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금수강산은 봄꽃 향기로 가득하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군무원이 돼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이다.
학창 시절, 봄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학교보다 고통스러운 재활치료와 차가운 수술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다. 그러던 어느 날 힘든 치료를 마치고 어머니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찾은 지역축제에서 군악대 행진을 봤다. 굳어 있던 사지가 움찔거리는 듯했다. 그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힘겨웠기에 그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보였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던 내게 꿈을 심어 준 그들을 위해 당당한 사회구성원이 되고자 삶의 전투에서 승리하겠노라고 결심했다. 전투는 너무도 힘겨웠다. 남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고, 취업전선에선 수없는 낙방을 경험했다. 결국 10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정규직 직장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 사회도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중증장애인이 공직자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고, 마침내 군에서도 장애인 군무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 직장 경력과 ‘단 하루를 살아도 존엄하게 살겠다’는 의지, 세계 5위권 정예 강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도전했다. 결과는 기적과 같은 최종 합격이었다.
창군 이래 나처럼 최중증장애를 가진 인원이 군의 일원이 된 것은 개인의 승리를 넘어 우리 군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발전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난해에는 장애인 취업 성공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고, 지난달에는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한 온라인 공직 설명회에 육군을 대표해 출연하기도 했다. 군이 경직되고 권위적인 곳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장애인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일터임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계 5위권의 압도적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동반자이자 국방공동체를 꽃피우는 일꾼으로서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 군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미래 지향적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최정예 강군 육성은 단순히 화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가 실현되는 국방공동체야말로 세계적인 글로벌 강군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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