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인도·태평양 소다자 협력의 배경과 동향 ① 미국 주도 양자 동맹 체제의 한계와 소다자 협력의 본격화
양자 동맹, 안보 변화 신속 대응 부적합
역할 인식 달라 갈등과 신뢰 위기 부상
자율·임무 지향적 소다자 협력 본격화
전면적 위기 상황 억제력 구축에 한계
양자 동맹·소다자 상호 보완 역할 필요
아세안 다자 기제와 관계 설정도 모색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국은 아시아 역내 안보 질서 구축에 착수했다. 우선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체결한 평화조약을 통해 양국의 전쟁 관계를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또한, 양국의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미·일 동맹을 출범시켰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일련의 역내 양자 동맹 관계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동맹 관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집단방위체제와 구별되는 중심축-바큇살(hub-and-spoke) 체제로 명명된다. 여기에서 미국은 중심축이며, 한국·호주·일본·필리핀·태국 등 역내 동맹국과의 양자 동맹은 바큇살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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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로도 명명되는 미국 주도의 양자 동맹 체제는 아시아 역내의 정치적 현실을 수용하는 데 적절한 안보적 기제로 평가되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위협인식과 함께 역사·헌법 등 국내적 제약의 양상도 상이했다. 그 결과 유럽과 달리 역내 국가들을 포괄하는 ‘집합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는 나토의 다자적 기제를 이 지역에 도입하기 어려운 본질적 이유로 지목되었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출범한 역내 양자 동맹 체제를 통해 개별 동맹국은 미국의 안보적 관여를 보장받는 동시에 자국의 여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동맹 공약의 수준을 조정해 왔다.
미국 주도의 양자 동맹 체제는 냉전기 공산주의 침략 억제를 목표로 창설된 이래 역내 전통적인 군사적 위협 대응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핵 확장억제를 포함해 역내 동맹국들에 대한 상호방위조약의 공약을 재확인해 왔다. 역내 동맹국들 역시 미국의 종심방어(defense-in-depth) 태세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다양한 형태의 법적·군사적 재원을 제공해 왔다. 이러한 교환 관계를 바탕으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역내 억제력 구축의 기반 체계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지역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존 양자 동맹 체제의 한계도 명확해졌다. 핵, 우주·사이버, 해양안보, 공급망, 회색지대(gray zone) 도전 등 재래식 위협 대응에 최적화된 기존 체제로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다영역의 위협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반도, 대만해협,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역내 전략적 열점의 위기 상황도 밀접하게 연계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비대칭적 양자 동맹은 이러한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부적합한 구조이다. 분절적(fragmented) 속성으로 인해 다수 동맹국의 신속한 정책 공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대칭 동맹 내 위협·역할 인식의 상이성에 따른 내재적 갈등 역시 기존 동맹 체제의 한계로 지목되었다. 이른바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의 동맹안보 딜레마 문제가 대표적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안보공약의 신뢰성 문제가 지속 제기되는 가운데 역내 동맹국들의 개별적 상황에 따라 방기의 우려가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역내 동맹국들은 중국의 강압적 행보를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관여를 원하는 동시에 양 강대국의 갈등에 연루될 가능성도 우려하게 되었다.
트럼프 2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 거래적 접근법에 따른 갈등도 초래되었다. 동맹국의 비용·역할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다. 물론 미국 주도 역내 동맹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동맹국의 비용·역할 분담이 일정 수준 증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하다.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요구에 대응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증액하겠다고 공약한 이유이다. 동시에 유럽과 인도·태평양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보공약이 조건부로 이행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직면했다. 동맹 내 ‘신뢰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가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기존 양자 동맹 체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인도·태평양 역내 소다자 협력이 본격화되었다. 소다자 협력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구성된 소규모의 안보협력체로서 역내 동맹·우방국들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결 방식에 따라 역내 소다자 협력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역내 양자 동맹국들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미·일·호의 삼자전략대화, 한·미·일 안보협력, 그리고 미·일·호·필 협의체 등이 해당 사례들이다. 둘째, 미국의 역내 동맹국들과 전략적 협력 관계의 국가를 수평적으로 연결한 협의체이다. 미·일·호·인 4자 협의체인 쿼드(QUAD)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미·영·호 3자 협의체인 오커스(AUKUS)와 같이 미국의 역내·역외 동맹국들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소다자 협력 발전은 중견국(middle power) 정체성을 견지하는 국가들의 부상과 밀접히 연계되는 양상이다. 이들은 외교·다자주의를 통해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보유한 국가로서 집단적 노력을 통한 문제해결에 주력하고자 한다. 또한, 글로벌 규범의 영역에서 해석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러한 대외정책적 정체성에 따라 역내 중견국들은 소다자 협의체를 통한 실질적 협력 추동에 주력해 왔다.
일본·호주로 대표되는 역내 대표적 중견국들의 영향력이 확장하는 가운데 전략경쟁의 기회 요인을 극대화하려는 인도의 행보도 본격화하면서 인도·태평양 역내의 다극화가 추동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로 초래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역내 다수 국가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획일적인 기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비구속성(non-binding) 속성을 지니는 소다자 협력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양자 동맹이나 다자적 기제보다는 소규모의 맞춤형 연합이 선호되고 있다.
소다자 협력은 ‘임무 지향적(mission-oriented)’인 협의체다. 뜻을 같이하는 소규모의 국가 집단이 특정한 영역에서의 신속한 문제해결에 집중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회색지대 대응에서도 상대적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제반 장점에 따라 기존 양자 동맹 체제로 대응하기 어려운 복합·다영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나아가 광범위한 다자적 차원의 안보·산업 네트워크로 발전할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양자 동맹이나 나토와 같은 공식적 제도와 비교해 제도적 응집력과 지속력이 떨어진다. 전면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억제력 구축에서의 한계도 명확하다. 소다자 협의체가 무분별하게 확산할 경우 기존 지역 협의체의 무용론이 제기될 수 있으며, 역내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편적 원칙을 저해할 수도 있다. 소다자 협력과 역내 양자 동맹의 상호 보완적 역할을 확립하는 동시에 아세안(ASEAN) 주도의 역내 다자적 기제와의 관계 설정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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