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예술
선 넘은 미술 ④ 퍼포먼스
퍼포먼스 아트 선구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마주 앉은 관객에 “나를 마음대로 하라” 선언
키스·포옹에서 거친 폭행으로 번진 관객 참여
인간 내면 드러난 극단적 예술 실험으로 평가
몸의 언어 통해 관객과 경계 허문 참여형 예술
단순 시각적 감상 넘어 ‘행위’로 완성되는 작품
|
전시실 가운데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관객이 의자에 앉은 채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가만히 응시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을 보며 어떤 관객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어떤 관객은 화가 난 듯 굳은 표정이며, 또 어떤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지만 마주 앉은 관객에게도, 주위를 둘러싼 다른 수많은 관객에게도 묘한 감정들이 흘러간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약 3개월 동안 진행됐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1946~ )의 퍼포먼스 작품 ‘예술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 이야기다. 침묵 속에 주고받는 눈빛 속에서 관객들은 퍼포먼스의 주인공이 되고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 퍼포먼스는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를 극적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품으로, 퍼포먼스의 대중화를 이끈 작품으로 평가된다. 퍼포먼스의 기록은 뉴욕현대미술관 홈페이지와 2020년 국내에서 출간된 에세이 『마리나의 눈』(그레파이트온핑크, 2020)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아브라모비치는 1970년대부터 실험적 퍼포먼스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는데, 그중 1974년의 ‘리듬 0(Rhythm 0)’은 작가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작이자 충격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6시간 동안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작가와 관객의 거리에 대한 극단적 실험이었다.
퍼포머로서 작가는 관객이 자신에게 어떤 행위를 하든 움직이거나 말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기로 선언한다. 작가는 깃털, 꽃, 가위, 총 등 관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72개의 물건을 테이블에 올려뒀고, 자신은 물체이며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안내문을 적어뒀다.
퍼포먼스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작가에게 키스하거나 포옹을 하고 꽃을 건네는 등 조심스럽게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장소에서 이뤄진 퍼포먼스인 만큼 관객은 서로를 의식했고, 잔인하고 과격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 관객이 작가의 얼굴을 세게 때렸고, 작가가 저항하지 않자 사람들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옷을 벗기고, 칼이나 가위로 피부를 긋는 등 잔인한 행동을 보였고, 급기야 장전된 총으로 작가를 겨누기도 했다. 관객들은 서로의 행동을 지켜보며 긴장했고, 작가를 보호하려는 관객과 공격하려는 관객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몸을 매체로 삼아 위험, 고통, 폭력에 직면하며 인간의 한계를 탐구하고 정신과 신체의 경계를 탐구했다. 관객과 함께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아브라모비치의 참여적 퍼포먼스는 단순히 시각적 충격이 아닌, 인간 내면의 깊이를 탐구하게 만드는 예술의 본질적 역할을 수행한다.
퍼포먼스는 주로 공연예술 분야에서 사용돼 온 용어다. 배우의 연기, 연주자의 연주, 무용수의 몸짓처럼 관객 앞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러나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해프닝, 이벤트 등 즉흥적이며 우연성을 중요시한 미술 형식이 등장하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관객 참여적 성격의 퍼포먼스가 새롭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는 단순히 무대 공연이 아니라 예술가의 신체와 관객, 시간과 공간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행위 예술로, 춤, 음악, 연극 등 여러 예술 매체가 융합된 예술 형식으로 확장됐다.
물리적 형태가 있는 그 무엇인가를 미술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퍼포먼스는 선 넘은 미술이다. 퍼포먼스는 동시성과 현장성을 특징으로 하며, 미술관이라는 정적인 공간을 움직임으로 채우고 상황과 참여자에 따라 변화하는 비물질적인 예술의 모습을 보여준다. 퍼포먼스가 진행된 이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된 그날 그때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마저 허락하지 않은 채 실시간 상황과 현장의 기록을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기는 작가가 있다. 티노 세갈(1976~ )은 물질적 생산과 소비 대신 인간의 행위와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비물질적인 예술을 추구해 왔다.
그는 시공간을 활용한 상황에 집중하며 자신의 작업을 기록하는 대신 직접 경험하고 체험함으로써 그 순간의 기억과 감정만을 작품 흔적으로 남긴다. 티노 세갈은 작품을 통해 관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집중하며 여기에서 관객은 작가와 함께 공동 창작자가 돼 참여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현재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티노 세갈의 국내 첫 번째 개인전 ‘티노 세갈 Tino Sehgal’(3월 3일~6월 28일)이 진행 중이다. 현장을 방문하면 ‘해석자(Interpreters)’로 명명된 퍼포머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말을 건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리고 관람객 참여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전시 안에서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작품의 일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퍼포먼스 영역은 점점 더 확장돼 가고 있다. 지난달 서울 금천구에 개관한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은 개관 사전 프로그램으로 ‘퍼포먼스와 미술관’을 개최한 데 이어 현재는 개관 특별전 SeMA 퍼포먼스 ‘호흡’(2026년 3월 12일~4월 12일)을 진행 중이다.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으로 개관한 서서울미술관은 퍼포먼스 기반의 예술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새로운 창작과 실험을 지원하는 무대로 자리매김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내외 작가들의 퍼포먼스를 선보여 왔고, 현재 ‘MMCA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2026년 4월 1일~12월 6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특히 5월 초 예정돼 있는 캐나다의 연구·예술 프로젝트 단체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Mammalian Diving Reflex)의 ‘아이들의 헤어컷’은 참여형 퍼포먼스로 진행되며, 8~12세 아이들이 성인들을 관찰하고 미용을 제공하는 실험적 시도를 소개할 것이다.
시각예술이라 여겨졌던 미술은 보는 것의 경계를 넘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예술로 나아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사용해 현재에 펼쳐놓은 움직임의 예술 퍼포먼스는 몸의 언어를 통해 예술을 공유하는 경계 없는 예술이다. 퍼포먼스는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현재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과 결과로서 일상과 예술, 창작의 매체 사이 경계를 허무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이다.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