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그림자 드리운 벽, 햇살 가득 색채로 물들이다

입력 2026. 04. 09   16:51
업데이트 2026. 04. 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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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문학-두 도시 이야기
말레이시아 페낭과 스위스 루체른 <上>

18C 英 동인도회사 점령의 역사
주도 이름 ‘조지타운’에 새겨져
제국의 무역항이자 자본줄 역할
中·印·아랍·유럽 상인 몰려들어
세계 각국 건축 양식 한 골목에
골목마다 다채로운 벽화 ‘명물’
미식의 도시 ‘아삼 락사’ 맛봐야

말레이시아 페낭과 스위스 루체른은 영국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빅토리아 시대라는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 두 도시는 교차한다. 1837년부터 64년간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던 시절은 영국의 전성기이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위세가 막강했다. 페낭은 이 시기 대영제국의 아시아 거점도시였으며, 루체른은 여왕 재위 시절 패키지여행을 도입한 첫 번째 도시였다.

어부들의 일상과 관광객의 산책이 교차하는 페낭의 해안.
어부들의 일상과 관광객의 산책이 교차하는 페낭의 해안.

 

페낭의 혼합 양식 건축미를 보여 주는 조지타운 중앙소방서.
페낭의 혼합 양식 건축미를 보여 주는 조지타운 중앙소방서.

 

동서양이 만나는 교역의 섬

쿠알라룸푸르에서 버스를 타고 페낭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는 5시간 동안 울창한 야자나무밭과 산악지대가 번갈아 나타났다. 영국은 어쩌다 이토록 먼 섬까지 와서 식민 지배를 하게 됐을까? 무역항으로 번성하기까지 이 섬은 어떤 수난을 겪어 왔을까? 페낭주의 주도 조지타운에 도착할 때까지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8세기 말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는 페낭을 점령한 뒤 당시 국왕 조지 3세의 이름을 따 이곳을 ‘조지타운’으로 불렀다. 말레이시아 북부 관문도시의 이름이 영어, 그것도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곳의 역사가 얼마나 깊숙이 영국과 연결돼 있는지 실감한다. 흔적은 페낭의 위치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대항해 시대 유럽 상선들은 향신료를 비롯한 아시아의 물자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당시 주요 무역로였던 믈라카해협 근처엔 육로와 해로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일찍부터 중요한 교역 거점으로 떠오른 섬이 있었다. 바로 페낭주의 조지타운이다.

교역로이자 무역항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지타운은 이제 여행자에게 사랑받는 도시가 됐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축물과 다양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덕분에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기 때문이다.

 

 

페낭 조지타운 골목에 그려진 벽화 ‘자전거를 탄 아이들’. 조지타운 골목 곳곳에는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와 설치미술이 존재한다.
페낭 조지타운 골목에 그려진 벽화 ‘자전거를 탄 아이들’. 조지타운 골목 곳곳에는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와 설치미술이 존재한다.

 

버려진 버스 차고지를 예술·창작허브로 재탄생시킨 ‘힌버스디포’.
버려진 버스 차고지를 예술·창작허브로 재탄생시킨 ‘힌버스디포’.


벽화가 숨 쉬는 도시


조지타운의 동양인 듯, 서양인 듯 그 절묘한 분위기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이 열대도시는 밀집된 공간에 여러 민족과 언어가 모여 사는 독특한 집단거주지를 형성하고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유럽풍 건물, 중국식 사원, 이슬람 모스크, 인도 힌두사원 등 다채로운 건축양식을 한 골목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 전후로 중국인, 인도인, 말레이인, 아랍·유럽 상인들이 조지타운으로 몰려왔다.

페낭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는 조지타운의 벽화거리를 산책하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도심은 18~20세기 벽면을 캔버스 삼은 벽화들로 유명하다. 좁은 골목마다 벽화를 따라 걷는 경험은 전 세계 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이 도시의 가장 강력한 콘텐츠다.

2012년 리투아니아 출신 예술가 어니스트 자카레비치가 그린 대형 벽화가 SNS로 유명해지면서 이곳은 전 세계 여행자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이후 여러 지역예술가들이 참여해 골목 곳곳에 벽화와 철제 설치미술을 더하며 조지타운 전체가 야외 갤러리로 변모했다. 벽화는 낡고 허름한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지역주민들의 일상과 역사를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 ‘오토바이에 앉은 소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여행자들은 벽화 속 인물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자신만의 추억을 남긴다.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세운 시계탑. 영국의 페낭 식민 역사와 인도·사라센 양식의 건축미를 상징한다.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세운 시계탑. 영국의 페낭 식민 역사와 인도·사라센 양식의 건축미를 상징한다.


영국제국의 해상 요충지

‘빅토리아 여왕 기념 시계탑’은 높이 18m에 이르는 탑으로, 조지타운의 화교계 부자가 자비로 지은 것이다. 189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영국 런던이 아닌 이 작은 항구에 여왕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곳이 인도와 중국을 잇는 영국제국의 해상 교통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페낭이 영국제국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왕실의 칙허장이 중요했다. 이 칙령에 의해 탄생한 동인도회사는 국가로부터 군사권과 사법권까지 위임받은 무소불위의 거대 독점기업이 됐다. 동인도회사는 페낭을 차지한 뒤 이곳을 자유무역항으로 선포하며 관세와 세금을 면제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가혹한 독점체제에 신음하던 아시아 전역의 상인이 페낭으로 모여들었다. 그 후 주도권을 잡은 영국은 페낭을 거점으로 벵골의 아편, 동남아시아의 향료와 주석, 중국의 차와 비단이 오가는 거대한 삼각 무역로를 형성하며 부를 쌓는다. 이 무역로에서 발생한 막대한 수익은 영국 산업혁명의 자본줄이자 해군력 강화의 기반이 돼 영국은 전 세계 모든 시간대에 영토를 가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페낭 조지타운은 믈라카, 싱가포르와 함께 영국령 식민지로서 동서양이 500년 동안 교차해 형성된 다문화 항구도시의 기반을 다지게 됐다.

믈라카해협 항구들과 말레이반도 내륙에서 뽑아 올린 주석·고무 등의 삼림자원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경제를 지탱한 중요한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기술적으로는 산업혁명과 철도망의 확장, 금융적으로는 대규모 인프라에 투자하는 주식·채권시장의 발달이 겹치면서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무역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제국 각지에서 짜낸 이윤은 런던과 북부 공업도시, 금융가의 자본 축적으로 귀결됐다.


페낭의 대표 음식 ‘아삼 락사’.
페낭의 대표 음식 ‘아삼 락사’.


노동의 섬, 미식의 도시

영국이 닦아 놓은 자본의 길 위에서 노동의 무게를 떠안은 것은 중국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 즉 화교들이었다. 19세기 중반 청나라 말기의 혼란과 태평천국운동, 아편전쟁을 피해 푸젠성과 광둥성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페낭으로 유입됐다. 영국은 주석 채굴과 항만 하역에 필요한 기술,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화교를 선호했다. 당시 영국 해양식민지로 이주한 화교 노동자들은 ‘쿨리’로 불리며 주석광산과 고무농장의 혹독한 노동력을 담당했다.

대규모 이주는 해상 운임과 초기 정착 비용을 미리 빌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시스템은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과중한 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였다. 많은 이주자가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고된 삶을 아편으로 견뎠다. 이것이 쿨리가 머문 곳마다 아편굴이 생겨난 이유다. 일부 화교는 광산업과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현지에 정착했고, 페낭의 경제를 장악했다.

중화계 쿨리가 항만과 광산의 노동을 담당했다면 프라나칸 상인은 그 위에서 금융과 유통을 장악했다. 프라나칸은 중국 화교 남성과 페낭 일대의 말레이 또는 인도네시아계 여성이 결혼해 형성된 혼혈 공동체다. 음식과 언어, 의복, 예절에서 중화와 말레이 문화가 절묘하게 융합돼 있다.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요리는 도시에 발을 디딘 여행자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페낭은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음식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마치 우리나라 남도음식처럼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미식의 도시다. 특히 페낭이 원조거나 대표지역으로 꼽는 요리가 많아 ‘말레이시아 음식수도’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페낭을 찾는 이 중 상당수는 갖가지 전통음식과 길거리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미식여행을 계획한다. 이를 방증하듯이 2023년부터 ‘빕 구르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2026년 현재 약 30개의 식당이 있다.

페낭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 ‘아삼 락사’는 페낭 락사로도 불린다. 이 국수요리는 진한 생선 육수에 타마린드(아삼)로 새콤한 맛을 더한다. 말레이시아인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일반적인 락사보다 생선 맛이 강하고 국물은 맑으면서도 시큼하고 매콤한 게 특징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특유의 시큼하고 약간 비린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한 번 빠지면 마치 꽁치김치찌개나 추어탕처럼 중독성 있는 맛이 계속 생각난다. 실제로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순위에 오를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요리다.


제국의 기억을 걷는 도시 

페낭을 천천히 돌아본다는 것은 제국의 교두보였던 과거와 다문화도시로 성장한 현재를 함께 읽어 내는 일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이 누군가에게는 산업화의 상징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계약노동과 채무의 굴레였다. 그래서 조지타운의 골목에는 풍요와 상처가 동시에 배어 있다.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도시 페낭은 식민 시절 닦인 자본의 길 위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지만, 그 흔적은 더 이상 제국의 명령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흔적 속으로 편입됐다. 페낭은 한때 동서양이 충돌하던 경계였으나 이젠 다양한 문화가 공존을 실험하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벽화거리의 활기와 시장의 향신료 냄새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현재의 풍경이다. 그 복합성과 유연함이야말로 오늘의 페낭이 지닌 가장 생생한 힘일지도 모른다.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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