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의 속도, 안보의 힘

입력 2026. 04. 17   16:41
업데이트 2026. 04. 1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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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예산의 신속 집행은 단순한 행정처리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급변하는 안보 위협에 국가가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핵심 전력 지표다. 현대 안보환경은 위협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생존을 좌우한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는 ‘예산 속도’가 갖는 중요성을 잘 나타낸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긴급 추가경정예산과 신속획득제도를 안착시키며 비상시 재정 운용체계를 고도화했다. 최근에는 국방혁신단(DIU)을 주축으로 민간의 첨단 상용기술을 군에 신속히 도입하고 있다. 예산 집행부터 실전 배치까지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함으로써 ‘속도가 곧 전력’이라는 철학을 제도화한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1000억 유로 규모의 특별국방기금을 조성해 지연됐던 노후 장비 교체와 전력 현대화를 단기간에 추진했다. 이는 재정 확대를 넘어 예산 집행시기를 전략적으로 앞당겨 안보 공백을 메우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일본은 방위력 정비계획에 따라 다년도 계약과 선집행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방산기업의 자금 흐름을 안정시켜 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연구개발(R&D)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단순한 산업 지원을 넘어 장기적 방위력 확보를 위한 고도의 재정 운용전략이다.

이들 국가가 공통으로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국방예산의 신속 집행이 맹목적인 속도전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속도’여야 한다는 점이다. 전략적 로드맵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섣부른 집행은 오히려 예산 낭비와 비효율을 낳는다. 주요국들이 집행 속도를 높이면서도 의회 통제와 엄격한 감사체계를 병행하는 이유다. 전략적 로드맵과 제도가 뒷받침된 신속한 예상 집행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국방재정의 필수조건이다.

연중 상시 고도의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대한민국에 이 교훈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예산이 확보됐음에도 집행이 지연된다면 적기 전력화 일정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 생태계의 기초체력마저 약화된다. 특히 기술 변화 주기가 짧은 첨단 무기체계 개발에서 집행 지연은 치명적인 기술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적시에 투입한 국방재정은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고 방산업계에 안정적인 성장 신호를 제공한다. 국방예산의 신속 집행은 재정 운용의 ‘타이밍’을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안보 위협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고, 방위사업에는 예측 가능한 신뢰를 주겠다는 국가의 확고한 의지다. 속도와 책임을 동시에 구현하는 재정 운용 역량, 그것이 오늘날 안보 경쟁력의 핵심이다.

예산 집행 속도는 곧 안보의 힘이다.

문선웅 대령 육군지상작전사령부
문선웅 대령 육군지상작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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