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외로운 병사 유혹하는 ‘SNS 허니트랩’
성적 매력·연애 감정 이용해 접근, 정보 빼가는 오랜 공작기법
정보기관에 의해 정교하게 기획…당사자, 타깃 사실 인식 못 해
사회와 분리된 군인들 더욱 취약…강도 높은 경각심·교육 필요
|
지난달 11일 인도 주요 언론들은 해군 병사가 SNS를 통해 접근한 여성과 장기간 교류하다가 유혹에 빠져 중요 군사 정보를 적국에 넘긴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방첩기관이 확보한 통신 기록과 감시 결과에 따르면 그는 2023년 자신을 ‘엔젤(Angel)’이라고 밝힌 여성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미인계에 걸려들었다. 인도 방첩당국은 이 계정은 파키스탄 정보기관(ISI)이 활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가벼운 온라인 대화로 시작했지만, 일상적인 안부를 나누면서 감정 교류로 발전해 점차 군 생활과 업무 관련 내용으로까지 확대됐다. 결국 이들은 연애 감정을 포함한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인도 병사는 해군의 민감한 전략 자산과 물류 관련 정보까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넘긴 정보에는 각종 군함과 중요 해군 시설의 사진 및 관련 정보가 포함됐다. 은행 계좌에서는 스파이 행위의 대가로 보이는 금전거래도 포착됐다고 한다. 당사자는 상대를 단순 지인 혹은 연인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설계된 정보 공작이었다. 인도 당국은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유사한 방법을 통해 다른 병사들에게도 접근하거나 함정을 파놓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2023년 5월 국방연구개발기구(DRDO) 소속인 한 과학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외국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연구 관련 정보를 유출한 사건이 있었다. 고위급 연구원인 그는 연구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는 공대생으로 가장한 여성과 음성메시지와 영상 통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그는 미사일 사진과 위치정보, 드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생활 사진까지 제공했고 직접 만나기로 약속도 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가 보낸 사진과 영상 통화 클립을 활용해 그를 협박하며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인도 당국은 상대를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공작원으로 추정하고 전형적인 ‘허니트랩’ 공작으로 규정했다.
허니트랩은 성적 매력이나 연애 감정을 이용, 상대를 조종해 정보를 빼내는 오래된 정보공작기법 중 하나다. 원초적 본능과 감정적 취약점을 활용한 포섭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각종 SNS, 데이팅 앱 등을 활용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훨씬 쉽게 실행되고 있다.
SNS를 활용한 허니트랩의 진화
최근 세계 각국에서 적발되고 있는 SNS 기반 허니트랩 사건들은 정보전 양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해외 출장이나 외교, 학술 행사에서 우연을 가장한 접촉이 주요 통로였다면 이제는 SNS가 허니트랩 스파이 공작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화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정교하게 이용하는 기법의 고도화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온라인에서는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기 어렵고 관계 형성 속도도 빠르다.
SNS 허니트랩은 일반적으로 일정한 단계와 과정을 따른다. 먼저 군인이나 공무원, 방산업체 종사자, 첨단 기술 연구자 등 정보적 가치가 있는 인물을 표적으로 선정한다. 이후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근해 취미나 관심사 등 일상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고 장기간 대화를 이어가며 감정적 친밀감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자신이 정보 공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적인 관계라고 믿게 된다. 이 과정은 몇 주, 몇 달, 때로는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상대가 경계심을 풀고 감정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하면 작은 부탁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업무와 관련된 일반적 질문이 이어지다가 점차 내부 자료나 민감한 정보 요구로 확대된다. 사적인 사진이나 영상이 확보되면 이를 활용해 협박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로맨스 스캠’과 매우 유사하다. 로맨스 스캠 역시 SNS나 데이팅 앱에서 관계를 형성한 뒤 감정적 의존을 유도하고 금전을 요구하는 범죄다. 두 방식 모두 인간의 외로움과 인정 욕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심리적 기반을 갖는다. 특히 상대가 자신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신뢰가 형성된 이후에는 작은 부탁이 반복되다가 자연스럽게 큰 요구로 이어지는 구조도 비슷하다.
그러나 두 방식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로맨스 스캠의 목적이 범죄자들에 의한 금전 탈취인 반면 허니트랩은 정보기관에 의해 정교하게 기획된 공작으로 정보 수집 및 포섭을 통한 지시와 명령 수행 체계를 수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인의 경제적 피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자신이 정교한 스파이 공작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한 온라인 관계 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은 스파이 활동이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유사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이유다.
일상으로 파고든 정보전 위협에 대비해야
특히 병사와 같은 군 구성원은 이러한 온라인 허니트랩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제한된 생활 환경, 외부와의 단절, 반복되는 일상은 심리적 고립감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낯선 사람의 관심과 호의에 쉽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군 조직 특성상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민감성이 더해지면 개인의 작은 실수가 곧 조직과 국가 전체의 위험으로 확대될 수 있다.
실제 사례에서도 대부분의 시작은 특별한 의도를 가진 행동이 아니라 단순한 대화와 호감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위협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사용하는 SNS가 정보 공작의 통로가 되고 있으며,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온라인 환경은 이러한 시도를 더욱 쉽게 만든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공작 방식도 정교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된 접근과 딥페이크를 활용한 정교한 위장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스파이 활동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군과 공공기관에서는 SNS를 통한 접근이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포섭으로 이어지는지 체계적인 방첩 교육이 필요하다. 단순한 보안 규정 교육을 넘어 실제 사례와 심리적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이뤄질 때 비로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전은 더 이상 특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은밀한 접촉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와 관계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최근 각국에서 벌어지는 SNS 허니트랩 사건들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군과 주요 기관 구성원에 대해서는 보다 더 강도 높은 경각심 제고와 교육이 요구된다. 정보전의 최전선은 국경선이 아니라 우리가 한시도 떼놓을 수 없는 각자의 스마트폰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