간이면 충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2017년 12월 경강선 KTX가 개통하면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된 덕분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4~5시간은 각오하고 나서야 했던 곳에서 당일치기 여행지로 변화한 것이다.

국가유산 방문 캠페인 10개 테마 길 중 두 번째 코스인 ‘관동 풍류의 길’은 강릉을 중심으로 속초시·양양군·평창군을 잇는 총 6개의 국가유산을 거점으로 한다. 봄꽃이 만개한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허기진 배를 채우러 지역민이 추천한 장칼국수 맛집으로 향했다.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이 일품인 장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니 투박하지만 따뜻한 강원도의 정이 채워지는 듯했다.

강릉 하면 우리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두 인물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부터 떠오른다. 뛰어난 예술가이면서 현모양처의 전형인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이자 조선 후기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 율곡 이이는 우리 일상에서 친숙하게 사용하는 5만 원권과 5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하지 않은가.

 

 

강릉 오죽헌
강릉 오죽헌


우선 KTX 강릉역에서 차를 빌려 두 인물이 태어난 집 ‘오죽헌’부터 찾기로 했다. 뒤뜰에 검은 대나무 오죽(烏竹)이 자라고 있어 명명된 오죽헌은 본래 조선 초기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집이었다. 이후 몇 번 주인이 바뀌면서 신사임당의 어머니인 용인 이씨가 소유하게 됐다. 신사임당은 외가인 오죽헌에서 태어났고, 혼인 후 홀로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오죽헌에서 지내며 율곡 이이를 낳았다. 

오죽헌은 한국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건축학적 측면에서도 가치를 지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 기와집으로 공포(?包·기둥머리나 평방 위에 첨차와 소로를 짜맞춘 한옥 구조물)가 새 부리 모양을 한 익공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오죽헌의 안팎을 가르는 ‘자경문’을 지나 안채에 들어서니 안주인의 어질고 고운 품성이 전해지는 듯했다. 발걸음을 옮겨 찾은 사랑채에는 벗들과 담소를 나누던 모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죽헌 앞쪽 율곡기념관에선 신사임당과 후손들의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신사임당의 예술성은 풀벌레를 그린 그림을 말리기 위해 마당에 내놨더니 닭들이 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뛰어났다. 아쉽게도 다수의 복제품만 만날 수 있어 허전함은 남는다.

 

 

선교장
선교장


오죽헌을 나와 지척에 있는 또 다른 국가유산 ‘선교장’으로 향했다. 한국 전통가옥을 대표하는 선교장은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 상류 주택이다. 10대에 걸쳐 3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돼 조선시대 가옥과 문화를 보여 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널찍한 연못 위에 ‘활래정(活來亭)’이란 정자가 관람객을 맞는다. 산기슭을 배경으로 비현실적인 공간을 눈에 담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 안채, 사랑채, 별당 등을 따라 99칸 규모의 대저택을 유유히 거닐고 나니 도심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두 발도 그 시대 양반의 여유 있는 걸음새로 저절로 바뀌게 되는 마법을 경험했다.

 

 

경포대
경포대


강릉의 전통가옥에서 일상의 조급함을 벗어던지고 나니 이번에는 경포대에서 풍류의 정점을 느껴 보고 싶었다.

경포대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관동팔경 중 한 곳으로 시인 묵객이 자연 풍광을 음미하며 학문을 닦고 마음을 수양했던 유서 깊은 장소다.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과 48개의 기둥, 정면 5칸, 측면 5칸의 큰 규모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 후기의 정자다. 특히 경포호 방향으로 단을 높여 마루를, 좌우로 한 단을 더 높여 누마루를 만들어 전체적으로 내부를 3단으로 구성한 것은 일반 누각과 정자에선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내부에는 율곡 이이 선생이 10세 때 썼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해 숙종이 직접 지은 ‘어제시’와 조하망의 상량문 등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의 글이 게시돼 있다.

관람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누마루에 오르니 푸르른 경포호의 절경이 한눈에 입체적으로 들어온다. 조선의 문인들은 파도 소리, 풀 소리 하나하나에 숨결을 느꼈을 테지만 부끄럽게도 속세에 찌든 자의 눈에는 H자 흰색 타워 형태의 호텔이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관람객이 뜸한 평일에 경포대를 독차지하고 코끝으로 봄 내음마저 음미하니 ‘여권투어’의 백미인 스탬프 찍는 일도 잊고 말았다. 완벽한 해방감에 취한 탓이리라.

 

평창 월정사
평창 월정사


경포대 아래에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6·25전쟁 중 산화한 강릉 출신 군인·경찰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인 만큼 그냥 지나치지 말고 나라 사랑의 큰 뜻을 새기길 바란다.

강릉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이번엔 평창 월정사로 1시간을 내달렸다. 시간이 다소 촉박했지만, 사진으로 본 월정사의 황홀한 전경은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오대산의 정기를 가득 받고 자리 잡은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 12년) 신라의 승려 자장이 창건한 1000년 역사의 사찰이다. 산 전체가 불교 성지가 된 곳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다.

무엇보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 ‘적광전’ 앞마당에 자리한 국보 제48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압권이다. 고려 초기 석탑을 대표하는 다각다층석탑으로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마주 보며 앉아 있어 신비감을 자아낸다. 화려한 불교문화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석탑의 위용을 느끼며 ‘1시간이 걸려도 오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양양 낙산사
양양 낙산사


강릉과 평창의 풍류에 취하다 보니 어느덧 ‘관동 풍류의 길’도 막바지로 치달았다.

설악산 자락을 따라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산 울산바위가 눈에 들어오자 속초에 들어선 게 실감 났다. 언제 봐도 영험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울산바위를 따라 이번엔 설악산국립공원 내 신흥사를 찾았다.

신흥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이 창건한 사찰로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어졌다.

3명의 스님에게 백발선인이 나타나 ‘이곳은 수만 년이 지나도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이라고 말씀하신 뒤 절터를 점지해 준 꿈을 꾸고 절을 세워 신흥사라고 명명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신흥사 일주문에 들어서면 남북 통일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통일대불’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높이 14.6m로 청동 108톤을 투입한 불상을 마주하자 엄청난 존재감에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이 절로 입에서 나왔다. 속세를 벗어난 지 하루 만에 찌든 때를 아주 조금은 털어 내고 자연과 하나 돼 가고 있었다.

그 기분 그대로 양양 낙산사로 30분간 내달려 관동 풍류의 길에 마침표를 찍었다.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낙산사는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사찰이다. 2005년 산불로 문화재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모두의 뜻을 모아 재건됐다. 낙산사는 자체 산불재난 안전체험장을 설치해 산불 경각심을 고취하고 문화재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로도 명명된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에게 국가유산은 어떤 의미일까. 낙산사도, 숭례문도 뜻하지 않은 화재로 잃었던 뼈아픈 기억이 생생하지 않은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은 국가유산을 단 한 번의 부주의로 잃는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를 지켜 내고 전승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사명이란 생각이 새삼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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