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 제주
좌절이 없는 호국의 숨결… 민·군 상생 바람이 깃든 땅
전국 최초 통합형 국립묘지 ‘국립제주호국원’
전장 떠나기 전 무사 귀환 빌며 기도한 ‘강병대교회’
민·군 상생의 현재이자 미래 ‘제주민군복합항’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외면 않고 앞장섰기에…
깊은 아픔 간직한 섬의 꿋꿋함에 군 헌신으로 답한다
유난히 굴곡이 많은 섬. 멀리는 대몽항쟁을 벌이다가 이곳에서 최후의 항전을 한 삼별초의 난부터 가까이는 이념에 의해 많은 주민이 안타깝게 희생된 4·3사건까지, 제주는 긴 역사 속 깊은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제주는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큰 힘이 된 곳.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호국의 숨결’은 제주 곳곳에 깊이 남아 있었다. 글=맹수열/사진=한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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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호국·민주의 가치를 한곳에…국립제주호국원
섬의 한가운데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한라산 중턱에는 독립·호국·민주를 아우르는 전국 최초의 통합형 국립묘지 국립제주호국원이 자리잡고 있다. 봉안묘·봉안당 1만 기를 안장할 수 있는 제주호국원은 한라산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수목과 어우러져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제주호국원에는 참전유공자는 물론 독립유공자 등 안장대상자, 민주유공자가 함께 묻혀 있다. 전쟁 이후 제주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가 대부분이지만 서울·대전 등 타지에서 사망한 뒤 고향땅에 묻힌 경우도 꽤 목격할 수 있었다. 비석에 소속과 공적, 생몰년, 사망 장소, 배위(配位)까지 상세히 기록해 이들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각 묘역에는 유가족이 놓고 간 형형색색의 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호국원에서 한라산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4·3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제주4·3평화공원이 있다. 4·3사건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담아 만든 공원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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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비극을 생생히…대정읍에서 만난 ‘다크 투어리즘’
다시 서귀포 방향으로 내려오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명소인 대정읍으로 향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찾아가 과거를 성찰하고 교훈을 찾는 여행을 뜻한다. 대정읍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해 군사기지화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탐방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대정읍에 넓게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 다크 투어리즘의 성지로 꼽힌다. 일제가 상모리 아래쪽 너른 벌판에 제주도민 등을 동원해 세운 군용 비행장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이 비행장을 전초기지로 삼아 700㎞ 떨어진 중국 난징을 폭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그해 알뜨르 비행장에서는 일본 오무라 해군항공대의 수많은 비행기가 출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듬해 11월 일제가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해군항공대가 중국으로 옮겨갔고, 알뜨르는 연습 비행장이 됐다.
오랜 시간이 흘러 활주로는 밭으로 변했다. 하지만 벌판 사이사이에 자리한 낡은 비행기 격납고는 제주도민이 당시 겪은 고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는 모슬포 바닷가의 자갈과 모래, 철근, 시멘트로 20기의 반원형 격납고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19기가 원형 그대로 남아 강제노역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격납고 안에는 일제 주력기였던 제로센 모형을 볼 수 있다. 박경훈 작가가 2010년 열린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전에 출품한 작품 ‘애국기매국기(愛國機賣國機)’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 가운데 애국기(제로센)를 헌납한 친일지주·자본가가 많았다”며 “그들이 헌납한 것은 매국의 기록”이라고 표현했다.
비행장 인근에는 지하벙커와 동굴진지, 고사포진지도 있다. 특히 셋말오름에 지어진 동굴진지·고사포진지는 일제가 제주를 요새화한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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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대교회에서 민·군 상생의 역사를 만나다
해변에서 본 아픈 상처와 달리 대정읍 번화가 쪽에서는 민·군이 힘을 합쳐 국난을 극복하려 했던 현장도 볼 수 있다. 강병대교회는 이 가운데서도 현재 군이 사용할 정도로 유서가 깊은 장소다.
강병대교회의 시작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섰고, 훈련소장이던 장도영 소장은 장병들의 정신전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제주 현무암을 이용해 벽체를 쌓고 목조 트러스(여러 뼈대를 삼각형·오각형으로 얽은 구조물)와 함석(아연을 도금한 얇은 철판) 지붕을 씌운 형태다. 긴박한 전시인지라 민간 건축 기술자의 참여 없이 공병대의 힘으로 세웠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수많은 병사가 전장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무사 귀환을 빌며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교육·복지도 담당한 민·군 상생 현장이기도 하다. 1952년 대정읍에 처음으로 문을 연 샛별유치원은 이 교회에서 태동했다. 전쟁 이후에도 군인들은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할아버지로 변신해 전쟁 고아들에게 옷과 신발을 선물했다고 한다. 1966년에는 부대 장교들이 교사로 나선 교회 부설 신우고등공민학교가 세워져 지역 사회에 공헌하기도 했다. 학교는 1981년 폐교될 때까지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전장으로 가는 장병에게 위안을 주고 피란민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강병대교회는 70년이 넘도록 원형이 보존된 역사 유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인근 부대 장병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며 민·군 가교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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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서다…해병 3·4기 호국관
강병대교회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해병 3·4기 호국관도 원형을 유지한 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는 6·25전쟁 당시 3000여 명의 청년이 해병으로 자원 입대한 지역이다. 4·3 사건으로 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어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여군도 126명이나 지원한 점은 국난 극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제주 도민의 의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호국관은 해병 3·4기로 입대한 제주 청년들이 신병교육을 받았던 최초의 훈련소를 그대로 활용해 지어졌다. 제주 해병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사진과 물품, 전쟁 속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았던 이들의 친필 편지와 비망록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호국관 옆으로는 신병들이 사용했던 세면장 등 여러 시설이 오롯이 남아 있다.
이 밖에 대정읍에는 중공군 반공포로가 죄를 뉘우치며 지었다고 해 ‘통회(痛悔)의 집’으로 불리는 모슬 포천주교회, 소년병으로 참전한 제주 학생들을 기리는 대정중 6·25참전 소년병 추모공간, ‘군 태권도의 발상지’로 꼽히는 제29사단 발상탑 등 전쟁 전후 제주 주민과 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명소도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민·군 상생의 현재이자 미래…제주민군복합항
강병대교회와 해병 3·4기 호국관이 민·군 상생의 역사라면 제주민군복합항은 민·군 상생의 현재이자 미래다. 2016년 2월 준공된 제주민군복합항은 지난 10년 동안 강정마을 주민과 장병들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김영관센터. ‘제주의 자랑’인 동시에 ‘해군의 자랑’인 고(故) 김영관(예비역 해군대장) 제독의 이름을 딴 김영관센터는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복합문화시설이다.
김영관센터는 현재 각종 체육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코트와 수영장 등을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특히 수영장은 2016년 2000여 명이 이용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7400여 명의 이용객을 기록하는 등 마을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여름마다 인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생존수업 교육장으로도 유명하다. 연평균 300회가량 활용되는 종합운동장과 1000여 명 이상 이용하는 것으로 집계된 체력단련장도 있다.
한반도 해역의 중앙에 있는 민군복합항은 해군기동함대가 유사시 동·서해 전방으로 신속히 전개할 수 있는 안보의 요충지다. 동시에 해외 크루즈 관광의 관문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기동함대에 따르면 올해 제주도를 방문하는 크루즈 관광객은 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성과 뒤에는 크루즈 기항이 가능한 민군복합항의 역할도 크다는 것이 기동함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부대 차원의 상생 가치 실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17년 편성된 민군협력실은 민·군 상생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기동함대는 이를 발판으로 상생 축구대회, 일강정(‘강정마을이 제일’이란 뜻의 제주 토속어)의 날, 부대개방 행사, 호국음악회 같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이 밖에 매달 이뤄지는 의료지원 활동, 장병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되는 방과 후 수업, 제주 바다를 지키기 위한 해양정화 활동, 헌혈증 기부 등 지역 주민을 위한 기동함대의 노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수많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제주 도민은 나라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 꿋꿋한 정신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기꺼이 앞장섰던 역사로 이어졌다. 이제 군도 이런 제주의 헌신에 화답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 제주가 민·군 상생을 대표하는 땅으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를 갖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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