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의 서막, 선율이 된 프랑스의 우울

입력 2026. 04. 14   16:30
업데이트 2026. 04. 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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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함께하는 전쟁사
독일의 프랑스 침략과 풀랑크의 멜랑콜리

패전 뒤 재무장한 獨, 소련과 비밀 협력
체코 등 동유럽 점령 이어 프랑스 침공
佛사회 극도의 혼란과 불안·상실 빠져
서정적 화음에 슬픔과 애수 고스란히
풀랑크, 우울한 분위기 피아노 곡에 담아

2차 세계대전 준비를 위해 프랑스가 구축한 마지노선의 요새.
2차 세계대전 준비를 위해 프랑스가 구축한 마지노선의 요새.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함으로써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해 징병제를 폐지하고, 공격용 무기인 항공기와 전차는 아예 보유 제한을 받았으며, 병력도 10만 명만 운영해야 했던 독일이 어떻게 군을 재건했을까? 히틀러가 재군비 선언을 한 1935년까지 불과 15년 남짓한 기간이었고, 1940년 프랑스 침공까지는 아주 짧은 기간이었는데 어떻게 3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양성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한스 폰 제크트(1866~1936) 장군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밀리에 진행된 한스 폰 제크트의 독일군 재건
제크트 장군은 1919년 해체된 독일군의 최고책임자로 병무청장의 직책(또는 군무처장)을 수행하고 있었다. 군의 해체로 참모총장 또는 국방장관 등의 명칭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시 서부전선에서 3군단 참모장으로, 동부전선에서는 11군 참모장 직책을 수행했다.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군사 고문 및 참모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제크트 장군은 독일군 재건의 책임을 갖고 비밀리에 군비 재건 계획을 실행했다. 우선 1차 세계대전의 패인을 분석하기 위해 지하 벙커에서 수많은 독일군 장군 및 실무자와 자유로운 토론을 이어가며 교훈을 도출했다. 그 교훈은 참호전이 다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탱크나 장갑차를 대규모로 운용하는 기동전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전격전의 시초가 됐다. 그 다음은 인사관리와 관련된 것으로, 간섭 없이 군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위임받았으며, 장교 선발도 귀족 자제 중심에서 벗어나 전국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탱크를 농업용 트랙터로, 군용기를 민항기로!
탱크 보유를 통제했기에 비밀리에 독일 전차를 개발하면서 농업용 트랙터로 위장했고, 독일 내 생산이 불가능해지자 소련 내 카잔 등과 비밀협정을 맺고 ‘카마(KAMA)’라는 기갑학교를 세워 전차 개발과 승무원 훈련을 진행했다. 아울러 항공기도 ‘루프트한자’와 같은 민간항공사를 설립해 유사시 쉽게 폭격기나 전투기로 개조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군사 훈련용으로 제작된 항공기를 농약 살포 및 여객 운송용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소련의 리페츠크에 비밀 항공학교를 설치해 조종훈련을 시켰다. 

또한 10만 명의 병력을 ‘정예군’ 또는 ‘지휘관 군대’로 양성하기 위해 강도 높은 교육을 단행해 유사시 이들이 수백만 대군의 지휘관(간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 ‘블랙 라이히스베어(Schwarze Reichswehr)’라는 우익 민병대를 비밀리에 훈련시켜 정규군 수준의 무장력을 갖추도록 했다. 아울러 소련과의 비밀 조약인 ‘라팔로조약’을 맺어 소련 영토 내에서 전차, 항공기, 독가스 등을 공동 개발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모든 방법을 강구했다. 이러한 결과가 짧은 기간에 독일군을 재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혁신의 독일군과 참호전을 고수한 프랑스의 대응
1차 세계대전의 교훈은 고스란히 다음 전쟁에 반영돼 나타났다. 프랑스는 1917~1918년 있었던 참호전과 진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새화된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면 어떠한 공격도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프랑스의 전쟁부 장관이던 앙드레 마지노가 구상해 1929년부터 1938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독일과의 접경지역 및 공격을 대비한 지역에 약 750㎞의 ‘마지노선’을 구축했다. 대전차장애물과 철조망을 깔아놓고 뒤에는 교통호와 내부철도망으로 연결된 대형 요새와 벙커, 대피소, 관측소, 지상 특화점 등 그야말로 공중공격과 포격에 버티며 전투를 수행할 요새를 구축했다. 

프랑스는 북쪽보다 독일과 직접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남쪽을 경계했다. 독일이 구릉성 지역인 남쪽을 통해 대규모 기동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 룩셈부르크 지역은 삼림이 울창해 기동이 제한될 것으로 봤고, 벨기에를 경유할 경우 상당히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고 조기에 전쟁 기도가 노출되며, 중립국을 침략함으로써 영국이 조기에 참전할 수 있는 명분을 주기에 회피할 것으로 판단했다.

한편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슐리펜계획을 실행했으나 전쟁에 패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참모총장이던 할더(1884~1972)가 ‘황색상황’ 계획을 제안했으나 히틀러가 반대했다. 그 대신에 당시 A집단군의 참모장이던 만슈타인(1887~1973) 장군이 제안한 ‘낫질 작전계획’을 채택했다. 프랑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벨기에 남부의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통과함으로써 신속한 기습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1930년 촬영된 프랑시스 플랑크의 모습.
1930년 촬영된 프랑시스 플랑크의 모습.



2차 세계대전의 서막과 프랑스 침략
독일은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9월에는 체코의 주데텐란트(체코 서부지역으로 독일과의 접경지역) 등 중요 지역을 일부 점령했다. 1939년 3월에는 체코의 나머지 지역을 모두 확보했다. 한편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폴란드 주권을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9월 1일 독일이 마침내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됐다. 9월 27일, 약 4주 만에 폴란드는 항복했고,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1940년 4월부터 6월에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냈고,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모든 여건을 만들었다. 

1940년 5월 10일 드디어 독일의 총구가 프랑스를 향했고, 방아쇠가 당겨졌다. 프랑스는 남부지역을 마지노선으로 대비하면서 병력을 절약해 북부지역, 즉 네덜란드 지역을 통해 독일의 주력이 올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를 역이용했다. 즉, 북부는 작은 규모의 부대로 프랑스 주력부대를 견제하고, 독일의 주력부대는 중앙의 아르덴느 삼림지대의 협소한 기동로를 개척하면서 기습을 시도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습작전이었다. 독일 주력은 기갑부대로 기동전을 펼치며 아주 빠른 속도로 진출했다. 독일 주력의 한 축은 대서양까지 진출해 북부 프랑스 주력을 완전히 고립시켰고, 다른 한 축은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는 독일의 침공이 개시된 지 40여 일 만인 6월 22일 항복했다. 독일은 이어 7월부터 10월까지 영국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프랑스의 불안감, ‘멜랑콜리’에 담겨!
전쟁이 시작됐고, 이어 독일 침공을 받은 프랑스 사회는 말 그대로 혼란과 불안, 전쟁의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 암울했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프랑시스 풀랑크(1899~1963)는 이 시기 파리에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함, 그리고 상실감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피아노곡에 담았다. 1940년 작곡한 그의 ‘멜랑콜리(FP 105)’는 불어로 ‘우울함’ 또는 ‘애수’를 뜻하는 말이다. 그는 이 곡에 그의 내면에 있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화음과 함께 전쟁이 만들어 낸 슬픔과 애절함을 담아냈다. 

풀랑크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가곡 ‘사랑의 길’이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우리에게는 ‘글로리아’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암사슴’ 등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다. 20세기 프랑스 음악에서 유머와 낭만, 기지와 진지함, 우아함과 깊은 우울함을 동시에 표현한 ‘멜랑콜리의 작곡가’다. 파리에서 태어났고, 18세에 부모를 연이어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꺾이지 않았고,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다. 1차 세계대전 후 파리에서 활동하며 에릭 사티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6인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필자 서천규(군사학 박사)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육군대학장,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필자 서천규(군사학 박사)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육군대학장,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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